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의 연극 〈엔들링스〉

연극 〈엔들링스〉 공연 모습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엔들링스〉 공연 모습 [두산아트센터 제공]

남도의 작은 섬 만재도에서 세상의 마지막 해녀로 불리는 70~90대 할머니 세 명이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한솔과 고민, 순자 할머니는 자식들을 육지로 보내고 남편 없이 서로를 의지하며 물질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지구 반대편 맨해튼에는 한국계 캐나다인 극작가 하영(백소정)이 거주하고 있다. 뉴욕에 정착한 하영은 각종 레지던시와 지원금에 의존해 희곡을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 "연극을 위해 내 피부색을 팔고 싶지 않다"는 그는 자신의 이야기 대신 백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백인 연극'을 고집한다.

지난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은 한국계 캐나다인 극작가 셀린 송의 연극 〈엔들링스〉(Endlings)가 지난 20일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국내 초연으로 개막했다.

이번 공연은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극작가로서 창작 활동을 시작한 셀린 송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연극 〈엔들링스〉 공연 모습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엔들링스〉 공연 모습 [두산아트센터 제공]

2019년 미국에서 초연한 연극 〈엔들링스〉는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태어나 12살에 캐나다로 이민 간 후 미국에서 활동 중인 셀린 송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극 중 주인공 하영은 셀린 송의 한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으며, '백인 남편/극작가'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등장하는 하영의 남편 캐릭터 역시 실제 송의 백인 극작가 남편을 반영한 것이다.

연극은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와 하영의 서사를 교차시키며 두 세계의 충돌을 그려낸다. 해녀들의 이야기는 하영이 집필 중인 희곡의 내용으로, 뉴욕 연극계에서 인정받고 '부동산'으로 상징되는 성공을 갈망하며 '백인 연극'을 쓰는 하영의 모습은 셀린 송 자신의 경험을 투영한 것이다.

연극 〈엔들링스〉 공연 모습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엔들링스〉 공연 모습 [두산아트센터 제공]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춤과 노래를 적절히 활용해 전반적으로 경쾌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해녀 할머니 역을 맡은 홍윤희, 박옥출, 이미라 배우들은 무대를 종횡무진 오가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주 해녀들의 전통 노래 '이어도사나'부터 21세기 폭스사의 영화 오프닝 음악, 제이지, 켄드릭 라마, 시아 등 현대 미국 아티스트들의 곡까지 다양한 음악을 활용해 극의 분위기를 살렸다.

셀린 송은 미국 초연 당시 이 작품을 두고 "내게 가장 소중한 작품"이라며 '백인 연극'을 집필했던 자신에게 "그저 나로서 존재하는 법을 알려주고 나 자신이 되는 지혜를 준 작품"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연극 〈엔들링스〉 공연 모습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엔들링스〉 공연 모습 [두산아트센터 제공]

한글 자막 해설은 단순한 텍스트 제공을 넘어 창의적인 시각화로 주목받고 있다. 거품이 올라오는 음향을 설명할 때는 '뽀글'이라는 단어가 물방울 모양으로 실제 뽀글거리는 효과를 주고, 높낮이가 있는 대사에서는 텍스트도 함께 위아래로 움직이는 등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장치들이 사용됐다.

연출은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라는 작품으로 2022년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이래은 감독이 맡았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시인 겸 사진가로 활동해온 이훤이 하영의 백인남편과 백인 무대감독 역할로 연극 무대에 처음 데뷔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공연은 개막 전 이미 전석이 매진되었으며, 6월 7일까지 서울에서 공연을 마친 후 대전예술의전당(6월 13∼14일)과 제주아트센터(6월 27∼28일)에서도 지역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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