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송하다’는 말이 유행이다. ‘문과여서 죄송하다’의 약어로, 고등학교 이과 수준의 수학, 과학 관련 상식을 문과생만 이해 못할 때 쓰거나, 문과 졸업생들이 이과 졸업생보다 낮은 취업율을 자조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음 영화들을 보면 결코 문송할 필요 없다. SF 영화지만 문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혹은 문과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SF 수작 다섯 편을 소개한다. 이 영화들을 보며 문송하지 말고, 문풍당당(문과+위풍당당) 하자. 소개할 다섯 편의 영화는 25일(토)부터 31일(금)까지 할인 행사를 진행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컨택트 Arrival, 2016 바로 보기

감독|드니 빌뇌브

주연|에이미 아담스, 제레미 레너, 포레스트 휘태커

어느 날 지구 주요 도시 12곳에 괴상한 비행 물체가 나타난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각국은 이 비행 물체를 연구하기 시작하고, 미 정부는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와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을 투입한다. 루이스의 기지로 생명체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알게 되지만, 지구의 어떤 것과도 다른 언어에 갈등은 점점 첨예해진다.

<컨택트>는 문풍당당하기 가장 좋은 SF 영화다. 왜? 일단 주인공이 과학자가 아닌 언어학자니까. 농담 같지만 진짜다. <컨택트>는 외계인들의 언어를 해석하는 과정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여느 SF 영화와 다르다. 물리적 충돌, 혹은 논리적 접근이 아닌 언어로 서로의 생각을 조금씩 교류해가는 과정은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다. 대놓고 학술적인 인용은 없지만, 언어학의 구조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영화 전체를 문학적인 완결성으로 다다르게 한다.

<컨택트>의 탄탄한 구조는 작가 테드 창의 감각에 기인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를 각색한 시나리오에 특유의 묵직한 쇼트들로 스크린을 채운다. 빼어난 배우임을 증명하듯 동분서주하는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가 극의 메시지에 힘을 실으며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보다 문학적이고, 그러면서도 명쾌한 영화가 있던가. 감히 말하자면 두 거장이 손을 맞잡으면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 <컨택트>라고 말하고 싶다.


타임 패러독스 Predestination, 2014 바로 보기

감독| 마이클 스피어리그, 피터 스피어리그

주연|에단 호크, 사라 스누크, 노아 테일러

바텐더(에단 호크)는 연쇄 테러범 ‘피즐 폭파범’을 잡기 위해 미래에서 온 요원이다. 과거로 돌아가 한 술집에 숨어든 그는 어느 날 존(사라 스누크)을 만난다. 존은 자신이 ‘미혼모‘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는 작가라고 말하고, 바텐더는 그에게 과거사를 들려주면 술 한 병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타임 패러독스>는 한국에 개봉하면서 ‘제목이 스포’라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사실 원제도 ‘프리데스티네이션(Predestination, 숙명)’이라는 다소 노골적인 제목을 택하고 있다. 그러니까 제목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대신 다른 것도 찾아보지 말고 영화를 곧바로 볼 것을 추천한다. 대강 ‘시간 여행에 관한 영화’ 정도만 알고 보면 꽤 인상적인 소품극을 만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간을 ‘흐른다’, ‘보낸다’는 단어로 표현한다.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타임 패러독스>는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어떡할래?”라는 그 흔한 질문으로 비틀고, 재조명한다. 아마 SF 영화를 즐겨 보는 분이라면 이 영화의 플롯은 쉽게 눈치채겠지만, 이 영화만의 시선에서 독창적인 구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컨택트>처럼 이 영화도 소설을 영화화했다. 원작인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단편 소설 <너희 좀비들>은 인터넷에서도 찾아 읽을 수 있으니 영화가 마음에 든다면 꼭 읽어보자.


바이센테니얼 맨 Bicentennial Man, 1999 바로 보기

감독|크리스 콜럼버스

주연|로빈 윌리엄스

앤드류(로빈 윌리엄스)는 리처드(샘 닐) 가족이 구입한 로봇이다. 여타 로봇들처럼 집안일을 돕던 앤드류는 어느 날부터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나무를 조각하는 등 창의성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리처드의 도움으로 수익을 보장받게 된 앤드류, 신체를 생체형으로 바꾸고 같은 ‘모델’을 찾아 나서는 등 여러 방면에서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나간다. 앤드류는 인간과 같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세계 의회에 자신을 인간으로 승인해달라고 요청한다.

인간은 영생을 꿈꾸지만, 로봇은 자유를 꿈꾼다. <바이센테니얼 맨>은 SF의 영원한 화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로봇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앤드류는 분명히 로봇이지만, 그의 성격이나 발상은 로봇 이상의 것이다. 이 중간적 존재의 이야기는 유쾌하고 감성적이지만,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인간의 정의’를 되돌아보게 한다. 물론 이런 논제는 많은 작품에서 다룬 바 있지만, <바이센테니얼 맨>은 외부자인 인간이 아니라 당사자 로봇의 시선에서 그리기에 색다른 느낌이다.

<바이센테니얼 맨>의 따스함은 앤드류를 연기한 로빈 윌리엄스에게 상당히 빚지고 있다. 앤드류는 로빈 윌리엄스가 직접 분장하고 연기한 덕에 그 특유의 미소를 닮았고, 관객들은 그에게 쉽게 빠져들게 된다. 로봇 앤드류가 보여주는 낙천적이고 기발한 발상도 로빈 윌리엄스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지는 편. 원래 팀 알렌, 톰 행크스 등 앤드류 역으로 고려됐다고 하지만, 로빈 윌리엄스만한 적임자가 또 있을까 싶다.


가타카 Gattaca, 1997 바로 보기

감독|앤드류 니콜

주연|에단 호크, 우마 서먼, 주드 로

유전공학이 발달한 미래,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빈센트(에단 호크)는 우주에 가고 싶지만, 열성인자 때문에 청소부 같은 궂은일밖에 할 수 없다. 그는 우성인자로 태어난 제롬(주드 로)의 신분을 빌려 가타카 사에 입사한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우주 탐사를 앞둔 어느 날, 감독관이 살해당한다. 현장 부근에서 빈센트의 눈썹이 발견되면서 수사망은 점점 빈센트를 향해 좁혀온다.

육아에 대한 심리학 중 이런 게 있다. 시험을 잘 본 아이들에게 “머리가 정말 좋구나”보다 “정말 많이 노력했구나”라고 칭찬해줘야 한다고. 전자의 경우 실패를 겪으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좌절하지만, 후자는 노력에 중점을 둬서 다음에 더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노력은 단순한 마음가짐 이상의, 앞으로의 행동 양식을 정하는 지표인 셈이다.

<가타카>의 세계는 그래서 죽은 거나 다름없다. 유전자 공학으로 우수한 인재를 무한히 ‘생산’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명백한 한계점이 존재한다.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정해진 이들은 그 이상으로 도전하지 않고, 그런 이들이 중심인 사회는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뚜렷한 경계선에서 생기를 잃는다. 부적격자라서 출발선에도 서지 못한 빈센트는 본인의 노력으로, 능력으로 끝끝내 해낸다. 세상은 몰라도 그는 그 자신의 힘으로 해냈다. <가타카>는 말한다. 당신은 충분히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새라고.


콘택트 Contact, 1997 바로 보기

감독|로버트 저메키스

주연|조디 포스터, 매튜 맥커너히

엘리 애로웨이(조디 포스터)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우주에 다른 생명체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는 어릴 적 라디오를 통해 타지의 사람과 교신한 것처럼, 지금도 우주로 주파수를 보내 외계의 신호를 기다리는 연구를 하고 있다. 성과가 없어서 연구가 강제 종료될 거라는 소식을 들은 어느 날, 엘리는 베가에서 보낸 메시지를 받게 된다.

많은 SF 영화들이 장르적인 이야기를 택한다면, <콘택트>는 진정 공학도의 꿈을 실현한 작품이다. 「코스모스」 저자이자 천문학의 대중화를 이끈 칼 세이건이 쓴 소설 <콘택트>가 원작이기 때문이다. 극중 연구 과정이나 연구 지원에 관해선 상세하게 묘사되고, 과학의 발견이 사회에 미치는 여파 또한 그럴싸하게 그려진다.

우주에서 눈으로 이어지는 오프닝 타이틀. (출처 Art of title)

하지만 이 진성 공학도가 쓴 작품에 ‘문풍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작품을 관통하는 낭만 때문이다. “이 우주에 우리만 있다면, 얼마나 공간 낭비일까”라는 명제에서 시작한 <콘택트>는 우리보다 우수한 지적 생명체가 우리를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으로 가득하다. 이성적으로 증명하려면 일단 믿고 시도해야 한다는 이 영화의 태도는 이과/문과라는 구분을 넘어 우주에 대한 경외를 갖게 만든다. 덧붙이자면 NASA는 2015년, 우주에서 지구는 일찍 탄생했으며 인간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다른 지구의 ‘베가’가 될 가능성도 충분하지 않을까.

원작자 칼 세이건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