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신파는 잘못한 게 없다. 억지스러운 설정과 연출로 관객의 눈물을 자극하는 장면을 “신파스럽다” “신파조”라고 말한다. 눈물은 흐르지만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신파라는 말을 즉각 떠올린다. 신파라는 눈물 제조장치에 패배한 기분마저 들게 만든다. 이처럼 신파는 영화나 드라마의 부정적인 평가에서 쓰이는 말이다. 그 어원은 그렇지 않다. 신파라는 말을 만든 사람들이 들으면 좀 섭섭할지도 모르겠다.
신파(新派)라는 말은 새로운 흐름, 갈래, 경향을 뜻한다. 영어의 뉴 웨이브(New Wave), 프랑스어의 누벨 바그(Nouvelle Vague)와 같은 뜻이다. 일본 연극계에서 만들어졌다. 구파(舊派) 즉 카부키(歌舞伎)와 구분짓기 위해 만든 말이다. 1897년에서 1912년 사이에 신파가 가장 번성했다고 한다. 신파는 정치극으로 시작됐다. 정치선동을 위한 연극이었다. 액션, 대사, 상황 등을 과장하는 특징이 있었다. 정치색이 옅어지면서 신파는 멜로드라마와 결합했다. 당시 연극계의 새 흐름이었던 신파는 한국에 소개됐다. 한국에서 신파는 정치색이 아예 소멸되고 멜로드라마적인 속성과 과장된 연기와 상황이 남았다.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를 영화화한 <장한몽>(1926)이 한국형 신파 영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비극적인 운명의 인물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시켰다. 이때부터 신파라는 말은 눈물과 결합됐다. 이후 신파는 눈물을 자아내는 드라마 혹은 영화라는 하나의 장르가 됐다. 1968년작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집대성을 이뤘다. 비련의 여인을 내세운 영화는 꾸준히 제작됐다. 1970년대에는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등으로 이어진다.
- 미워도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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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소영
출연 신영균, 문희
개봉 1968 대한민국
1990년대 말에는 신파라는 단어가 지고지순하고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의 영화에 쓰이기 시작했다. 최진실, 박신양 주연의 <편지>(1997)가 대표적이다. 전도연, 박신양 주연의 <약속>(1998)도 있다. 두 영화는 <편지>와 <약속>은 성공한 신파 영화다. 다시 말하지만, 신파는 잘못이 없다. 실패한 신파가 잘못한 거다.
-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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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정국
출연 최진실, 박신양
개봉 1997 대한민국
-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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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유진
출연 박신양, 전도연
개봉 1998 대한민국
2000년대 들어서면 신파는 감동 포인트, 눈물 포인트를 대신하는 말처럼 쓰인다. 비운의 인물에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지나 억지스러운 눈물을 호소할 때 신파라는 말을 널리 사용했다. 신파는 곧 억지감동과 동일한 말이 됐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느린 템포의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면 눈물을 준비해야 한다. 주인공의 사연이 반복되기도 하고 혹은 죽음을 맞기 직전이기도 하다. 가슴 아픈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음악의 볼륨이 커지기 시작하고 스크린을 가득 채운 주연 배우의 얼굴에서 눈물이 흐르면 그때 관객도 함께 울어야 한다. 극장 불이 켜지기 전에 얼른 눈시울을 훔쳐냈다면 신파라는 말이 사라진다. 슬프고 재밌는 영화가 된다. 건조한 안구로 한숨을 쉬었다면 신파라는 말을 호출한다. 방금 내가 본 영화는 억지스럽고 뻔한 설정의 신파 영화가 된다.
여름 극장가 스크린을 거의 점령한 두 영화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에도 눈물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 신파적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신파적 요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눈물과 신파라는 단어를 달고 다닌다. 흥행은 했지만 자연스럽게 눈물을 뽑아내지 못해 신파라는 낙인이 찍힌 유명한 영화들을 모아봤다.
- 군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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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류승완
출연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
개봉 2017 한국
-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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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장훈
출연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류준열
개봉 2017 한국
7번방의 선물
신파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거의 즉각적으로 <7번방의 선물>이 떠오른다. 실화 바탕, 정신지체 장애인 주인공 용구(류승룡), 어리고 착하고 예쁜 딸(길소원), 억울한 누명. 모든 것이 완벽한 21세기 신파 영화다. 비록 촌스러울지는 몰라도 이 영화의 신파는 성공적이었다. 천만 관객이 울었다. 뒷맛이 좀 씁쓸하긴 하지만.
- 7번방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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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환경
출연 류승룡, 박신혜, 갈소원, 오달수, 박원상, 김정태, 정만식, 김기천
개봉 2012 대한민국
국제시장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아버지는 파독 광부로 베트으로 돈을 벌러간다. 관객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인 그를 통해 굴곡진 한국의 근현대사를 통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국의 <포레스트 검프>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국제시장>은 국가와 사회 시스템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며 관객의 눈물을 자극한다. 누군가에게는 오열을, 누군가에게는 냉소를 불러오는 영화다.
- 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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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제균
출연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정진영
개봉 2014 대한민국
부산행
<부산행>의 신파적 요소는 어쩌면 필수 불가결할지도 모른다. 좀비 장르영화의 문법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가 되었을 때 고민하는 주인공 혹은 좀비가 될 운명에 놓인 주인공이 자주 등장하기 마련이다. 다만 <부산행>을 보고 신파라는 단어가 떠올렸다면 주인공 석우(공유)의 회상 신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 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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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연상호
출연 공유, 정유미, 마동석, 김수안, 김의성, 최우식, 안소희
개봉 2016 대한민국
해운대
재난(쓰나미)과 가족, 연인 등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되면 눈물이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긴다. 거기에는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희생은 영웅도 만들어낸다. 너무나 뻔하긴 하지만 <해운대>의 드라마는 나쁘지 않았던 쓰나미의 스펙터클의 덕을 좀 본 경우다.
- 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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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제균
출연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개봉 2009 대한민국
명량
신파는 없고 장엄한 스펙터클만 있을 줄 알았다. <명량>에서는 의외의 신파적 요소가 등장했다. 정씨 여인(이정현)이 그 주인공이다. 임준영(진구)의 아내인 그녀는 왜군에 의해 가족을 잃고 혀가 잘려 말을 하지 못하는 비운의 인물이다. 비운은 곧 신파다. 그러고 보니 <군함도>의 오말년(이정현) 역시 비운의 여인이다. 정씨 여인과 다른 점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강한 여인이라는 것이다.
- 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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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한민
출연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개봉 2014 대한민국
수상한 그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 가운데 ’엄마’라는 말이 있다. 평소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지만 가끔 엄마라는 말에서 눈물이 터지곤 한다. 심은경과 나문희가 출연한 <수상한 그녀>는 결국 엄마라는 단어가 가진 눈물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영화다.
- 수상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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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황동혁
출연 심은경, 나문희, 박인환, 성동일, 이진욱
개봉 2014 대한민국
에디터 추천 눈물 영화
에디터가 본 영화 가운데 펑펑 울고 나온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평소 잘 울기는 하지만 아래 소개할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와 눈물을 훔치면서는 ‘졌다’라는 기분이 들었다. 주의할 점! 아주 감동스럽고 아름다운 영화라기보다는 그냥 눈물을 가장 많이 쏟은 영화다. ‘울어라, 울어라’ 라고 만든 영화들이다.
대지진
재난과 가족은 늘 눈물을 만들어낸다. 펑샤오강 감독의 <대지진>이 그런 영화다. 영화는 1976년 7월 28일 중국 당산에서 일어난 지진을 소재로 한다. 2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에서 쌍둥이를 둔 어머니는 가혹한 운명을 맞는다. 건물 잔해 속에서 두 자녀 가운데 한 명만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 놓인 것이다. 어머니는 결국 아들만을 구해냈다. 딸은 무너지는 잔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죽은 줄 알았던 딸이 살아 있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영화가 시작된다. 속는 셈 치고 한번 봐라. 진짜 눈물 쏙 빼는 영화다.
- 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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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펑 샤오강
출연 쉬판, 장국강, 장징추, 왕즈원, 진도명, 천진, 리천, 루이
개봉 2010 중국
헬로우 고스트
차태현 주연의 <헬로우 고스트>는 이상한 영화다. 처음엔 코믹 공포영화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지막 10분을 위해 모든 러닝타임을 희생한다. 반전을 위한 영화라고 봐도 좋겠다. 마지막 10분은 눈물의 연속이다. 억지 감동, 억지 신파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눈물 포인트를 잡아내는 기술(?)이 엄청나다. 이런 점은 위에 소개한 <대지진>과 매우 유사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 헬로우 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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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영탁
출연 차태현, 강예원, 이문수, 고창석, 장영남, 천보근
개봉 2010 대한민국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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