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들이 모여사는 마이애미의 어느 구역. 마약상 후안(매허샬라 알리)이 차를 몰고 마을로 들어온다. 시덥잖은 얘기를 나누던 와중, 또래들한테 쫓기는 아이가 후안 앞을 휙 지나가자 카메라는 그대로 그를 따라간다. 창고에 숨어든 아이가 여느 때처럼 웅크리다가 캄캄한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가림막을 뜯어내고 후안이 들어와 그에게 손을 내민다. 칠흑같은 공간에 햇빛이 쏟아지고, 아이는 후안을 따라 바깥으로 나간다. 아이의 이름은 샤이론. 우리는 즉각적으로 후안이 샤이론의 어둑한 삶에 빛이 되리라는 걸 직감한다.
<문라이트>는 아이였던 샤이론(알렉스 히버트)이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는 과정을 세 챕터에 걸쳐 밟아나간다. 어머니 폴라(나오미 해리스)와 단둘이 사는 샤이론은 의기소침하고 작은 체구 때문에 '리틀'(little)이라 불린다. 폴라가 마약에 빠져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란 그는, 첫 만남에 듬뿍 마음을 베풀어주는 후안과 그의 애인 테레사(자넬 모네)에게 의지하며 학교와 가정으로부터의 외로움을 견뎌낸다. 후안과 테레사는 잠들 곳을 열어주고 용돈을 줄 뿐만 아니라, 곁에서 조곤조곤 세상을 버티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유일하게 아무런 적의 없이 샤이론을 대하는 친구 케빈 역시 그의 등을 두드리며 "네가 강하다는 걸 보여"주라고 북돋는다.
이름을 말하기까지 한나절이 걸리던 샤이론이 제발로 후안을 찾아온 날. 후안은 바다에서 샤이론에게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눈부신 하늘 아래 둘의 모습은 마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고 듣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인다. 물밖으로 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는 사이, 후안은 흑인의 삶에 대한 자부심을 일러주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달이 뜬 밤 친구들과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 어느 할머니가 "달빛 아래선 흑인 아이들은 파랗게 보"인다며 자기를 '블루'라고 이름 붙여주었다는 이야기. "그럼 아저씨 이름이 블루예요?"라고 묻자 그는 "아니, 결국 네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리틀이라고 불리는 샤이론은, 이젠 더 이상 블루가 아닌 후안의 조언을 듣는다. 버팀목 같던 존재를 거스르고 언젠간 결국 자신의 뜻을 택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곧 샤이론의 삶을 따라가기 위한 길잡이가 된다.
후안이 햇빛이라면, 케빈은 달빛이다. "너무 많이 울어 눈물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끼던 십대를 지나, 성인이 된 샤이론이 후안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때, 그가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찾아나가는지 집중하게 된다. 성인기를 그린 마지막 챕터는 샤이론과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 케빈의 관계를 그린다. 10년간 만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샤이론은 지금 모습 그대로의 케빈을 꿈에서 만나고, 예전처럼 몽정을 한다. 제목이 'Moonlight'지만, 영화는 샤이론과 케빈이 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바라보고 앉아 마음을 나누는 둘째 챕터의 신에서 유일하게 '푸른 달빛' 아래로 인물을 데려다놓는다.
<문라이트>는 극작가 터렐 앨빈 맥크레이니의 각본 <달빛 아래 흑인 소년들은 푸르게 보인다>(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를 바탕으로 한다. 첫 장편영화 <멜랑콜리를 위한 묘약>(2008) 이후 오랫동안 차기작을 구상하던 배리 젠킨스 감독은 친구의 소개로 영화제에 출품된 각본을 알게 됐고 곧바로 매료됐다. 그리고 서로를 전혀 모르던 젠킨스와 맥크레이니는 몇 년 차를 두고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사실을 알게 됐다. 마이애미에서 나고 학창시절을 보낸 젠킨스는, 비단 샤이론 한 사람의 삶뿐만 아니라 극 안에 담긴 마이애미의 공기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데뷔작부터 젠킨스와 함께 작업한 촬영감독 제임스 랙스턴은 마이애미의 빛과 그림자를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한다.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만큼, 나이도 모습도 다른 세 배우 알렉시 히버트, 애쉬튼 샌더스, 트레반트 로즈가 샤이론을 연기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두 어른(이자 두 엄마) 폴라와 테레사는 나오미 해리스, 자넬 모네 한 사람이 분했다. 이런 방향은 오로지 이 마이애미 소년이 커가는 과정만을 그리는 데에 집중하겠다는 영화의 선언 같다. 세 사람은 척 봐도 다른 얼굴이지만, 샤이론이 많은 걸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세상을 응시할 때, <문라이트>는 이 눈빛이 샤이론 한 남자의 것이라는 걸 마법처럼 납득시킨다.
'달빛'이라는 제목은 영화의 기운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문라이트>는 살아오면서 경험하는 상처의 순간들을 여러번 보여준다. 하지만 극장 문을 나선 뒤 이야기를 곱씹을 때, 영화가 자극적이었노라고 생각지 않는다. 대신 나란히 앉아 한곳을 바라보던 두 남자의 뒷모습에 내려앉은 달빛처럼 가만가만히 가슴을 적시던 시간들을 기억하게 된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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