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길 잃음. 얼핏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현실이라면 그저 멘붕의 연속일 겁니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 만나려 한 사람의 행방은 불명이고 들고 온 백팩과 함께 세느강에 빠져버리질 않나, 휴대폰까지 잃어버린 불쌍한 여자가 여기 있습니다. 피오나(피오나 고든)입니다.

피오나에게는 댄서로 일했던 이모가 있습니다. 자유분방한 이모 마르타(엠마누엘 리바)는 피오나의 어린시절 롤모델입니다. 그렇게 수십년이 흐르고, 캐나다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피오나는 이모로부터 자신을 구출해 달라는 내용의 SOS 편지를 받습니다. 피오나는 이모를 찾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환상을 충족하고자 겸사겸사 무작정 파리로 날아갑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피오나의 고생길이 열립니다. 에펠탑이 보이는 다리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다 백팩 무게 때문에 세느강에 빠져버리고, 덕분에 휴대폰까지 잃어버립니다. 간신히 지나가는 유람선에 구조돼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이모의 집을 찾아가지만 이모는 간 데 없습니다.

한편, 피오나가 세느강에 빠뜨린 백팩은 노숙인 돔(도미니크 아벨)이 줍습니다. 돔은 횡재라 생각하고 고급 식당에 가서 펑펑 돈을 씁니다. 피오나도 대사관에서 식사권을 받아 마침 그 식당에 와 있던 참, 둘은 만나게 됩니다. 잠시 후 내막을 알게 된 피오나는 자신의 물건을 함부로 한 돔에게 화가 나 돔을 멀리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돔은 피오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이모를 찾아다니는 피오나에게 은근히 도움을 줍니다.

어느 카페의 직원으로부터 한 나이 든 댄서의 장례식이 곧 치러질 거라는 정보를 입수한 돔과 피오나는 고인이 이모이리라 짐작하며 장례식에 참석합니다. 하지만 잔뜩 깽판을 쳐놓은 뒤에야 이모의 장례식이 아니었음을 알고 도망칩니다. 마르타 이모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치매로 요양보호사의 관리를 받으며 지내던 마르타는 삶에 환멸을 느끼고 요양원을 탈출합니다. 댄서로 지내던 시절, 사랑을 나누었던 남자 노르망(피에르 리샤르)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도 어느새 자신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 있습니다. 마르타는 파리 곳곳을 누비며 추억에 젖습니다. 마르타는 걷고 또 걷다 돔의 노숙 텐트가 있는 시뉴 섬에까지 다다릅니다. 마르타는 돔과 마주치고, 또 우연히(!) 근처에 버려진 피오나의 휴대폰을 주워 피오나와 통화를 하게 됩니다.

피오나는 뉴욕에서 근사한 남자와 샴페인을 마셨다는 마르타의 말을 듣고, 자유의 여신상이 위치한 시뉴 섬으로 이모를 찾으러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만난 피오나와 마르타, 돔까지 세 사람은 에펠탑에 올라 재회를 자축합니다. 에펠탑 꼭대기에서의 세 사람의 아름다운 대화는 영화를 보며 즐겨주세요!


피오나와 돔을 연기한 두 사람, 피오나 고든, 도미니크 아벨 공동감독은 실제 부부입니다. 1980년대 초반, 파리에서 서커스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만나 함께 제작사를 설립한 뒤 제작자이자 감독, 작가로서 오랫동안 같이 활동하며 네 편의 장편영화를 내놓았습니다. 이들의 작품은 일상을 벗어난 일탈적 삶에 꾸준한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빙산> <룸바> <페어리>

두 사람의 연출 데뷔작 <빙산>(2005)은 냉동창고에 갇힌 경험으로 인해 삶의 지표를 바꾸게 된 여성 피오나(피오나 고든)의 이야기였고, <룸바>(2009)는 춤추는 낙으로 살던 커플이 큰 사고를 겪고 각각 다리와 기억을 잃어버리고도 춤으로 다시 행복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페어리>(2012)는 허름한 호텔에서 야간 당직자로 일하는 돔(도미니크 아벨)이 뜬금없이 찾아온 요정 피오나(피오나 고든)와 연인이 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빙산>
<룸바>
<페어리>

또 본인들이 주인공으로 직접 출연해 작품마다 본명을 쓴다는 점, 춤이나 마임과 같은 인물의 움직임에 주목한다는 점, 동화적 색채와 정서를 유지한다는 점, 무엇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 공통적입니다. 이들의 다섯 번째 영화에선 또 어떤 환상이 펼쳐질지, 에디터도 무척 기다려지네요!

영화 본 사람들은 이해할 <로스트 인 파리> 촬영장 모습.

피오나의 황당한 여정을 그리는 <로스트 인 파리>는 관객에게까지 파리 여행에 대한 환상을 부추깁니다. 피오나는 부푼 마음으로 파리를 방문하지만, 정작 그가 마주하는 건 파리 시민들의 현실입니다. 세느강 다리 아래에 자리잡은 노숙인들, 동네 사람들이 밥 먹고 수다를 떠는 낡은 카페, 엄숙하지만 소박한 장례식장과 야외 묘지, 좁은 코인 세탁소 등은 외국인의 환상 속 파리가 아닌 파리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비추지만 그런 광경이 더더욱 파리에 가보고 싶게 만듭니다. 여행지에서 랜드마크보다 동네 골목에 더 관심을 갖는 에디터는 <로스트 인 파리>를 보고난 뒤 몹시 파리 여행이 가고 싶어졌습니다!
 
잠시 피오나와 돔이 누비고 다니는 파리의 곳곳을 살펴볼까요?
 
피오나가 백팩을 빠뜨린 세느강변의 시뉴 섬. 돔의 노숙 텐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백조의 섬이라는 뜻이라네요. 파리 15구와 16구에 속하는 인공 섬으로, 세느강의 다리 세 개와 연결돼 있습니다. 뉴욕에 있어야 할 자유의 여신상이 왜 여기 있느냐고요?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오리지널 자유의 여신상에 대한 답례로, 미국이 같은 모양의 자유의 여신상을 프랑스에도 선물한 것입니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영화 속 '시뉴 섬'
실제 '시뉴 섬'

피오나와 돔이 처음 만나는 장소, 선상 레스토랑인 바토 막심(Bateau Maxim’s)입니다. 도미니크 아벨, 피오나 고든 감독 커플의 시그니처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춤 장면이 이곳에서 펼쳐지죠.

영화 속 '바토 막심'
실제 '바토 막심'

마르타 이모를 찾아 헤매던 피오나가 점원으로부터 이모의 행방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되는 동네 카페입니다. 실제로도 영업 중인 카페 리노(Cafe Lino)인데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 정말 파리지앵이 된 듯한 기분이 들 것 같네요. 

영화 속 '카페 리노'
실제 '카페 리노'

피오나와 돔이 장례식장에서 사고를 친 뒤 다시 만나게 되는 공동 묘지도 눈에 띄었죠. 트로카데로 광장 옆에 위치한 공동묘지, 빠씨 묘지(Cimetière de Passy)입니다. 마네, 드뷔시, 모리조 등 프랑스의 유명 인사들이 잠든 곳이기도 합니다. 특색 있는 묘비들이 인상적입니다.

영화 속 '빠씨 묘지'
실제 '빠씨 묘지'

심지어 코인 세탁소까지도 실제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마르타 이모의 이웃인 마르탱이 자주 빨래를 하러 가는 장소죠. 오갈 데 없던 피오나가 빨래를 개는 사람들 사이에 누워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파리 라막띤느 가에 위치한 실제 세탁소라고 하네요.

영화 속 '코인 세탁소'

에디터는 벌써 파리행 티켓을 검색 중입니다. 그 어떤 영화보다 더더욱 강력하게 파리 여행을 부추기는, <로스트 인 파리>였습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윤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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