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명한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는 1952년부터 10년 마다 한번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리스트를 발표한다. 2022년을 맞아 올해도 목록들이 발표됐는데, 이번엔 전례 없는 파격적인 결과가 속출해 전세계 영화 팬들의 반응이 더욱 뜨거웠다. 전세계 영화 전문가들이 선택한 위대한 영화 리스트의 상위 10위권에 어떤 영화가 포함됐는지 살펴보자.
10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
스탠리 도넌 & 진 켈리, 1951
뮤지컬 영화의 영원한 금자탑. 할리우드 황금기인 1950년대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명배우 진 켈리가 연기는 물론 스탠리 도넌과 함께 연출까지 도맡았다. 배경은 무성영화의 전성기를 지나 유성영화가 서서히 세를 넓히던 1920년대 중후반. 아마추어 코미디언이었던 돈(진 켈리)은 할리우드로 넘어와 최고의 인기 여배우 리나(진 헤이건)와 호흡을 맞추며 인기를 누리다가 목소리 연기가 엉망인 리나 때문에 다시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연기, 춤, 노래 모두 걸출한 실력을 뽐내던 진 켈리와 도널드 오코너, 데비 레이놀즈 등의 배우들이 선사하는 시각과 청각의 호사는 영화의 본질이 '운동'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 사랑은 비를 타고
-
감독 진 켈리, 스탠리 도넌
출연 진 켈리, 도널드 오코너, 데비 레이놀즈
개봉 1954.10.21. 2022.09.21. 재개봉
9
카메라를 든 사나이
Челове́к с киноаппара́том
지가 베르토프, 1929
1920년대 후반 구 소련의 일상을 카메라의 눈으로 포착한 다큐멘터리. 사람의 눈 그대로가 아닌, 카메라의 눈을 통해 세상을 완벽하게 포착할 수 있다는 단체 '키노 프라우다'의 기조를 담은 작품. 지가 베르토프 감독 스스로 "자막, 시나리오, 세트, 배우의 도움 없이 시각적 현상을 전달하는 실험"이라고 지칭한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기본적으로 당시 소련의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되, 특수촬영과 이중인화 등 실험적인 접근을 통해 이미지들을 구성하면서 '카메라로 담은 세상'을 구현한다. 근 100년이 흐른 지금 봐도 인상적인 이미지들이 즐비하다. <사이트 앤 사운드> 리스트가 처음 시작된 1952년부터 2002년까지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1925)이 상위에 올라 소련 영화의 저력을 증명했다면, 10년 전 <전함 포템킨>보다 우위를 점하게 된 <카메라를 든 사나이>가 10위에 오른 데 이어 올해는 9위를 차지했다.
- 카메라를 든 사나이
-
감독 지가 베르토프
출연 미하일 카우프먼
개봉 미개봉
8
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
데이비드 린치, 2001
2022년 리스트 상위권의 흥미로운 점, 1990년대와 2000년대 작품들이 포함된 것이 아닐까.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위를 차지한 영화 중 그나마 최신작이 <대부>(1972) <대부 2>(1974)라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이 변화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8위에 오른 작품은 데이비드 린치의 2001년 작이자 영국 방송국 <BBC>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서 1위를 기록한 바 있는 <멀홀랜드 드라이브>다. 잘 알려진 것처럼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서사는 단명하게 설명하기 불가능하다. LA 할리우드에 온 무명배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분명 미스터리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스터리를 해결되지 않은 채 관객을 더한 카오스로 몰아세운다. 린치는 DVD 패키지에 '미스터리를 해결할 실마리 10개'를 적어 놓았지만, 그게 해석을 용이하게 돕기는커녕 의문만 증폭시킬 뿐이다. 결국 미로의 끝을 찾아내는 쾌감보다 그곳을 밑도끝도 없이 헤매는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 멀홀랜드 드라이브
-
감독 데이빗 린치
출연 나오미 왓츠, 로라 해링
개봉 2001.11.30. 2017.10.05. 재개봉
7
아름다운 직업
Beau travail
클레어 드니, 1999
프랑스 감독 클레어 드니의 10위 권 내에 오른 유일한 1990년대 영화. 데뷔작 <초콜렛>(1988) 이후 10년 만에 아프리카에서 촬영한 <아름다운 직업>은 지부티공화국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 외인부대를 따라간다. 프랑스와 아프리카 사이의 정치적인 관계를 알레고리 삼기 좋아 보이지만, 정작 클레어 드니(와 그의 오랜 촬영 파트너 아녜스 고다르)의 시선이 집요하게 쫓는 건 남성의 육체다. 군복을 입거나 헐벗은 군인들이 훈련 받는 움직임은 안무가 베르나르도 몽테를 기용해 세공했고, 영화가 느슨하게 원작으로 삼고 있는 허먼 멜빌의 <선원 빌리 버드>를 바탕으로 한 벤자민 브리튼의 오페라를 적극 활용해 쾌감의 차원을 한껏 올렸다. 레오스 카락스와의 작업에서 전무후무한 존재감을 뽐낸 배우 드니 라방의 퍼포먼스가 주는 울림 역시 상당하다.
- 아름다운 직업
-
감독 클레어 드니
출연 드니 라방, 그레고리 콜린
개봉 2004.05.11.
6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yssey
스탠리 큐브릭, 1968
<사랑은 비를 타고>가 뮤지컬의 금자탑이라면, SF영화의 절대 고전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아닐까. '위대한 영화' 리스트는 '평론가가 선택한'것과 '감독이 선택한' 것 둘로 나뉘는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후자 리스트에서 10년 전엔 2위, 이번에 드디어 1위를 차지했다. 도발적인 드라마 <롤리타>(1962)와 정치 풍자극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를 등을 거치며 장르를 가리지 않는 저력을 보여준 스탠리 큐브릭은, SF소설가 아서 C. 클라크와 각본을 쓰고 50년이 지난 현재 보아도 손색이 없는 미감을 자랑하는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우주 주선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평단의 극찬과 더불어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1968년 흥행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SF영화를 만드는 수많은 감독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선사하고 있다.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감독 스탠리 큐브릭
출연 케어 둘리, 게리 록우드
개봉 미개봉
5
화양연화
花樣年華
왕가위, 2000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함께 상위권을 차지한 또 다른 작품, 홍콩을 대표하는 감독 왕가위의 걸작 <화양연화>다. 2000년 칸 영화제(그해 <화양연화>의 양조위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를 통해 처음 공개돼 시간이 흐를수록 전세계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면 빠른 시간에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됐다. 같은 집에 세들어 살게 된 두 주인공 첸 부인(장만옥)과 차우(양조위)가 각자의 배우자가 함께 바람을 피운다는 걸 알고 그들 역시 서로에게 이끌리는 과정을, 왕가위 특유의 아름다운 이미지와 리듬으로써 담았다. 두 주인공이 서로 스쳐지나갈 때의 숨막히는 텐션, 치파오를 차려입은 장만옥의 자태, 사랑을 감출래야 감출 수가 없는 양조위의 눈빛, 물 밀 듯이 쏟아지는 탱고의 선율 등 <화양연화>를 이룬 수많은 요소들이 그 자체로 아이콘이 됐다.
- 화양연화
-
감독 왕가위
출연 양조위, 장만옥
개봉 2000.10.21. 2020.12.24. 재개봉
4
동경 이야기
東京物語
오즈 야스지로, 1953
'위대한 영화' 리스트에 아시아 영화가 처음 10위 안에 오른 건 1962년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츠 이야기>(1953)가 처음이었다. 그해에 5위와 1972년에 10위를 기록한 데 이어, 1982년엔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1954)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등 1970년대를 수놓은 할리우드 명장들이 구로사와 아키라를 추앙했던 영향이 두드러진 결과다. <7인의 사무라이>가 내려온 뒤 상위를 차지한 건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1953)였다. (세 일본 영화가 모두 1953년 즈음 발표됐다는 게 흥미롭다!) 시골에 사는 노부부가 자식들이 사는 동경에 놀러와 대단한 환대를 받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펼치는 <동경 이야기>는 1992년부터 40년간 굳건히 최상위권을 지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12년 감독들이 선택한 리스트에선 무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동경 이야기
-
감독 오즈 야스지로
출연 류 치슈, 히가시야마 치에코
개봉 2004.05.28. 2014.08.16. 재개봉
3
시민 케인
Citizen Kane
오손 웰스, 1941
흔히 <시민 케인>은 위대한 영화 중의 위대한 영화로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앙케이트인 1952년엔 13위에 올랐던 <시민 케인>은 바로 다음 1962년 '위대한 영화' 리스트의 왕좌를 차지하고 그 자리를 2002년까지 지켰다. 연극계에서 실력을 쌓은 연출자 오손 웰즈가 25살의 나이에 처음 연출한 장편 영화인 <시민 케인>은 언론 재벌이었던 (가상인물) 찰스 포스터 케인의 일대기를 그린다. 케인의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케인이 직접 연기까지 도맡았다. 발표된 지 80년이 넘은 <시민 케인>이 현재까지도 거대한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는 이유로는 기존의 기승전결이 아닌 다층적으로 인물을 바라보는 서사 구조, 화면과 소리의 불일치로 시공간을 분리시키는 편집, 딥포커스 촬영으로 표현주의적 세트와 사실적인 조명을 한데 담은 비주얼 등이 손꼽힌다. 1941년에 발표된 위대한 영화라는 칭호에 겁먹을 필요 없다. 매우 재미있다!
- 시민 케인
-
감독 오손 웰즈
출연 오손 웰즈, 도로시 코민고어, 조셉 거튼, 아그네스 무어헤드, 루스 워릭
개봉 미개봉
2
현기증
Vertigo
알프레드 히치콕, 1958
<시민 케인>의 오랜 왕좌를 50년 만에 빼앗은 작품, 바로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이다. 발표된 지 20년이 지난 1982년 처음 9위에 올라 해마다 차근차근 순위를 올려 결국 2012년 1위를 차지한 것. (두 작품 모두 버나드 허먼이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현기증>은 <이창>, <싸이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새> 등과 함께 서스펜스 스릴러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은퇴한 형사가 옛 친구의 부탁으로 그의 아내를 미행하고 결국 그녀에게 매혹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종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가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트랙아웃/줌인 기법을 통해 인물이 감각하는 현기증을 구현하는 등 시각적으로 상당한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그래픽 디자이너 솔 바스가 만든 오프닝 시퀀스부터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 현기증
-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 제임스 스튜어트, 킴 노박
개봉 1959.02.08.
1
잔느 딜망
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
샹탈 아케르만, 1975
2022년 '위대한 영화' 1위에 오른 영화는 벨기에 출신의 감독 샹탈 아케르만의 <잔느 딜망>이다. "<현기증>이 이번에도 선두를 지킬 것인가" "<동경 이야기>가 처음 1위를 차지할 것인가" "설마 <시민 케인>이 다시 한번?" 같은 손쉬운 예상이 오갔던 걸 비웃기라도 하듯, 2012년 리스트에서 36위에 올랐던 <잔느 딜망>이 지난 역사의 강자들을 제치고 왕좌를 차지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사는 여자 잔느 딜망(델핀 셰리그)이 3일 동안 요리하고, 청소하고, 아이를 돌보는 등 가사노동 하는 과정을 2시간 21분(<아바타: 물의 길>의 러닝타임과 비슷하다) 동안 강박적인 화면 구도 아래 집요하게 기록했다. 지난 10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가 젠더 이슈라는 점을 상기시켜 보면, 페미니즘 영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잔느 딜망>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건 파격인 동시에 꽤나 드라마틱한 수순이라는 자각마저 든다.
- 잔느 딜망
-
감독 샹탈 애커만
출연 샹탈 애커만, 자크 도니올-발크로즈, 델핀 세리그
개봉 미개봉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