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한 <씨네플레이> 기자
흥미의 시대에 바치는 사랑과 낭만의 문장
★★★
<프렌치 디스패치>는 웨스 앤더슨 감독이 사랑하는 잡지 <뉴요커>와 프랑스에 대한 헌정과 같은 작품이다. 또한 짧은 문장과 이미지로 소비되는 흥미의 시대에도 꺾이지 않길 바라는 저널리즘과 낭만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정교하게 구성된 스타일의 향연 속에 그만큼 화려한 캐스팅이 돋보인다. 다만 웨스 앤더슨의 의도에 대한 호불호는 여전하다. 궁극의 미장센에 열광하거나 그에 비해 헐거운 내러티브에 갸우뚱하거나.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웨스 앤더슨에 의한, 오직 그만이 가능한
★★★☆
단순히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 차라리 인쇄 매체의 벨에포크에 보내는 러브 레터에 가깝다. 따라서 일반 관객보다 과거나 현재 매체 종사자들의 마음을 살 확률이 높아 보인다. 보는 잡지를 지향한 만큼 이미지와 텍스트가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그 양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연출작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방대하다. 극의 공기에 작은 여백도 허락하지 않는 감독 특유의 강박적인 화면 세공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현실 세계의 이슈들과 완벽한 스타일이 충돌하는 그 사이 어딘가의 긴장 역시 탁월하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아 영화로운 잡지의 나날이여
★★★☆
한 권의 잡지를 영화로 옮긴 <프렌치 디스패치>는 인쇄 매체만이 가지는 아름다운 패치워크를 선보인다. 사회, 정치, 미술, 맛 등 각기 다른 섹션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지만 결국 잡지가 추구하는 하나의 가치를 위해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모습을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흑백필름으로 마감했다. 자로 잰 듯 정확한 구획과 통제된 디자인이 필요한 잡지 편집과 닮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세계는 그 이상을 구현하기 완벽한 무대가 된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시각적 즐거움만큼은 확실!
★★★☆
잡지 기사에서 영감받아 탄생한 영화는 많고, 잡지 만드는 사람/과정을 그린 작품도 많지만, 잡지의 형식 자체를 영화적으로 차용한 경우는 희귀하다. ‘아, 이렇게 인용할 수도 있구나’ 감탄사를 부르는 웨스 앤더슨 당신의 뇌 구조는 도대체! 네 개의 기획 기사를 잡지 펼쳐 보듯 옴니버스로 엮은 <프렌치 디스패치>는 기사(에피소드) 전환도 잡지 느낌의 레이아웃으로 꿰는데, 그 안에 또 ‘흑백 영상’ ‘애니메이션’ ‘화면 분할’ 등을 빽빽하게 채워 넣었다. 어느 한 구간 대충 가는 법이 없고, 어떤 장면을 단독으로 떼어 놓아도 그림 같지 않은 게 없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나 정서를 중요시하는 관객이라면 분절된 이 영화가 성에 안 찰 수 있으니, 구독 전 자신의 취향을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그러고 보니, 엄격한 규율과 완벽주의와 엉뚱함으로 편집부를 아우르는 편집장 아서(빌 머레이)는 웨스 앤더슨과 판박이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웨스 앤더슨이라는 장르
★★★★
웨스 앤더슨 감독의 대표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와 비교하면 좀 더 실험적이고 대중성에서 멀어진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철저한 장인 정신으로 범접할 수 없는 작가 세계를 쌓아 올린 그가 제본하듯 만든 ‘잡지사 이야기’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웅숭깊은 매력을 토해낸다. 웨스 앤더슨 사단이라 불리는 ‘선임’ 배우들의 진기명기는 여전하고, 티모시 샬라메를 비롯해 새롭게 합류한 ‘신임’ 배우들은 웨스 앤더슨 월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지나간 것, 잊힌 것들의 가치를 웨스 앤더슨이라는 독보적인 장르로 부활시키는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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