스탠리 큐브릭 감독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1999년 3월7일 타계했습니다. 그는 가장 위대한 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힙니다. 무엇이 그를 위대한 감독, 시대를 앞서간 천재 감독으로 불리게 만들었을까요. 큐브릭을 수식하는 가장 완벽한 한마디는 완벽주의자입니다. 사망 18주기를 맞아 완벽주의자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샤이닝> 촬영장. 큐브릭 감독은 잭 니콜슨 사진을 찍어주는 척하면서 거울에 비친 자신과 딸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 장면, 몇 번까지 찍어봤니
큐브릭은 찍고 또 찍고 또 찍습니다. 한 장면을 100번 넘게 촬영하는 건 다반사였습니다. <샤이닝> 촬영 당시 69세였던 배우 스캣맨 크로더스에게 큐브릭은 7분짜리 장면을 148테이크 요구했습니다. 7분짜리 연기를 148번 했다는 뜻입니다. 7X148=1036분이고 시간으로 환산하면 대략 17시간 30분이네요.

<샤이닝>에 출연한 잭 니콜슨은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반복되는 큐브릭의 재촬영 요구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잭 니콜슨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했습니다. <샤이닝>의 이후 큐브릭이 <나폴레옹>이라는 영화를 준비할 때 자신을 불러주길 기다렸다고 합니다. 같은 영화에 출연한 셜리 듀발은 이런 큐브릭의 성격을 잘 견디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감독과 불화가 생겼고 본인은 신경쇠약에 걸렸다고 전합니다.

<샤이닝>에 출연한 셜리 듀발.
<샤이닝> 촬영장. 이미 97번 찍었는데 한 번만 더 찍자고 설득하는 듯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

<샤이닝> SE DVD 음성해설에 참여한 평론가이자 전기 작가인 존 백스터는 큐브릭이 배우들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최초에 배우가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면 큐브릭은 ‘좋았어요. 한 번 더 갑시다’라고 말하고는, 같은 연기를 몇 차례나 반복시킨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배우들은 ‘오버’하는 연기를 하게 되고, 12~14테이크 정도에 이르면 점점 지치기 시작하여 힘을 아끼려고 한다. 큐브릭은 그래도 연기를 계속 반복하라고 지시한다. 마침내 배우가 더 이상 다른 연기를 보여줄 수 없을 지경이 돼도 큐브릭은 재촬영을 계속 반복한다. 그리고 수십 테이크째에 이르면, ‘맛이 간’ 배우들은 평소 하지 않던 기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괴성도 질러가며 말이다. <샤이닝>에 삽입된 잭 니콜슨의 광기어린 연기는 모두 ‘그 단계’의 테이크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많은 촬영으로 인해 <샤이닝>에서 큐브릭이 사용한 필름의 길이는 총 130만 피트입니다. 약 396km 정도 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겠군요.

<와이즈 와이드 셧>에 출연한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 스탠리 큐브릭 감독(왼족부터).

큐브릭의 유작이 된 <아이즈 와이드 셧>은 400일 동안 쉬지 않고 촬영을 진행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한 신을 3주 동안 촬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시대를 앞서간 테크니션

배우들만 고생한 건 아닙니다. 스탭들도 까따로운 감독의 요구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3시간 넘는 상영시간을 자랑(?)하는 시대극인 <배리 린든>에서 큐브릭은 인공적인 조명을 배제했습니다. 오로지 자연광에만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밤, 실내 장면에서만 인공적인 조명이 허락됐습니다. 바로 촛불이었습니다. 촛불이라니. 오늘밤 촛불만 켜놓고 셀카를 찍어보시길 바랍니다. 어두워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 어려울 겁니다. 큐브릭을 그래도 촛불을 고집했고 나사(NASA)가 달 표면을 촬영하기 위해 개발한 특수한 렌즈(F0.7)를 사용해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배리 린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엄청난 고증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극한의 고증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 <배리 린든>은 197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 음향상, 미술상, 의상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나사 이야기가 나오니 자연스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떠오릅니다. 4년 만에 완성된 이 영화는 나사의 도움 없이 나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큐브릭은 나사의 탐사 자료를 기반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우주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며 심지어 감탄하게 되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장면들은 정교하게 제작된 미니어처와 특수촬영기법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CG는 없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SF 영화의 전설.

2015년 11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서울에서 열렸던 ‘스탠리 큐브릭 전’에 가셨던 분들은 영화에 사용된 소품들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소품은 살아남았지만 당시 영화에 사용된 세트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완벽주의자 큐브릭이 다 부숴버렸기 때문입니다. 다른 영화에 사용되는 걸 허락하지 않았던 거죠.

<샤이닝> 스테디캠 장면.

세트뿐만 아니라 촬영기법에 있어서도 큐브릭은 늘 앞서갔습니다. <샤이닝>의 유명한 스테디캠 촬영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세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를 쫓아가는 카메라 워크는 휠체어에 카메라를 고정해서 만들었습니다.

광적인 집착

완벽주의자들은 늘 집착하기 마련입니다. 큐브릭 감독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영화사 직원에게 4X6인치 메모지만 사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푸투라 서체로 쓴 자막.

메모지 집착처럼 서체에도 집착해서 포스터에 푸투라(Futura) 서체만 사용할 것을 고집하기도 했습니다. 포스터에 대한 집착, 완벽주의는 해외용 포스터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 출시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비디오테이프 표지도 큐브릭이 직접 검토해서 네 번이나 다시 만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시계태엽 오렌지> 촬영현장의 스탠리 큐브릭 감독.

집착의 좋은 점도 있습니다. 큐브릭은 체스 실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1953년작 <공포와 욕망>은 큐브릭이 체스 대회에서 받아온 상금과 아버지, 삼촌 등의 도움으로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큐브릭은 체스 이외에 탁구도 즐겼다고 합니다. 그는 촬영장에서 배우들과의 체스, 탁구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대결에서 승리하면 배우에 대한 장악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촬영현장의 스탠리 큐브릭.

집착은 간혹 피해망상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제작 기간에 나사가 화성에 바이킹 호를 보냈습니다. 큐브릭은 실제 탐사 결과가 화제가 되면서 영화가 망할 것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런던의 로이드 보험사를 찾아가 손실 대비 보험을 가입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한 우주선 디스커버리 호의 이름은 나중에 나사가 사용했습니다.

이상한 공포증

큐브릭은 세균에 대한 공포가 있어서 감기에 걸린 사람은 촬영장 접근을 금지시켰습니다. 자동차는 시속 50km 이상 속도를 내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큐브릭은 영국 런던에 살면서 뉴욕에 있는 주치의를 불러서 치료를 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의사를 믿지 못하는 거죠. 문제는 미국 주치의가 영국 의료면허증이 없었다는 겁니다. 결국 미국 의료면허 효력이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베트남 전쟁 소재의 영화 <풀 메탈 자켓>은 영국에서 촬영됐습니다.

큐브릭은 비행 공포증도 있습니다. 영국으로 이주한 이후 그는 모든 영화를 영국에서 촬영했습니다. 뉴욕이 배경인 <아이즈 와이드 셧>은 물론 베트남 전쟁을 다룬 <풀 메탈 자켓> 역시 영국에서 촬영했습니다. <풀 메탈 자켓>에 밀림 장면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물론 야자수를 공수해와서 심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A.I.>에 대해 논의할 때도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죠. 큐브릭은 비행 공포증이 있고 스필버그는 할리우드에서 바빴으니까요. 참고로 <A.I.>는 큐브릭이 감독을 맡기로 정했지만 그의 죽음으로 스필버그가 완성시켰습니다.

큐브릭의 비행 공포증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1940년대 그는 비행기 조종 면허를 취득할 정도로 비행을 사랑했습니다. 사고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죠. 친한 카메라맨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는데 불에 탄 그의 카메라를 보고 더 이상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카메라는 큐브릭에게 중요한 물건입니다. 정규 학교 교육에서 거의 낙오한 그에게 유일한 친구는 아버지가 선물한 카메라였습니다. 사진에 재능을 보이면서 17살 때 <LOOK>이라는 잡지의 견습 사진기자가 됐습니다. 이후 정식 사진기자가 됐고 큐브릭이 촬영한 900점 이상의 사진이 잡지에 게재됐습니다.

이 시기 큐브릭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필름도서관에 다니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갔습니다. 사진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그의 첫 작품은 다큐멘터리였습니다. 1951년 자신이 취재했던 복서 월터 카르티에를 담은 <시합날>(Day Of The Fight)이라는 13분짜리 영화가 그의 첫 작품입니다.

<시계태엽 오렌지>
<스파르타쿠스>에 출연한 커크 더글라스(왼쪽)과 스탠리 큐브릭 감독.

마지막으로 그가 이루지 못한 미완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잭 니콜슨이 출연하고 싶다고 했던 <나폴레옹>입니다. <나폴레옹>은 당시 캐스팅, 대본, 촬영지 선정 등 거의 모든 프리프로덕션 과정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나폴레옹 역에는 오스카 웨너가, 조세핀 역에는 오드리 헵번이 출연할 예정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역시 나폴레옹을 소재로 한 영화 <워털루>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제작이 연기됐습니다. 1999년 큐브릭이 사망하면서 그가 연출한 <나폴레옹>은 볼 수 없게 됐습니다. 2013년 초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이 프로젝트를 TV시리즈로 제작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만,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추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밖에 스탠리 큐브릭에 관한 재밌는 사실들

1960년대 말 <반지의 제왕> 영화화를 제안받은 적이 있다. 주연은 비틀즈 멤버들이었다.

<시계태엽 오렌지>를 패러디한 <심슨 가족>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을 좋아했다. <심슨 가족>은 큐브릭의 영화를 패러디, 오마주하기도 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영상을 연출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음모론일 뿐이다.

10년 동안 인터뷰 한 번 없이 은둔생활을 한 적이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자신의 이름으로는 단 하나의 트로피를 받았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시각효과상을 수상했다.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설정으로 흥행하기 어려운 예술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큐브릭의 거의 모든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 <아이즈 와이드 셧>이 유일하게 미국 시장에서 적자를 기록했지만 글로벌 시장까지 감안하면 손익분기점은 넘겼다.


수박 겉핡기 식으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의 영화 자체에 대한 얘기는 거의 안 했는데요. 영화에 대한 글을 읽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직접 영화를 보는 게 좋겠죠.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전혀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샤이닝> 정도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큐브릭의 영화를 보면 그가 왜 천재인지, 집착과 공포가 뒤섞인 완벽주의자가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샤이닝> 바로보기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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