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야 테일러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이 전세계 대중들을 사로잡고 있다. 체스를 소재로 한 천재 소녀의 성장을 그린 <퀸스 갬빗>은 시대적 배경인 1960년대에 발표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곳곳에 배치됐다.


Gnossienne

Gymnopédie

ERIK SATIE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베스(안야 테일러 조이)가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앨마(마리엘 헬러) 부부에게 입양될 때까지, <퀸스 갬빗>엔 음악감독 카를로스 라파엘 리베라(Carlos Rafael Rivera)가 만든 오리지널 스코어만 사용된다. 다른 음악이 나오는 건 베스가 앨마의 집에서 하루를 보낸 다음날. 앨마가 남편과 티격태격하는 걸 듣고 잠에서 깬 베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음울한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앨마는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의 ‘Gnossienne’를 연주하면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무대공포증으로 포기했고, 아이를 떠나보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체스 토너먼트의 둘째 날, 초경을 경험한 베스는 집에 돌아와 사티의 ‘Gymnopédie’를 연주하는 앨마를 마주한다. 안정제를 가져다주러 안방에 올라가보니 난장판이 되어 있는 걸 본 순간, 처음 만났을 때 꽤나 살가웠지만 자기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던 앨마가 이전에 사티의 곡을 연주했을 때도 비슷한 심정이었으리라고 직감한다. 출장 나간 남편이 다른 지역에 눌러앉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베스와 앨마는 대단한 감정 표현 없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리스어로 ‘크레타 섬 사람의 춤’, ‘벌거벗은 소년’이라는 뜻을 가진 ‘Gnossienne’, ‘Gymnopédie’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티가 군대에서도 쫓겨나 몽마르트르 언덕의 카바레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던 20대 초반에 만들어,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곡이다.


You're the One

THE VOGUES

베스는 체스 대회에서 연달아 승리를 거두면서 마을의 유명인사가 된다. 촌스럽다고 베스를 무시하던 마가렛까지 신입 환영회에 베스를 초대한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간 파티, 요조숙녀들이 둘러앉아 베스에게 묻는 건 고작 대회에 다니면서 만난 남자들이 어떻냐는 것뿐이다.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잠시 분위기가 썰렁해진 가운데, TV에서 경쾌한 기타 소리가 들리고, 베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자세를 고쳐잡고는 그 노래를 첫 소절부터 따라부르기 시작한다. 보그스(The Vogues)의 노래 ‘You're the One’다. 페툴라 클라크(Petula Clark)가 1965년 발표한 노래를 그해 4인조 남자 보컬 그룹 보그스가 커버해서 원곡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받았다. <퀸스 갬빗>의 장면처럼 실제로 1966년 10대 소녀들이 모여 노래를 불렀을 법한 인기. 갑자기 다같이 노래를 부르는 광경을 보고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그리고 거기 있는 그 누구도 그걸 신경 쓰지 않는) 베스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 안정제를 먹고 침대에 눕는다.


End Of The World

HERMAN'S HERMITS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US 오픈 대회에 참석한 베스는 역시나 승승장구한다. 두려운 선수라곤 러시아의 바실리 보그고프(마르친 도로친스키)밖에 없다고 말했지만, 곧 적수를 만난다. 미국 챔피언 베니 왓츠(토마스 브로디 생스터)다. 이겼던 게임의 약점을 집어내면서 자신을 당황하게 만든 베니와의 대결에서 베스는 패배를 맛본다. 패배의 아쉬움에 대해서 열심히 토로하고 있는데, 앨마는 그저 우승 상금은 절반으로 받을 수 있겠다는 말로 위로하자 베스는 “체스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라고 쏴붙인다. 호텔을 떠나는 모녀. 차가 출발해도 서로 딴 곳만 쳐다보다가 베스가 덥썩 앨마의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은 여전히 다른 곳만 보고 있지만, 차 안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허먼스 허밋츠(Herman's Hermits)의 “End Of The World"가 흐르자 냉랭한 분위기가 사르르 녹는다. 스키터 데이비스(Skeeter Davis)가 처음 발표한 이 노래는 60년대 초 크게 히트해 현재까지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커버돼왔는데,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밴드 허먼스 허밋츠는 데뷔 앨범에 “End Of The World” 커버 버전을 수록했다.


Along Comes Mary

THE ASSOCIATION

러시아어 학원에서 만난 친구와 시덥지 않은 잠자리(도노반의 ‘Bert's Blues'가 흐른다)를 가진 베스는 아침에 일어나 그의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낸다. 집이 아닌 곳에서 혼자 보내는 건 <퀸스 갬빗>에서 이때가 처음이다. 정리라곤 되지 않은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면서 대마초를 피고 술을 마시면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베스를 어소시에이션(The Association)의 “Along Comes Mary”가 더욱 흥겹게 꾸며준다. ‘선샤인 팝’(sunshine pop)이라는 장르 이름처럼 햇볕이 짱짱하게 쏟아지는 듯한 에너지를 가진 노래와 함께 몸을 흔드는 걸로 보아 역시 베스는 다른 사람보다 혼자 있을 때 더 편안한 것 같다. 하지만 그걸 계속 지켜보면 낯선 곳에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과 더불어, 베스가 앨마에게서 살짝살짝 배운 술이 점점 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후반부에 이르면 베스는 술독에 빠져 지내는 나날들이 나오는데, 이때는 보다 강렬한 록 사운드의 샤킹 블루(Shocking Blue)의 'Venus'가 쓰였다.


Fever

PEGGY LEE

멕시코시티에서 보르고프에게 패배하고 켄터키로 홀로 돌아온 베스. 텅 빈 집에 혼자 있을 뻔한 베스는 해리(해리 벨링)의 연락을 받고 그를 집으로 초대해 단란하면서도 치열하게 체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어느 날 해리는 욕실에서 안정제를 발견하는데, 때마침 바깥에서 페기 리(Peggy Lee)의 'Fever'가 크게 울린다. 어느새 흥겨운 음악을 들으면 열심히 몸을 흔들게 된 베스는 해리가 오자 잠시 머뭇대다가 다시 리듬을 탄다. 그 순간 제목처럼 오묘한 열기가 흐른다. 베스는 해리를 전과 다른 눈빛으로 부르고, 해리 역시 설레는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아무 일도 없이 해리는 돌아가지만, 음악은 멈추지 않고 슬립을 입은 채 혼자 방으로 들어오는 베스를 맴돈다. 페기 리는 리틀 윌리 존(Little Willie John)이 1956년 발표한 원곡의 가사를 바꾸고 편곡을 탈바꿈한 리메이크로 제1회 그래미 어워드의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원곡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Tut tut tut tut

GILLIAN HILLS

가정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는 돌연 베스를 찾아와 집을 내놓으라고 한다. 베스는 아예 집을 사버린다. 곳곳에 놓인 앨마의 흔적을 지우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로 집안을 채워나간다. 베스의 새 출발을 응원이라도 하듯 질리안 힐스(Gillian Hills)의 'Tut Tut Tut Tut'이 흥겹게 흐른다. 다채로운 악기들이 훵키한 리듬을 쏟아내는 가운데, 종종 튀어나오는 뚯 뚯 뚯 뚯 하는 추임새가 통통 튀는 분위기를 한껏 부풀린다. 영국 출신의 배우 질리안 힐스는 프랑스로 건너가 영화에 출연하면서 가수 활동도 병행했다. 'Tut Tut Tut Tut'은 롤리 팝스(The Lollipops)의 'Busy Signal'을 힐스가 프랑스어로 부른 노래다. 이렇게 새출발을 꿈꾸는 베스에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