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극장가도 초토화됐다. 2004년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이 가동된 이래 최악의 비수기이자 한파가 닥쳤다. 국내외 신작들의 공개는 대부분 미뤄졌지만, 그럼에도 굳건히(?) 개봉하는 소수의 영화들이 있다. 세계 최대의 화학회사인 듀폰사가 저지른 추악한 만행과 감춰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오랜 기간 법정 투쟁을 벌인 환경 스캔들을 소재로 한 사회고발 영화 <다크 워터스>가 그중 하나다.
실화가 갖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영화와 달리 정의를 실현하고, 진실을 수호하기 위해선 현실의 만만치 않은 벽과 부딪쳐야 한다. 권력과 거대 자본 앞에서 가해지는 수모나 비방, 정신적 육체적 고통, 경제적 핍박은 상상이상이다. 하지만 현실 속 주인공들은 상처뿐인 영광이라도 더 나은 미래와 사회를 위해서라면 이런 모진 풍파와 시련을 감내하고 묵묵히 견뎌냈다.
재밌게도 작년 하반기 미국에선 <다크 워터스>를 비롯해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완성도 높은 사회고발 영화가 세편 만들어졌다. 각각 주제도 겹치지 않게 환경(다크 워터스)과 정치(더 리포트), 그리고 사회 문제(밤쉘)를 다루며, 좋은 배우들과 탁월한 제작진이 뭉쳐 인상적인 결과물을 안긴다. 지난주 개봉한 <다크 워터스>나 OTT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으로 올겨울에 공개된 <더 리포트>에 이어 <밤쉘>도 조만간 봄에 국내에 개봉될 예정이다. 이들 영화와 음악에 대해 소개해본다.
다크 워터스
음악: 마르첼로 자보스
<캐롤>의 토드 헤인즈가 연출한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진 가장 안정적인 화합물 PFOA가 가장 위험한 화합물로 밝혀지며 지구 전반에 끼친 무서운 파급력에 대해 고발한다. 미국을 대표하던 듀폰사는 부도덕하게도 이를 수십 년간 은폐해왔지만, 한 변호사의 끈질긴 투쟁 끝에 서서히 탄로 나기 시작한다. 자본과 권력을 이용해 회유하려던 듀폰의 검은 속내는 마치 과거 일본에서 미나마타병을 야기한 신일본질소비료나 국내에 가습기 살균제를 팔았던 옥시를 비롯한 여러 대기업들의 횡포를 보는 듯 답답하면서 참담한 공포를 안겨주는데, 이 과정을 느릿하지만 치밀하면서 소름 끼치게 전달하는 토드 헤인즈의 관조적인 연출력은 조용한 소름을 돋게 만든다. 제작자로도 참여한 마크 러팔로와 앤 헤서웨이, 팀 로빈스, 빌 캠프 등 여러 배우들의 호연은 영화를 더욱 인상적으로 각인시킨다. 물론 음악을 담당한 마르첼로 자보스의 ‘어두운 물’처럼 서서히 관객 곁으로 다가오는 스코어도 매우 효과적이다.
독성 화합물의 서늘한 공포를 암시하는 동시에 주인공의 강단 있는 심지를 상징하는 차가우면서도 강직한 피아노 소리가 사운드트랙 전반을 수놓고 있는데, 이는 브라질 출신의 마르첼로 자보스가 영화음악가 이전에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토드 헤인즈는 <벨벳 골드마인>부터 TV시리즈 <밀드레드 피어스>, <캐롤>, <원더스트럭>까지 함께 한 카터 버웰 대신, 여러 다큐멘터리들과 드라마 장르에서 장기를 보인 마르첼로를 택하며 실화의 묵직한 전율과 인내 어린 투쟁을 이어온 한 변호인의 투지를 뚝심 있게 담아내길 바랐다. 이미 실화 바탕의 <챈스 일병의 귀환>과 <유 돈 노 잭>으로 에미상 후보에 오르며 탄탄한 실력을 발휘했던 터라, 이번 <다크 워터스>에서도 특유의 현실 감각 넘치는 미묘한 일렉트릭 사운드와 스트링을 통해 섬세한 감정과 심리적 굴곡, 외부 압박과 긴장감 그리고 공포를 다양하게 포착하고 있다. 무엇보다 피아노를 통해 상반되면서도 다층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더 리포트
음악: 데이빗 윙고
현재 코로나 사태를 예측한 <컨테이젼>의 작가이자 스티븐 소더버그와 협업해온 스콧 Z. 번스의 연출 데뷔작으로, 911 테러의 배후를 밝힌다는 명목하에 CIA가 저지른 비도덕적인 가혹 행위를 파헤친 다니엘 J. 존스의 보고서에 대한 영화다. <모두가 대통령인 사람들>이나 <암살단>, <유령작가>와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페어 게임> 등 일련의 정치 스릴러들과 맞닿아있는 이 작품은 어떻게 고문과 같은 잔혹하고 불법적인 심문이 현장에 적용되고, 그럴듯한 명분 아래 자행되고 은폐됐는지 거침없이 해부해간다. 테러라는 잔혹한 행태에 맞서 역시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응수한 미 정부의 추악한 민낯을 밝히기 위해 몇 년 간 70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리포트에 매달린 다니엘과 그를 지지한 파인스타인 상원 의원의 이야기는 잘못된 사실을 직시하고, 이를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인물들의 저력에 대해 예찬하고 박수를 보낸다. 아담 드라이버와 아네트 베닝, 존 햄, 마이클 C. 홀 등의 열연은 두말하면 잔소리.
음악을 맡은 데이빗 윙고는 ‘올라 포드리다’라는 텍사스 기반의 인디 락 밴드로 활동하는 동시에, 어린 시절 친구인 데이빗 고든 그린의 여러 영화들에서 음악을 맡으며 영화음악가로 데뷔했다. 무엇보다 제프 니콜슨 감독과의 협업도 빼놓을 수 없는데, <테이킹 쉘터>와 <미드나잇 스폐셜>로 영화만큼 음악도 호평을 받았다. 이번의 <더 리포트>는 홀로 7000페이지에 이르는 리포트에 파묻혀 작업해간 다니엘의 고독하고 끈질긴 심리를 담아내기 위해 드론과 같은 음울하면서도 반복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주가 되는데, 여기에 전통적으로 국가를 상징하는 듯한 애국적인 혼악기 음색과 군악대 드럼 비트를 적절히 혼용해 정치 스릴러로서의 정체성도 잊지 않는다. 게다가 70년대 사회 고발물에서 활약한 영화음악가 데이빗 샤이어나 마이클 스몰의 분위기도 묘하게 일렉트릭 사운드로 이식, 투영하며 자신의 스타일 아래 장르적 컨벤션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중량감이 묻어나는 색다른 정치 스릴러 스코어.
밤쉘
음악: 테오도르 샤피로
<밤쉘>은 미국 뉴스 시청률 1위를 자랑하는 보수 성향의 폭스 뉴스 채널 창립자이자 수장인 로저 에일스가 2016년 직원들을 상대로 한 성추문 스캔들을 다룬 작품이다. <조커>로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토드 필립스나 <그린 북>으로 오스카를 수상한 피터 페럴리처럼, 제이 로치 감독도 <오스틴 파워>나 <미트 더 페어런츠>처럼 메가톤급 히트를 기록한 코미디 영화로 출발했지만 <트럼보>에 이어 이번 영화까지 본격적이고 진지한 방향으로 선회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간판 캐스터 메건 켈리 역을 맡은 샤를리즈 테론과 미스 아메리카 출신의 앵커 그레첸 칼슨 역을 맡은 니콜 키드먼, 지금은 사망한 로저 에일스 역을 맡은 존 리스고의 분장이 화제가 되며 92회 오스카 분장상을 수상했다. 여기에 마고 로비와 앨리슨 제니, 케이트 맥키넌까지 쟁쟁한 여배우들들의 열연과 루퍼스 머독 역을 맡은 말콤 맥도웰까지 가세하며 ‘미투’운동이 벌어지기 직전의 실화 사건을 생동감 있게 재현해냈다.
음악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코미디와 소소한 드라마에 강세를 보여 온 테오도르 샤피로가 맡았다. 그런 만큼 그는 토드 필립스나 제이 로치, 데이빗 프랭클, 로슨 마샬 터버, 벤 스틸러, 폴 페이그, 캐런 쿠사마 등의 감독들에게 특히 사랑(?) 받아 왔다. 이번 <밤쉘>에서도 무겁고 진지한 느낌보다는 경쾌하고 업 된 톤으로 성추행이란 실제 사건의 심각함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내고 있다. 마치 토머스 뉴먼이 대니 엘프먼을 만난 느낌인데, 여성 허밍을 메인으로 삼은 아카펠라에 신디, 단호한 퍼쿠션, 스트링과 건반이 만나 신묘하고 매력적인 스코어를 완성했다. 감각적이면서도 탁월한 멜로디 감각으로 접근한 그의 음악은 보다 여성의 목소리를 찾아나가는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데, 곳곳에서 남성성을 대변하는 소리들과의 충돌은 의미심장하다. 최종 후보에 오르진 못했지만 그 바로 직전의 오스카 음악상 쇼트리스트 15편 중 하나로 선정됐다. 레지나 스펙터가 주제가 '원 리틀 솔저'를 직접 작곡하고 불러 힘을 보탠다.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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