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당신의 부탁>은 사망한 남편의 전처 아들을 맡게 되면서 발생하는 여러 상황을 그리고 있는데요. 배우자가 사망하면 사망한 배우자의 가족과 나는 여전히 가족일까요. 배우자 사망 시 관계가 법적으로 어떻게 변하는지 이 영화를 통해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효진(임수정)은 32살로 2년 전에 사고로 남편(김태우)을 잃고, 친구 미란(이상희)과 공부방을 함께 운영하면서 혼자 살고 있는데, 갑자기 죽은 남편의 동생 경택(김민재)으로부터 죽은 남편의 전처 아들인 16세 종욱(윤찬영)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효진이 고민 끝에 종욱을 맡기로 하자, 미란은 효진한테 ‘니가 엄마고 법적으로 남남은 아니고 걔를 키워야 할 사람이 너가 될 수도 있지만, 걔를 키우지 말아야 할 사람도 너다’라고 한 소리 합니다. 여기서 미란의 말은 맞는 말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어요.
먼저 간단하게 용어부터 정리해보면, 우리가 흔히 ‘친척’이라고 말하지만, 법상 ‘친족, 혈족, 인척’이 정확한 용어에요. 혈족은 나와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인데, 직계혈족(예: 부모님, 자녀)과 방계혈족(예: 형제자매, 조카, 삼촌, 이모, 고모, 사촌)이 있어요. 인척은 혈족으로부터 연결된 관계(예: 계모, 계부, 며느리, 사위, 숙모, 이모부, 고모부, 사촌의 배우자)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고, 배우자의 혈족(예: 배우자의 부모∙자녀∙형제자매)도 나와 인척관계가 형성돼요. 그리고 혈족, 인척, 배우자를 아우르는 개념이 바로 ‘친족’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친척’이라는 의미는 ‘혈족과 인척’을 의미하는 경우라고 보면 맞을 것 같네요(배우자를 친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깐요).
결혼해서 배우자의 혈족과 인척관계가 형성되면, 그 관계는 언제 소멸할까요. 일단 이혼하면 즉시 소멸해요(혼인 취소도 혼인이 없었던 것이 되니까 당연히 인척관계는 소멸해요). 그러나 배우자가 사망하면 즉시 관계가 끊기는 게 아니고, 살아있는 배우자가 재혼해야 관계가 소멸합니다. 영화에서 효진은 재혼을 안해서 죽은 남편의 동생 경택과 여전히 인척관계에요. 그리고 종욱은 죽은 남편의 혈족{정확하게는 직계혈족(직계존∙비속) 중에서 직계비속이죠}이므로 역시 인척관계죠. 결론적으로 미란의 말 중 법적으로 남남이 아닌 것은 맞고, 엄마라는 것은 틀렸어요. 모자관계는 출산이나 입양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효진은 종욱을 입양한 건 아니라서 법적으로 엄마는 아닌거에요.
효진이 종욱을 맡아 자신의 집에서 같이 살면 가족이 됩니다. 가족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지만, 법에서 말하는 가족이란 ‘배우자, 부모, 형제자매’와 인척에 해당하는 ‘계부, 계모, 며느리, 사위, 배우자의 부모∙자녀∙형제자매’를 말하는데 후자는 생계를 같이해야 가족이에요. 종욱은 효진의 죽은 남편의 아들이고 같은 집에 살면서 생계를 같이하면 비로소 가족이 된다고 할 수 있어요.
종욱은 친엄마를 찾아다니는데, 우여곡절 끝에 종욱이가 꼬맹이 때 집을 나가서 무당이 된 연화(김선영)을 만나요. 연화는 경수가 종욱의 모 사망 후에 만난 사람으로, 효진이와 재혼하기 전에 같이 살았던 사람이에요. 영화에서 경수와 연화가 법률상 부부였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법률상 부부였어도 경수가 효진과 혼인신고를 하려면 연화와의 혼인관계가 정리되어야 하므로, 경수와 연화는 처음부터 남남(사실혼인 경우)이거나 이혼한 관계에요. 따라서 연화 입장에서 종욱은 이혼한 남편의 아들이고 이혼하면 즉시 인척관계가 소멸하므로 연화와 종욱은 법적으로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영화 줄거리의 다른 축은 종욱의 친구 주미(서신애) 이야기에요. 영화에서 아기 아빠가 누군지 명확하게 안 나오는데 주미는 임신을 하고 아기를 서영(서정연) 부부에게 보냅니다. 영화에서 종욱은 ‘아기를 판다’고 표현하지만, 아기 매매는 불법이고 주미는 병원에서 출산을 하므로 서영 부부가 입양을 한 것으로 보는 게 맞아요. 입양에는 친양자 입양과 (일반)입양이 있는데요. 입양은 원래 입양된 때부터 양부모의 친생자가 되는 건데, 입양 사실을 숨기고 친자식처럼 키우고 싶은 현실을 반영해서 부부의 혼인중 출생자로 인정하는 친양자 제도가 2005년경에 생겼어요. 참고로 친양자가 되면 그 전의 친족관계는 종료해요. 그래서 친양자입양 요건은 더 엄격한데 입양하려는 부부는 원칙적으로 혼인한 지 3년 이상 되어야 하고 친양자가 될 사람은 미성년자로서 친생부모의 동의가 필요해요. 영화에서 서영은 고등학생의 이모뻘로 나오니까 나이로 추측컨대 결혼한 지 3년이 넘었다고 보이고 주미가 직접 결정해서 아기를 보내는 것이므로 친양자 입양요건이 충족되어 아마도 서영부부는 친양자입양을 한 것으로 보여요. 참고로, 대리모는 대리모의 난자를 이용하거나 부부의 난자와 정자로 체외수정한 뒤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영화에서 주미는 제3자와 임신을 한 뒤 서영부부를 만났기 때문에 대리모는 아니에요.
<당신의 부탁>은 배우자를 통해서 맺어진 인연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였네요.
글 | 고봉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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