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자>의 결말이 담겨있습니다
흥미진진하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서투른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3대 거장에 드는 감독의 신작이었지만, 어딘가 어물어물 넘어가는 구석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잊지 못할 여운을 남겼다. 2017년에 이 영화만큼 결말이 마음에 드는 건 몇 없었다. 6월의 끝자락에서 만난 <옥자>는 그랬다.
- 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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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봉준호
출연 틸다 스윈튼, 폴 다노, 안서현
개봉 2017 대한민국, 미국
<옥자>의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하면, 잘 모르겠다. 옥자의 그 귀여운 외형이 좋기도 했고, 미자의 애타는 "옥자야!"라는 외침이 닿기도 했고, 평소 눈여겨보던 폴 다노의 J가 보여주는 젠틀함이 저릿하기도 했고, 제이크 질렌할과 틸다 스윈튼을 비롯한 배우들의 고품격 연기가 아름답기도 했고, 봉준호 감독 특유의 엇나간 개그가 좋기도 했다. 중후반부에 다소 지루한 감도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묘하게 취향에 딱딱 맞는 영화였다.
하지만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결말이다. <옥자>에서 미자는 금돼지를 넘겨주고 옥자를 찾아온다. 돈에 충성하는 낸시는 옥자를 곱게 집으로 보내준다. 미자는 몰래 슈퍼 돼지의 새끼 한 마리를 숨겨오고 두 마리와 (미자의 할아버지까지) 두 사람은 함께 산다. 고난이 가득했던 산골 소녀의 서울·미국 체험기는 그렇게 행복하게 끝이 난다.
그렇다고 진짜 ‘해피엔딩’이라 믿었을 관객은 없을 것이다. <옥자>의 오프닝과 엔딩은 대구(對句)인데, 그 분위기가 명백히 다르니까. 미자의 의상은 물론이고 지독하게 서정적인 음악, 오프닝과 달리 한 번도 제대로 접촉하지 않는 옥자와 미자. 식사하는 미자와 할아버지 사이의 침묵.
나는 이 찝찝한 해피엔딩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 결말은 <옥자>가 담고 있는, 승리한 영웅의 금의환향기란 표면적인 스토리(혈혈단신으로 적진에 침투해 포로를 구출하지 않았는가)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마주한 시골 아이의 패배란 상징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특히 옥자가 미자에게 뭔가 귓속말을 건넬 때, 미자를 연기한 안서현의 묘한 미소는 여러 상상을 모두 만족시켜준다. 그 표정에서 ‘고맙다’라는 옥자의 말에 뿌듯함이나 고마움보다 그런 말(혹은 위로)은 전혀 쓸모없다는 허무함을 대입하기에도 충분했다.
미자는 아무 대가 없이 옥자를 데려온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인생이 통째로 담긴 (그리고 손녀를 향한 헌신 그 자체인) 금돼지를 통째로 넘기고 옥자를 찾아왔다. 부당한 사회의 방식을 수용했다. 심지어 돌아오는 길엔, 산골짜기 무릉도원이 아닌 진짜 현실을 사방에서 목도했다. 그가 본 수많은 ‘옥자’는 <괴물>의 강두(송강호)가 한강을 쳐다보는 장면을 연상시키듯 마지막 장면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있다.
봉준호스럽다. 그게 <옥자>의 핵심 포인트다. 봉준호 감독은 누누이 패배를 강조해왔다. 그의 영화에서 패배는 피할 수 없는 관문이었고, 급기야 최신작들에서는 '망각'(<마더>) 혹은 '전복'(<설국열차>)만이 답이라고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봉준호 감독의 영화였기에 <옥자>의 승리와 패배가 뒤엉킨 결말은 오히려 편안했다. 또 다시 우리는 패배할 것이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까.
<옥자> 엔딩의 무엇이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남는지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건 오래전부터 느꼈던 체념을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루 11시간 넘게 일을 해 부당하다 느껴도 쉽게 일을 관둘 수 없던, 내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사기 위해' 마침내 부당한 자본주의에 종사하며 ‘철이 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단순히 해피 엔딩으로 위장한 새드 엔딩을 잘 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많은 영화들이 도전하지만 이렇게까지 복합적인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재현하는 경우는 드무니까, 동물과 사람이 함께하는 기묘한 유사가족 관계 역시 거의 볼 수 없으니까,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옥자>가 개봉하고 한 달 뒤, 7월 26일 <군함도>가 역대 최다 스크린 수로 개봉했다. 그리고 얼마 뒤 <택시운전사>가 만만치 않은 스크린 수로 개봉했다. <군함도>나 <택시운전사>나 서로 대동소이한 수준의 영화였다. <군함도>는 손익분기점도 넘지 못했고 <택시운전사>는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나는 <옥자>를 떠올렸다. 수긍과 패배가 혼재한 그 해피엔딩을.
+ 사실 봉준호 감독 본인은 <옥자>가 "반자본주의 영화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역설적인 농담처럼 들린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성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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