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 메인 예고편

<클로저>가 4월20일, 12년 만에 다시 개봉합니다. 수미쌍관 구성의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하는 데미안 라이스의 노래 'The Blower's Daughter'는 이미 너무나 유명해져서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당시 무명가수였던 데미안 라이스는 이 노래로 이름을 알려 이제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죠. 오랜만에 들으니 좋더라고요. (찡긋)
 
2005년 첫 개봉 땐 비련의 감정에 도취돼 “하… 사랑이란 역시 쉬운 게 아니야….” (????)라고 생각했는데, 재개봉을 앞두고 다시 보니 여러 이유로 살짝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런데 그게 감독의 큰 그림이었던 것 같습니다. <클로저>는 사랑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관계의 얄팍함에 관해 말하는 영화거든요. 어쩐지 에디터도 찔리는 구석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 본 포스팅에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하세요.

시작은 의도가 빤한 로맨틱코미디입니다. 런던 거리를 걷다 만난 남녀, 댄(주드 로)과 알리스(나탈리 포트먼)는 뜻밖의 교통사고로 우연히 얽힙니다. 그리고 알리스의 첫 대사. “Hello, Stranger.” 댄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결코 잊히지 않을 오프닝이었죠. 댄과 알리스는 병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진실을 교묘히 감추는 완곡어법”에 관해 대화를 나눕니다.

영화는 순간의 만남에만 반짝 집중할 뿐 연인이 사귀는 동안 어떤 과정을 겪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댄과 알리스의 그날 하루가 지난 뒤 영화는 곧바로 댄이 미국인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와 얽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문사 부고 담당 기자로 일하지만, 소설가가 꿈인 댄은 알리스와의 연애 과정을 책으로 써서 소설가로 데뷔합니다. 안나가 책에 실릴 댄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면서 둘은 만납니다. 두 사람은 한 눈에 서로에게 이끌립니다. 하지만 댄에게 연인이 있음을 알게 된 안나는 댄을 멀리하려 하죠. 이를 눈치챈 알리스는 안나의 앞에서 눈물을 보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또 이때를 뛰어넘어 안나와 래리(클라이브 오언)가 만나게 되는 경로를 보여줍니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안나에게 앙심을 품은 댄이 안나 행세를 하며 래리와 음란채팅을 하면서 악연(?)은 시작됩니다. “하얀 가운 입고 만나서 2차로 호텔에 가자”는, 안나인 척한 댄의 제안에 잔뜩 설레어 자리에 나온 래리는 진짜 안나를 만나 자신이 속았음을 알고 황당해하지만, 실제로 안나와 연인이 됩니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안나와 래리는 부부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안나는 예전에 찍은 사진들로 <Strangers>라는 제목의 전시를 엽니다. 사진 속 주인공인 댄과 알리스도 초청받습니다. 그리고 이날부터 댄과 안나의 불륜이 시작됩니다. 영화는 또 시간을 뛰어넘어 댄과 안나가 각자의 파트너에게 불륜을 고백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네 사람은 뿔뿔이 흩어지고, 댄과 안나는 연애를 즐깁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댄은 안나를 추궁합니다. 이혼 서류 서명을 빌미로 래리가 섹스를 요구했는데, 안나가 이를 받아들였는지를 알고 싶어합니다. 래리는 일부러 댄이 안나를 의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에 실망한 안나는 댄을 떠납니다. 그리고는 다시 래리에게 돌아갑니다.

안나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래리는 스트립 클럽에서 댄서로 일하는 알리스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래리로부터 이 얘기를 들은 댄은 알리스를 찾아갑니다. 댄은 알리스와 재결합하고자 하지만, 먼저 알리스가 스트립 클럽에서 만난 래리와 잤는지, “진실”을 알고 싶어합니다. 알리스는 “진실”을 말해주고 댄을 향한 사랑을 접습니다. 영화는 오프닝에서처럼 이번엔 미국 뉴욕 거리를 걷는 알리스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클로저>는 사랑에 관한 영화가 아닙니다. 네 사람은 ‘섹스’와 깊이 엮여 있지만 정작 영화에 구체적인 섹스 장면, 서로 친밀하게 살을 섞는 장면은 나오지 않고 껍데기뿐인 대사로만 교류합니다.
 
‘런던에 와 있는 미국인’인 알리스는 자신에 관해 어느것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알리스는 댄에게 “Hello, Stranger”라는 첫 인사를 건넵니다. 알리스는 맞은편의 댄을 ‘타인’으로 규정짓는데, 이는 역으로 댄에게 자신도 ‘타인’이라는 말이 됩니다. 알리스의 직업이 고객은 손을 댈 수 없는 스트립 댄서라는 점이 상징적입니다.
 
댄은 “진실을 알고 싶다”며 알리스와 안나를 추궁했지만, 결국 자신을 열렬히 사랑한다고 했던 알리스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래리의 직업은 (환부의 표면만 접촉할 수 있는) 피부과 의사로, 래리는 스스로가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다고 자부하지만 알리스의 여러 공허한 말 사이에 섞인 작은 진실은 눈치채지 못합니다. 안나도 항상 자신의 기만적인 행동을 변호하는 데만 급급합니다.
 
첫 장면에서 그랬듯, 알리스는 댄에게 갑작스런 이별을 고하며 말합니다. “사랑? 사랑이 어디 있어?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어. 몇 마디 공허한 말들뿐이지.” 영화의 처음과 끝, 알리스의 대사에 <클로저>의 핵심이 있습니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베를린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유대인입니다. 홀로코스트를 피하려 미국으로 가 뉴욕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냈습니다. 부유하는 듯한 알리스의 영혼은 그의 과거 발자취로부터 탄생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디터는 <클로저>의 엔딩, 알리스의 상처입은 표정에서 감독의 초기작인 <졸업>(1967)을 떠올렸습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하려던 연인을 환희에 찬 표정으로 식장에서 데리고 도망치는 청년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의 로맨틱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영화이지요. 하지만 영화는 도망친 젊은 연인이 버스에 올라탄 채 불안한 표정으로 뒷일을 걱정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을 둘러싼 집안 어른들과 버스의 승객들 등 순수를 잃은 기성세대로부터 물질적·정신적 타격을 입습니다. <졸업>이 인간의 얄팍한 욕망이 순수한 가치를 훼손하고, 순수를 훼손당한 인간이 깊이 상처 입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라면, 감독이 그로부터 30여년 뒤에 만든 <클로저>는 이미 욕망에 잠식된 인간들이 서로와 스스로를 괴롭히는 과정을 비인간적이고 신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만 영화를 너무 심각하게 관람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인 서사가 에디터를 불편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영화의 무드는 상당히 코믹합니다. 인물들의 어떤 행동과 대사들이 너무나 가볍고 적나라해서 헛웃음이 터지기도 합니다. 어쨌든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좋은 영화는 시대를 뛰어넘어 언제나 유효한 감상을 전한다는 것을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윤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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