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는 묘한 점이 있다. 몇 년 전에 나온 최근 작품이나 20~30년 전에 나온 작품이 얼핏 비슷해보인다는 거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당연히 세월의 흔적이 보이긴 한다. 그럼에도 굳이 제작연도를 찾아보지 않는다면 각 작품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착시(?) 덕분일까. 2019년 상반기에만 1980년대에 만들어진 두 편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극장에 다시 찾아왔다. 6월 6일 <이웃집 토토로>에 이어 26일 <마녀 배달부 키키>가 재개봉했다. 두 편의 애니메이션이 나온김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80년대 작품을 더 소개해보고자 한다. 모두 4편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가정을 해보자. 당신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떤 작품을 보고 난 뒤,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그렇다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당장 봐야 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보다 더 유명한 다른 작품을 먼저 보고 싶다면? 그래도 괜찮다. 다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보고 나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왜냐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특유의 스타일, 주제의식이 응축돼 있는 작품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다. 비행, 소녀, 서구식 시대 및 공간 배경, 벌레, 추격전, 노파, 자연 등.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뽑아낼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만의 고유한 요소가 이후 그가 만든 모든 작품에 녹아 있다. 진지하게 그의 작품 세계가 궁금하다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관람 리스트의 최상단에 놓기를 추천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진정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1호다. 혹시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원작 만화가 있다. 원작자는 다름 아닌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1986)
<천공의 성 라퓨타>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하기 위해 설립한 톱 크래프트가 지브리로 재편됐다. 회사 이름이 달라졌어도 작품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걸리버 여행기>와 존 포드의 영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서 영향을 받은 <천공의 성 라퓨타>는 누가 봐도 단번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스타일과 주제로 가득하다. 특히 어른의 세계(문명과 탐욕)와 소녀, 소년의 세계(자연과 순수)가 대립하는 구도는 <천공의 성 라퓨타>의 핵심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천공의 성 라퓨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날로 증가하는 컴퓨터의 사용은 그것 자체로 해로운 물건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는 점이 문제다. 난 비관론자가 아니며 아이들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만들 수 있는지 그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작품을 통해 도울 수 있다.” 1980년대 당시 컴퓨터에 대한 어떤 두려움과 걱정을 보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천공의 성 라퓨타>를 어린 세대를 위해 만들었다. 그때 어린이들은 이제 어른들이 됐을 것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을 보며 느끼는 감동의 깊이는 어른쪽이 더 할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천공의 성 라퓨타>를 보고 나면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파란 하늘을 자꾸 쳐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라퓨타 신드롬이다.
<이웃집 토토로>(1988)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스튜디오 지브리의 로고로 쓰이는 캐릭터 토토로는 작품 밖에서도 크게 사랑받고 있다. 토토로 인형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가장 익숙하고, 캐릭터 인형이 많이 팔린다는 걸 압축해서 말하면 이렇게 된다. <이웃집 토토로>는 가장 대중적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다. 그렇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거신병 인형이 그렇게 많이 팔릴 일은 없다. 가장 대중적인 주제의 <이웃집 토토로>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천공의 성 라퓨타>와 달리 일본 고유의 것에 집중한 작품이기도 하다. 1950년대 일본 시골이 배경이라는 이유로 흥행하기 힘들 거라고 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웃집 토토로>를 밀어붙였다. 흥행을 위해 <반딧불의 묘>와 동시 개봉했고 실제로 <이웃집 토토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 다만 개봉 당시 흥행 성적이 이 작품을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DVD, 토토로 인형 등의 <이웃집 토토로>의 부가판권 시장 수익은 무시무시했다. 이런 현상은 일본 개봉 이후 시간이 한참 지난 국내에서도 일어났다. 2001년 7월,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한 <이웃집 토토로>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과 더불어 많은 팬들을 만들었다.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이웃집 토토로>에도 주의사항이 하나 있다.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나면 엔딩곡으로 쓰인 주제가를 자꾸 부르게 될 수도 있다. “토 토 로 토토로♪ 토 토 로 토토로 ♩”
<마녀 배달부 키키>(1989)
어쩌면 <마녀 배달부 키키>는 가장 미야자키 하야오스럽지 않은 작품일지도 모른다. 빗자루를 타고 푸른 하늘을 활강하는 어린 마녀 키키의 모습은 전형적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비행의 요소다. 다른 작품과 유사해보이지만 제작 배경을 알고 나면 달라보인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안이 아닌 카노도 에이코의 원작 동화가 있다. 그 전까지 나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모두 그가 만든 이야기였다. 또 제작 초기 그는 연출자가 아닌 프로듀서였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젊은 애니메이터들이 주축이 돼서 만들기로 했다. 어린 마녀(소녀)가 성장하는 이야기와도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여러 사정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연출자로 나중에 이름을 올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각색이 추가됐지만 <마녀 배달부 키키>는 묵직한 주제의식이 있는 작품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소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3살이 되어 수련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 마녀 키키를 응원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면 된다. 단, 방심하고 있다가 불현듯 눈가가 촉촉해질 수도 있다. 걸작이라고 평가하긴 어려운 <마녀 배달부 키키>는 <이웃집 토토로>의 거의 두 배가 넘는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지브리는 이를 기반으로 더욱 더 성장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제작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연출의 애니메이션 4편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1980년대의 작품과 최근의 그림이 많이 달라지지 않다는 점보다 중요한 건 역시 재미다. 새삼 놀랍다. 그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의 집념과 노력이 있었기에 스튜디오 지브리는 <붉은 돼지>(1992)를 거쳐 <모노노케 히메>(1997)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로 이어지는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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