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단(왼쪽), 조엘 코엔 형제

할리우드의 유명한 형제들이 있다. 조엘, 에단 코엔 감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인사이드 르윈> 등 코엔 형제가 만든 영화는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이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워쇼스키 형제도 있었다. 이제 그들은 자매가 됐다. 리들리, 토니 스콧 형제도 있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동생 토니 스콧 감독은 2012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 피에로(왼쪽), 뤽 다르덴 형제.

유럽으로 가면 다르덴 형제가 생각난다. <자전거 탄 소년>, <내일을 위한 시간>, <언노운 걸> 등의 작품이 최근 장 피에르, 뤽 다르덴 형제가 만든 영화들이다.

박찬경(왼쪽), 박찬욱 형제

국내에도 형제 감독이 있다. 박찬욱, 박찬경 형제는 <파란만장> <고진감래> 등의 영화를 공동연출했다.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방독피>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 등의 영화를 만든 김곡, 김선 형제도 아는 사람들은 알 거다.


크리스토퍼(왼쪽), 조나단 놀란 형제.

이렇게 형제 감독들을 늘어놓은 건 <덩케르크>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생 조나단 놀란을 소개하기 위한 밑밥이다. 국내에서 워낙 인기가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라 <덩케르크> 개봉에 맞춰 그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쏟아질 것 같았다. 약간 방향을 틀고 보니 거기 조나단 놀란이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팬이라면 이미 조나단 놀란에 대해 알고 있을 듯하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라 믿는다.

<메멘토>

<메멘토>의 아이디어를 만들다
미안하지만 조나단 놀란은 형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메멘토>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메멘토>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출세작이다. 단기기억상실증이란 설정과 시간을 거꾸로 보여주는 연출을 보며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천재’라는 글자를 그렸을 것이다. 그런 <메멘토>의 아이디어는 원래 조나단 놀란의 것이었다. 조나단이 단편 소설로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먼저 형의 영화로 세상에 나왔다. 조나단은 이후 <메멘토 모리>라는 단편소설을 완성했다. 각본을 쓰지 않았지만 조나단은 형 크리스토퍼와 함께 <메멘토>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인터스텔라> 촬영현장의 조나단 놀란(가운데). (합성 같은 느낌이지만) 왼쪽은 매튜 매커너히인 듯하다.

<다크나이트>의 각본을 쓰다
국내에 조나단 놀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건 <인터스텔라> 때였다. 그는 <인터스텔라>의 시나리오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캘리포니아공대의 세계적 이론 물리학자 킵 손에게 4년간 상대성이론 등 천체물리학을 배운 것으로 유명하다.

<다크 이트>

그밖에 조나단 놀란이 형과 함께 만든 영화는 더 있다. <프레스티지> <다크나이트> <다크나이트 라이즈> 등이다. <다크나이트>와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시나리오 초고는 조나단의 손에서 나왔다. 범죄자와 시민들의 배에 각각 기폭장치를 쥐어주고 상대방의 배를 폭파시키려는 장면은 조나단의 머릿속에서 나온 명장면이다. 또 조나단은 루시어스 폭스(모건 프리먼)가 개발한 감시 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도 제공했다. 모든 CCTV와 휴대전화를 감시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은 나중에 파괴된다.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를 제작하다
조나단 놀란은 형의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다크나이트>에서 던진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질문과 감시 사회에 대한 공포 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그게 바로 CBS에서 방영한 수사물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다. 감시 시스템을 통해 범죄를 예측하는 사회를 다룬 이 드라마에서 부각되는 이름은 사실 ‘떡밥의 제왕’ J. J. 에이브럼스이지만 애초에 시나리오를 들고 그에게 찾아간 사람은 조나단 놀란이다. 물론 그도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시즌2 16화에서 감독으로도 연출 데뷔했다.

<웨스트 월드> 촬영장의 조나단 놀란(오른쪽)과 공동제작자이자 아내인 리사 조이.

<웨스트 월드>로 크게 주목받다
조나단 놀란은 지난해 가장 큰 화제가 된 드라마 <웨스트 월드>를 제작한 장본인이다. 부인 리사 조이도 제작자로 참여했다. <웨스트 월드>는 미국 서부를 완벽하게 재현한 테마파크와 안드로이드 로봇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안소니 홉킨스, 에드 해리스, 에반 레이첼 우드, 제임스 마스던 등이 출연한다. <쥬라기 공원>의 원작자 마이클 크라이튼의 1973년 영화가 원작이다. 이 영화는 국내에는 <이색지대>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조나단 놀란은 총괄제작자이면서 각본, 연출까지 참여했다.

형 크리스토퍼 놀란과 달리 조나단 놀란은 TV시리즈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두 사람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각자 다른 분야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다. 언제가 한번쯤 크리스토퍼와 조나단의 공동연출작도 보고 싶다. 엄청나게 고집 세 보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수락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한다.


놀란 형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

놀란 형제

*놀란 형제의 아버지는 영국인이고 어머니는 미국인이다. 아버지는 광고 회사 중역이고 어머니는 승무원 출신이라고 한다.

*놀란 형제는 영국/미국 시민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국의 런던대학교(UCL)를 다녔고 조나단 놀란은 미국의 조지타운대학을 다녔다. 두 사람 모두 영문학을 전공했다. 학교에서 영화를 배운 적은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국식 악센트, 조나단 놀란은 미국식 악센트의 영어를 쓴다.

크리스토퍼 놀란(왼쪽) 감독과 아내 엠마 토마스.

*놀란 형제의 아내들은 모두 관련 업계 종사자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아내 엠마 토마스는 영화제작자이고 조나단 놀란의 아내는 <번 노티스> 작가 출신 제작자다.

*놀란 형제는 사실 삼형제다. 맏형 매튜 놀란은 코스타리카에서 살인을 저질러 수감 중이라고 한다.

*놀란 형제의 삼촌 존 놀란은 영국의 유명 배우다. 조나단 놀란의 드라마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크리스토퍼 놀란의 데뷔작 <미행>, <배트맨 비긴즈>, <덩케르크> 등에 출연했다. 놀란 형제의 사촌 미란다 놀란 역시 배우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배트맨 비긴즈> 시나리오 회의에 조나단 놀란을 참여시켰다. 크레딧에 올리지는 않았다. 조나단 놀란은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의 각본에 참여했으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조나단 놀란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단편 <두글버그>와 데뷔작 <미행>에서 카메라 스태프로 참여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