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읽은 위인전에는 누가 몇 살 때 <천자문>을 뗀 다음 <소학>과 <대학>을 달달 외우고 사서삼경을 독파해서 장원 급제를 했다는 전설들이 즐비했다. 현대 기준으로는 행정고시 최연소 합격 수기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런 영웅담에 잘 몰두하던 나는 할아버지 책장에서 한자가 적힌 책들을 죄다 그러모았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이미 세상에는 이 1000자의 한자를 잘 외울 수 있도록 간단한 리듬과 곡조까지 마련돼 있었기에 <천자문>은 내게 간단했다. 그 다음은, 다소 뭉뚱그려 말하자면 <소학>의 아동용 버전인 <사자소학>이다. 나는 <사자소학>의 첫 구절을 읽은 후 그대로 고전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말았다. 바로 '부생아신 모국오신(父生我身 母鞠吾身)',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문장이었다.

<사자소학>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은 몰라도 이 말 자체를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 장담하건대, 이 문장을 온전히 이해했거나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매우 드물 터다. 아버지가 날 낳았다니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전부 자신을 낳은 건 아버지임에도 이를 숨겨야 하는 출생의 비밀이라도 품고 있다는 건가? 짧은 인생 습득한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더라도 이건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문제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임신'이 콘텐츠의 주요 소재로 이용될 때 그 앞에는 '원치 않은', '예상치 못한' 따위의 전제가 붙기 마련이다. 임신의 주체지만 사회적 약자이기도 한 여성이 오로지 자신의 몸에서만 시작되고 끝을 맺는 이 과정을 통해 몰락하거나, 위기를 타파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마저도 임신의 실체, 이를테면 출산 시 여성의 회음부가 발아하는 씨앗처럼 찢긴다거나 태아가 자라며 파열된 복부 근육들이 임신 전처럼 회복되진 않는다는 과학적 사실들은 다루지 않는다. '임신한 여성의 사회적 불행'까지가 콘텐츠를 만드는 쪽의 시선이 멈추는 경계의 끝이다. 정자 제공 외엔 임신 과정과 전혀 관련이 없는 남성 캐릭터가 이야기 속에서 악역이나 결정적 조력자로 활약하려면, 임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선 안 될 일인지도 모른다.

영화 <쥬니어>

하지만 '부생아신'을 실현한 콘텐츠가 없던 건 아니다.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1994년 작품 <쥬니어>에선 '아주 안전한 임신을 보장하는 마술 같은 약 개발에 일생을 바친' 남성 해스 박사(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임신을 해서 아기를 낳는다. 영화에서 는 임신 증상도 다루는데, 해스 박사의 거칠던 피부가 부드러워지거나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식이다. <쥬니어> 역시 임신을 했을 때 모체가 겪는 곤란을 다루기 보다는 '남성의 임신'이라는 환상적 사건에 천착한 코미디 영화로 진정한 '부생아신'을 그렸다기엔 부족하다.

2022년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이 나왔다. 광고 크리에이터 히야마 켄타로(사이토 타쿠미)는 완벽한 남자다. 말끔한 외모에 능력을 겸비한 그는 '남자가 육아에 휘둘리는 것은 꼴 사납다'는 핀잔을 듣는 회사에서도 사내 정치에 능한 유들유들함까지 갖췄다. 유능하고 빈틈이 없어 오히려 야망 있는 후배들에게는 도전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이나 육아는 커녕 연애조차 할 생각이 없는 히야마가 여성 파트너 중 한 명인 세토 아키(우에노 쥬리)의 아기를 덜컥 임신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 속 세계에서 '남성 임신'은 노골적인 수군거림이나 질 나쁜 차별이 예상 가능할 정도로 드물게 '존재하는' 사건이다. 여기선 자궁을 제거하지 않은 트랜스 남성이 아니라, 시스젠더 남성의 임신 사례가 한 병원에서만 1년에 40건 정도다. 단, 어떻게 임신을 했는지는 궁금해하지 말자. 어차피 안 나온다.

TV 속 남성 임신부의 존재를 기분 나빠 하면서도, 회사에서는 사회적 소수자들을 조명하며 '나 답게 사는 것'을 주제로 한 기획으로 또 한 번 인정을 받는 히야마의 모순은 임신으로 깨진다. 연인 관계가 아닌 파트너와의 사이에서 임신을 경험하게 된 히야마의 현실적 고충들은 드라마에서 꽤 자세히 다뤄진다. 우선 파트너에게 임신을 고하자마자 "내 아이가 맞느냐"는 말을 듣는 건, 성별이 역전된 콘텐츠라면 닳고 닳아서 쿰쿰한 냄새까지 풍기는 대사다. 임신 중단을 하려면 파트너의 동의서가 반드시 필요하고, 임신 12주가 지날 경우 관청에 직접 가서 태아 매장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의 행정적 곤란도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이 좀 더 직접적으로 그린 건 아이의 울음 소리만 들어도 젖이 돌아 셔츠를 적시고 기침이라도 하면 오줌이 새는 임신 후 신체 변화다. '정자와 난자가 자궁에서 만나 수정이 되고 수정란이 착상되면 평균적으로 266일 간의 임신 기간을 거쳐 아이가 태어난다' 이상의 것을 가르치지 않는 사회에서, 임신이 모체의 심신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치는지 겉핥기 식으로라도 드러낸 셈이다.

드라마는 히야마라는 '남성'이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다소 잔혹하기까지 한 임신 과정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를 수 있었음을 인정한다. 히야마가 임신 후 겪은 행복이 출산의 찰나라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 외의 고통을 임신한 모든 여성이 짊어져 왔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낭만화된 임신을 현실 세계로 꺼낸다. 가짜 '부생아신'을 가져와 실은 그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인지를 논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다만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은 일본 콘텐츠들이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나쁜 습관을 들킨다. 엮고 싶은 주제들이 너무 많아 한 줄 씩 이야기를 보태다 보면 결국 극은 산으로 가고 결말은 아침 조회 훈화 말씀이 되고 만다. 임신과 출산이 갑자기 '나 다움'과 연결되며 드라마 중반부터는 '나 다운 게 뭔데?' 류의 사춘기적 절규들이 난무한다. '~다움'에 대한 긍정과 부정도 일관성이 없다. 육아 휴직을 하며 이는 경력 단절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스킬 업'이라고 정신승리를 하는 히야마의 머릿속은 마치 5월의 유채꽃밭 같기만 하다. 임신한 남성 파트너를 두고 "임신한 사람만 힘든 게 아니다"라고 푸념을 하는 극 중 여성들의 모습은 제발 현실 풍자이길 기원하고 싶을 만큼 이야기의 수월한 전개를 방해한다.

그럼에도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을 한 번 보길 권한다면, 그 이유는 '업데이트'에 있다고 하겠다. 이 '업데이트'는 그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연히 확보한 정상성에 기대서 편리하게 살았던 과거를 잊어야 한다는 '단절'의 의미다. 문명 이래 계속된 눈부신 성장이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이들을 차별하고 착취하며 얻은 것이고, 이제 그 폐해들이 드러나고 있는 시점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히야마는 이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능력 있는 시스젠더 남성이자, 남성 임신부이며, 대안가족의 일원이다. 이처럼 모두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오늘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상성이란 개념의 '업데이트'라고, 드라마는 끝내 묵직한 한 마디를 남긴다.


라효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