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욕망과 광기의 멜로, 루카 구아다니노의 〈퀴어〉

영화 〈퀴어〉 속 한 장면 [누리픽쳐스 제공]
영화 〈퀴어〉 속 한 장면 [누리픽쳐스 제공]

멕시코시티의 이국적인 풍경 속, 말쑥한 리넨 정장을 차려입고 신문을 든 중년의 미국인 작가 리(대니얼 크레이그)는 겉으로는 젠틀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억눌린 욕망과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는 젊은 남자들을 유혹하여 자신의 침대로 끌어들이는 데 몰두하며, 공허한 일상을 반복한다.

어느 날 밤, 리는 인파 속에서 유독 빛나는 청년 유진(드루 스타키)을 발견하고 강렬한 끌림을 느낀다. 첫눈에 반한 유진에게 다가가면서, 리는 이전과는 다른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 〈퀴어〉는 리가 유진에게 맹목적인 구애를 펼치며 겪는 심리적 변화와 파국을 그린 멜로 영화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17세 때 윌리엄 S. 버로스의 동명 소설을 읽고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영화는 나이 차이가 큰 두 남자의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의 전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을 연상시키지만, 관계의 역동성과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영화 〈퀴어〉 속 한 장면 [누리픽쳐스 제공]
영화 〈퀴어〉 속 한 장면 [누리픽쳐스 제공]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는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이끌리는 감정을 공유했지만, 〈퀴어〉에서 리는 유진에게 일방적인 애정을 갈구한다. 유진은 리에게 호감을 보이는 듯하다가도, 변덕스러운 태도를 보이며 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때로는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타나 리를 질투하게 만들기도 한다.

만약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티모테 샬라메)가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면, 〈퀴어〉의 리는 유진의 무관심과 냉대에 상처 입고 망가져 간다. 유진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정하는 '디나이얼 게이'(자기 성 지향성을 거부하는 동성애자)일까, 아니면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사람일까.

혼란스러운 관계 속에서 리는 철저한 '을'의 입장에 놓인다. 그는 유진을 원망하거나 관계를 끊어낼 수 없다. 대신 술과 마약에 의존하며 자기 파괴적인 행태를 보인다. 유진이 점점 멀어져감을 느낀 리는 남미 여행을 제안하며 절박하게 매달린다. "돈은 네가 한 푼도 안 내도 돼. 나는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 아니야. 원한다면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해도 상관없어. 그저 나에게 다정하게만 대해주면 돼.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이라도."

영화 〈퀴어〉 속 한 장면 [누리픽쳐스 제공]
영화 〈퀴어〉 속 한 장면 [누리픽쳐스 제공]

구걸에 가까운 리의 애원에 유진은 "안 가본 데를 가보면 좋겠죠"라며 무덤덤하게 답한다. 두 사람은 함께 남미로 떠나고, 영화는 로드 무비의 형식을 띤다. 정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판타지 어드벤처물의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리가 남미 여행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신비한 식물 '야헤'를 찾기 위해서다. 리는 야헤가 텔레파시나 정신적인 교감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는 유진의 속마음을 확인하고, 영혼으로나마 그와 하나가 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정글을 탐험한다.

사투 끝에 야헤를 구한 리는 유진과 함께 야헤를 달인 물을 마신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육체에서 벗어나 하나가 되는 환각을 경험한다. 이 장면은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묘사되며 보디 호러물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기괴한 이미지와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이는 지독한 짝사랑이 한 사람의 정신을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퀴어〉 속 한 장면 [누리픽쳐스 제공]
영화 〈퀴어〉 속 한 장면 [누리픽쳐스 제공]

영화 제목인 '퀴어'는 '동성애자'를 의미하는 동시에 '기묘한', '괴상한'이라는 본래의 뜻을 담고 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아이 엠 러브〉(2009)부터 〈챌린저스〉(2024)에 이르기까지 독창적인 사랑 이야기를 꾸준히 탐구해왔지만, 〈퀴어〉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실험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영화사 A24와 구아다니노 감독의 첫 협업 작품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구아다니노 감독 특유의 화려한 영상미와 섬세한 연출은 〈퀴어〉를 매혹적으로 만들고,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역으로 유명한 대니얼 크레이그는 기존의 강인한 이미지를 벗고, 연약하고 애처로운 중년 게이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그는 "내가 보고 싶고, 만들고 싶고, 출연하고 싶은 영화"였다며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신예 드루 스타키는 알 듯 모를 듯한 유진의 복잡한 감정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아우터뱅크스>로 얼굴을 알린 그는 구아다니노 감독을 "꿈의 감독"이라고 칭했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스타키가 다른 영화 오디션을 위해 촬영한 영상을 보고 그를 유진 역에 캐스팅했다고 한다. 유진 역할에 지원한 약 300명의 배우 영상을 검토했지만, 스타키를 능가하는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영화 〈퀴어〉 속 한 장면 [누리픽쳐스 제공]
영화 〈퀴어〉 속 한 장면 [누리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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