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 같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동안 개봉을 미뤄온 영화들이 하나둘 극장에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종종 선물 같은 라인업이 구성되기도 하는데, 이번주 개봉작에선 배우 이혜영의 활약을 기대해 볼 만하다. 4월 20일 개봉한 <앵커>와 21일 개봉한 <소설가의 영화>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한 이혜영, 그의 인생을 알아보자.
-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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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지연
출연 천우희, 신하균, 이혜영
개봉 2022.04.20.
- 소설가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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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홍상수
출연 이혜영, 김민희, 서영화, 권해효, 조윤희, 기주봉, 박미소, 하성국
개봉 2022.04.21.
극과 극,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신작들
<앵커>, <소설가의 영화>
이혜영이 출연한 두 편의 영화 <앵커>와 <소설가의 영화>, 두 영화는 장르부터 지향점까지 판이하게 다르다. <앵커>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제보전화를 받은 앵커 세라(천우희)의 이야기를 다루고, <소설가의 영화>는 한 배우(김민희)와 마주친 소설가의 시간을 그린다. 사실 <소설가의 영화>는 내용보다 감독의 이름, 홍상수라는 세 글자만 봐도 심상치 않을 영화임을 직감할 수 있다. 그것 하나만 알아도 웬만한 관객이라면 두 영화의 색이 얼마나 다를지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이혜영의 캐릭터도 상이하다. <앵커>에서 이혜영은 세라 엄마 소정을 맡았다.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수많은 이미지가 있지만, 이혜영이 맡은 배역답게 무척 강렬한 이미지가 돋보인다. 제보 전화를 받은 세라에게 '이건 기회다'라며 종용하고, 예상 못 한 증상을 겪는 세라에게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압박하는 소정은 세라의 심리를 위축시키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소설가의 영화> 속 준희는 (홍상수 영화답게) 평범하디 평범한 인물. 홍상수 영화가 늘 그렇듯 엄청나게 비일상적인 일이 아닌, 현실에서 맞이할 법한 상황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라 배우 이혜영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드러나는 캐릭터라고 봐도 좋다.
90년대 무비스타, 2000년대 TV스타
이혜영의 대표작은? 하고 물었을 때 어떤 대답이 나오느냐에 따라 답변자의 나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이혜영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활동했는데, 때로는 영화에 주력하다가도 가끔은 드라마에서 인생 캐릭터를 보여주는 편이었다. 80년대~90년대는 영화에서의 활약이 돋보였고, 2000년대는 드라마에서의 존재감이 남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2000년대 전엔 드라마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영화 일정만으로도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출연작을 살펴보면 <무릎과 무릎 사이> <겨울 나그네> <거리의 악사> <사방지> <성공시대> 등이 있다. 80년대 가장 충격적인 영화 중 하나인 에로틱 멜로 <무릎과 무릎 사이>와 고전적 멜로 영화 클래식으로 손꼽히는 <겨울 나그네>에 모두 출연한 것이 눈에 띈다. 이혜영처럼 두 작품 모두 출연한 안성기와 다시 만난 작품이 <성공시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는 김판촉과 성소비로 호흡을 맞췄다. 특히 파격적이었던 작품은 <사방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인터섹스(여성과 남성 성기를 불완전하게나마 모두 가진) 사방지의 이야기를 옮긴 영화로 이혜영은 사방지 역을 맡아 이소사(방희)와의 사랑과 사대부에 대한 복수에 열연을 펼쳤다. 캐릭터부터 양성을 가진 인물로 쉽지 않았을 캐릭터인데, 두 가지 이미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이혜영만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90년대 들어서는 80년대만큼 다작을 하진 않았으나 <남부군> <개벽> <명자 아끼꼬 쏘냐> <화엄경> 등 출연작 다수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물론 그중 흥행은 실패한 경우도 있지만). 90년대에도 이혜영만의 카리스마 묻어나는 캐릭터가 이어지는데, <남부군>의 빨치산 대원 김희숙이나 <개벽>의 해월 본처 같은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90년대 후반에는 긴 공백기를 가졌다가 2002년 <피도 눈물도 없이>로 영화에 복귀했다. 여기서 맡은 경선 역도 (당시에는 사용하지 않은 말이지만) 걸크러쉬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자주 언급된다.
2000년대 이혜영을 얘기할 때 가장 처음 나오고, 가장 많이 말하게 될 것은 <미안하다, 사랑한다> 오들희다. 드라마가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으며 오들희라는 독특한 캐릭터도 드라마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최윤(정경호)의 어머니로 매번 "아들~"하고 최윤을 과보호하는 엄마로 그려지다가 드라마 막판에 그 누구 못지않게 감정적 격정을 경험하는 여성으로 묘사되는 입체적인 캐릭터. 무엇보다 이혜영의 캐릭터 연기와 감정 표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존재감을 더한다. 이를 시작으로 <패션 70s> 장봉식, <꽃보다 남자> 강희수, <내 마음이 들리니> 태현숙 같은 캐릭터가 이어졌고, 약 7년간의 공백기 후 <마더> 차영신, <무법 변호사> 차문숙, <킬힐> 기모란까지 역대급 캐릭터와 연기력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불꽃처럼 살다 간 영화천재 아버지
이혜영이 <당신얼굴 앞에서>를 찍으면서 화제가 됐던 건 그와 홍상수의 인연이다. 두 사람은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작업을 같이 했는데, 그렇다고 생판 남이었던 건 아니다. <휴일>이라는 영화가 이혜영의 아버지 이만희 감독과 홍상수의 어머니 전옥숙 제작자의 손에서 탄생했기 때문. 이혜영은 이만희가 세상을 떠난 후 전옥숙과 만났었고, 전옥숙이 세상을 떠났을 때 빈소에서 홍상수를 만나기도 했다. 이런 인연이 있었기 때문일까, 이혜영은 홍상수 감독에게 연락을 받자마자 "준비가 됐다"며 바로 출연 의사를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홍상수의 연출작은 출연 제의 문자를 받고 나서야 보기 시작했다고. 이런 두 사람의 만남은 <당신얼굴 앞에서>와 이번에 개봉한 <소설가의 영화>로까지 이어졌다.
<휴일>을 언급하긴 했지만 이만희 감독은 1970년대 영화계를 휩쓴 천재 감독으로 유명하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마의 계단> <귀로> <쇠사슬을 끊어라>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특히 당대 최고의 멜로라는 평가를 받은 <만추>라는 작품이 원본 유실로 진짜 '전설'이 된 것도 유명하다(이 훌륭한 영화는 세 번이나 리메이크됐다). 이런 천재감독이라면 으레 괴팍할 것 같은 이미지지만, 이만희는 주변 영화인들도 인정하는 신사였고 이혜영 또한 이만희가 다정한 아버지였다고 기억한다. 이혜영은 아버지 이만희는 정말 영화밖에 몰랐던 사람이라 딸에게조차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한 적이 없었다며 "성실한 천재"라고 말한 바 있다. 이혜영이 중학교 다닐 무렵 이만희 감독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자식들에게 "내가 물려줄 거라곤 내 이름 석 자와 작품들뿐이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한 바 있다.
영화·연극 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수상자
이혜영을 영화 스타, 드라마 스타라고 말하지만 그의 연기적 원점은 무대에 가깝다. 첫 데뷔작도 영화가 아닌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고 매체 활동을 쉴 때도 연극으로 연기에 대한 갈망을 풀었다. 길이 잘 트인 분야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연기라는 범주를 넓게 활용하는 올라운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중문화 종합예술상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연극 부문에서 모두 상을 수상한 전적이 있다. 영화 부문 여자 신인연기상(<여왕벌>), 여자 최우수연기상(<성공시대>), 연극 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집>)을 수상했다. 아직 TV 부문 수상 이력이 없는데, TV 부문 최우수연기상까지 수상한다면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기록에도 이름을 남기게 될 듯.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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