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1999)를 4DX 버전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20세기 마지막 SF 액션 걸작을 둘러싼 제작 비화들을 전한다.


오프닝 속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가 보여주는 액션은 6개월간 연습을 거쳐 4일간 촬영됐다.


원화평 무술감독은 원래 <매트릭스> 참여를 거절했다. 시나리오를 받은 후에는 워쇼스키 자매가 포기하도록 터무니없는 페이를 요구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다음엔 무술 관련해서 모든 통제권을 자신이 쥐고, 촬영 4개월 전부터 배우들을 훈련시키겠다는 강수를 뒀지만, 워쇼스키 자매는 그의 안을 모두 받아들였다. 실제 주연배우들은 1997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무술 전문가들과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영화 초반 네오와 모피어스가 네오의 직장 메타코텍스에서 처음 휴대폰으로 대화를 나누는 신, 키아누 리브스는 34층 높이 창문가에 매달려 촬영에 임했다. 스턴트맨도 없이.


캐리 앤 모스는 촬영 중에 발목을 접질렀지만, 제작진이 자신을 다시 캐스팅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촬영이 끝날 때까지 이 사실을 아무에게로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매트릭스>는 모스가 배우 데뷔 10년 만에 대작에서 주연을 맡은 첫 작품이었다. 참고로 모스가 트리니티 역을 위해 본 오디션은 트리니티가 클럽에서 네오를 처음 만나는 신이었다.


빨간 알약을 삼킨 네오는 온몸이 이상해지는 걸 느끼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유선형 공간에서 깨어난다. 키아누 리브스는 네오의 깡마른 외모를 위해 7kg을 감량했고, 전신 제모를 감행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모피어스는 꿈의 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 모피어스는 사람들을 꿈에서 현실로 깨우는 역할을 한다.


의상 디자이너 킴 바렛은 빠듯한 예산 탓에, 트리니티의 옷은 값싼 PVC 재질로 제작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네오의 코트 역시 1야드 당 3달러도 안 하는 울 혼방 소재로 만들었다. 한편 그의 코트는 처음엔 은회색 가죽으로 계획됐지만 소재가 무거워 너풀거렸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의도를 따라가지 못하자 소재를 모두 패브릭으로 교체한 것이다.


스위치

네부카드네자르 호의 일원인 스위치 역의 벨린다 맥클로리는 반쪽짜리 캐릭터 오디션을 봤다. 본래 스위치는 성별이 명확하지 않은 캐릭터였고 '전환'이라는 그 이름처럼 현실에서는 남자 배우가, 매트릭스에서는 여자 배우가 연기하는 설정이었다. 워너 브라더스의 결정으로 맥클로리 혼자 스위치를 연기하는 걸로 정해졌다.


초반 45분 동안 네오는 80개의 대사를 치는데, 그 중 절반이 넘는 44개가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네오는 1분에 한 번꼴로 누군가에게 묻는 셈이다. 하루아침에 매트릭스와 자신이 네오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니까.


매트릭스 안에서 보이는 모든 동물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것이다.


워쇼스키 자매는 5년반 동안 시나리오를 14고나 거쳐 <매트릭스>의 세계관을 구축했다. 시나리오를 본 수많은 영화사 대표들이 그들의 아이디어를 마음에 들어했지만, 이걸 어떻게 스크린에 이미지로써 구현해낼지는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결국 워쇼스키는 일러스트레이터 스티브 스크로스와 제프리 대로우를 기용해 600개가 넘는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나서야 자신의 비전을 전달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제작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스크로스와 대로우는 나머지 <매트릭스> 시리즈, <스피드 레이서>(2008), <닌자 어쌔신>(2009)의 스토리보드를 작업해 워쇼스키와의 연을 이어갔고, 현재 제작이 확정된 <매트릭스 4>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탱크(마커스 총)가 네오에게 무술 데이터를 업로드 할 때 모니터에는 주짓수, 쿵푸, 태권도(!), 그리고 취권이 보인다. 취권은 성룡 주연의 영화 <취권>(1978)에 등장하는 무술이다. 이 영화는 <매트릭스>의 무술감독인 원화평이 무술은 물론 감독까지 맡았고, 그의 아버지 원소전이 취권의 창시자 소화자를 연기했다. 원화평 부자에 향한 오마주라 봐도 될 법하다.

<취권>의 성룡과 원소전


주요 배우/스탭은 매트릭스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을 읽어야 만했다. 영화 초반에 토마스(키아누 리브스)가 디스켓을 숨겨놓은 곳이 바로 이 책의 '허무주의에 관하여' 장이다. 한편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매트릭스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다가 내뱉는 "실재의 사막에 온 걸 환영하네"는 <시뮬라르크오와 시뮬라시옹>에 등장하는 문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리브스는 이와 더불어 케빈 켈리의 <통제불능>, 딜런 에반스/오스카 저레이트의 <진화심리학> 등을 읽어 그 책의 개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캐리 앤 모스 또한 이 과정에 대한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모피어스가 이끄는 군함 네부카드네자르는 성경에 등장하는 바빌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 2세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는 유다 왕국을 정복하고, 아내를 위해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건설했다. 다니엘서 2장은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꿈을 품고 있지만, 답을 구하고자 하는 걸 그려내고 있다.


스미스 요원 / 월터 크롱카이트 / 모피어스

휴고 위빙은 스미스 요원의 목소리를 1950년대 뉴스 앵커들의 스타일을 따왔고, 모피어스 역의 로렌스 피시번은 케네디 암살사건, 아폴로호의 달 착륙 등을 보고도한 CBS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의 음성을 레퍼런스 삼았다.


워쇼스키 자매는 모피어스를 닐 게이먼의 코믹스 <샌드맨> 속 드림이라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했다고 밝혔다. 드림은 수많은 이름을 갖고 있는데 모피어스도 그 중 하나다. 한편 로렌스 피시번은 모피어스가 <스타워즈>의 오비완 케노비와 다스 베이더가 하나로 구현된 것 같은 캐릭터라고 말했다.


<매트릭스>는 호주에서 촬영을 진행한 덕분에 6천만 달러로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는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의 예산에 1/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미국에서 찍었다면 1억8천만 달러는 들었을 거라고. 빨간 드레스의 여인이 등장하는 신은 시드니의 금융/상업의 중심지인 마틴 플레이스에서 찍었다. 요원들에게 붙잡힌 모피어스를 구출하는 곳은 콜럼버스 픽처스 시드니 지사의 시사실이다.


<매트릭스>에 캐스팅 된 키아누 리브스는 경추 통증이 다리를 마비시켜 목 수술을 받았다. 프리 프로덕션이 진행될 즈음엔 한창 회복 중이었지만 리브스는 액션 트레이닝을 받겠다고 고집했고, 원화평 무술감독은 펀치나 가벼운 동작 정도만 연습하도록 했다. 4개월의 트레이닝 기간 중 2달이 넘는 동안 리브스는 발차기를 하지 못했고, 영화에서도 킥 동작은 상대적으로 적게 나온다. 네오와 모피어스의 도장 대련 신에서 나오는 3단 차기는 리브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단 세 번의 테이크만으로 찍은 것이다. 한편, 회복기간을 고려해 촬영 초반엔 액션이 적은 토마스의 회사, 운전, 취조, 오라클과의 만남 신을 촬영했다.


워쇼스키 자매는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1988), <무사 쥬베이>(1993), <공각기동대>(1995)에서 큰 영감을 얻었고, 프로듀서 조엘 실버에게 이 작품들을 보여주면서 "이것들을 꼭 실현시키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한다.

<아키라> / <무사 쥬베이> / <공각기동대>


로비 총격신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든 총기는 사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조품이다. 맨 처음 보안경찰들을 쏘아대는 MP5K 총기는 실제로 3kg에 육박하는 무게인데, 플라스틱 모형은 200g도 되지 않아서 촬영이 한결 수월히 진행됐다.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매트릭스> 역시 수많은 배우들에게 출연 제안됐다. 조니 뎁은 워쇼스키 자매가 네오 역에 가장 원했던 배우였고, 워너 브라더스는 발 킬머나 브래드 피트를 원했다. 윌 스미스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1999)를 찍기 위해 네오 역을 거절했고, 나중에 "당시 난 배우로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역을 맡았다면 분명 그걸 망쳤을"거라면서 배역을 고사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완 맥그리거는 <스타워즈: 보이지 않는 위험>(1999)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영화에 특수효과가 많다는 점을 이유로 거절했다.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윌 스미스 / <스타워즈: 보이지 않는 위험>의 이완 맥그리거

윌 스미스의 아내인 제이다 핑켓 스미스는 트리니티 역에 오디션을 봤지만 결국 <매트릭스 리로디드>(2003)에서 조연 니오베를 연기했다. 산드라 불럭은 상대역인 네오의 배우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아 거절했지만, 결국 <스피드>(1994)와 나중에 <레이크 하우스>(2006)까지 함께하는 키아누 리브스가 네오 역을 맡게 됐다. <X파일> 시리즈의 질리안 앤더슨도 트리니티 역 물망에 있었다. 러셀 크로우는 시나리오에 아무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장 르노는 <고질라>(1998)에 출연하고 호주로 가고 싶은 의지도 없어 모피어스 역을 고사했다. 게리 올드만, 새뮤얼 L. 잭슨, 러셀 크로우, 주윤발도 모피어스 역을 거절했다. 워쇼스키 자매는 1991년 작 <위험한 선택>의 연기를 보고 스미스 역에 휴고 위빙을 캐스팅 했다.

<매트릭스 리로디드>의 제이다 핑켓 스미스 / <위험한 선택>의 휴고 위빙


클라이막스의 네오와 스미스 요원의 지하철 격투 신은 10일이 넘는 촬영 끝에 완성됐다.


키아누 리브스의 스턴트맨은 네오가 스미스를 들처서 천장에 꽂는 신을 찍고서 갈비뼈, 무릎이 깨지고 어깨가 빠졌다. 그 스턴트맨이 바로 훗날 키아누 리브스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는 <존 윅> 시리즈의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