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독립영화에 주목할 만한 ‘침입자’가 등장했다. 불편한 것, 숨기고 싶은 것, 거슬리는 것을 전면으로 끌어 내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는 연출자. 심리 스릴러 〈훈련사〉의 개봉을 앞둔 서은선 감독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연출을 전공한 그는 단편 〈창밖의 영화〉(2012), 〈열대야〉(2015) 등을 통해 결핍과 욕망을 가진 여성들을 꾸준히 형상화 해왔다.
첫 장편 연출작 〈훈련사〉는 살인 전과를 가진 동생 소라(김승화)의 출소로 흔들리는 스타 반려견 훈련사 하영(최승윤), 두 자매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통제욕과 인간 본성에 관한 디테일한 탐구다.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를 향한 방화 사건 부터 현재 소라의 등장으로 조성되는 성적 긴장감 까지, 이 영화는 온통 일어난 사건과 곧 일어날 암시를 주는 욕망과 파멸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페도로 알모도바르의 자극적 설정으로 미하엘 하네케가 그려 온 원초적 본성의 영역에 가닿으려는 감독의 도전은 분명 한국 독립영화에서는 흔히 만나지 못해 온 독특한 성질의 것이다. 특정 안타고니스트를 설정하는 대신, 영화 속 다양한 캐릭터들 안에 존재하는 어두운 면모들을 끄집어 내는 방식으로 첫 장편 부터 서은선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 지 확실히 보여주려 한다. 착상 때부터 낯설고 불편한 이 영화의 장치들을 향한 ‘주변의 우려와 코멘트’가 적지 않았다는 그는, 그럼에도 그 거칠고 날선 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대신, 위험한 형태로 관객 앞에 펼쳐 놓기로 한다.


간만에 스크린을 찢을 듯한 기세의 영화다. 관객은 이 ‘불편’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놓을까. 개봉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평가를 기다리는 서은선 감독을 만났다. 뚜렷한 장르색으로 예테보리, 마드리드, 모스크바, 벤쿠버영화제 등 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은 〈훈련사〉는 5월 13일 국내 개봉한다.

먼저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동물이 나오는 영화를 원래 좋아했는데, 클로이 자오의 〈로데오 카우보이〉(2017)가 기억에 남았어요. 동물과 교감하는 캐릭터 자체가 되게 흥미로웠거든요. 또 제가 정말 좋아하는 감독들이 클로드 샤브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같은 감독들이에요. 그리고 그 시기에 이자벨 위페르가 나온 영화들에 꽂혀 있었어요. 〈피아니스트〉(2001)나 〈엘르〉(2016) 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저 여자 머릿속엔 뭐가 들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너무 컸던 시기였거든요. 그런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관심이 계속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들이 섞여 들며, 자매 간에 형성된 오랜 트라우마, 비틀린 관계를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풀어넣었는데요.
저는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는데, 산책하다 보면 큰 강아지들이 다가올 때 약간 위협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강아지가 무서운 게 아니라, 그 강아지를 확 끌어당기는 사람의 힘이 더 강하게 느껴졌어요. 그때 인간관계도 비슷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주도권을 쥐고 관계를 끌고 가느냐 같은 것들요. 그런 관계를 한번 재밌게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훈련소나 직업 자체의 디테일은 어떻게 더했나요.
매체에 등장하는 훈련사들 관찰도 도움이 됐는데요.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강아지를 다루는 능력도 있지만 보호자를 다루는 솜씨가 굉장하다는 거였어요. 어떻게 보면 보호자를 혼내듯이 하기도 하잖아요. 보호자들도 거기에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묘한 알력 관계가 생기더라고요. 그런 지점들이 재밌었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훈련사라는 직업이 갑자기 엄청 유명해지고 셀럽화된 것도 흥미로웠고요. “저 사람은 집에서는 어떤 사람일까?” 같은 상상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 같아요.
두 번의 큰 사건이 자매의 과거와 현재를 붙잡고 있는데요. 소라가 성폭행 피해자로 저지른 살인사건에 앞서 어린 시절 자매가 폭력적인 아버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지른 방화. 사회가 ‘가해자’라고 규정하지만, 실은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피해 여성의 묘사, 정당방위에 바탕하고 있는데요.
강아지에 대해 조사하다가 실제 사건을 접했는데요. 큰 개가 작은 개를 물어 죽인 사건이었는데, 피해 견주의 분노를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큰 개 주인이 “내 개를 죽여도 된다”고 말했다는 점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법적으로는 개가 견주의 ‘소유물’이라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고요. 그런 걸 보면서 생각했어요. 동물 세계에서는 본능적인 일이 인간 사회에서는 법과 윤리로 판단되잖아요. 그런데 인간도 결국 생존을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들이 영화 속 두 사건으로 이어졌어요. 물론 살인이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영화 속에서도 명확하게 “누가 어떻게 했다”를 설명하지 않았어요. 이 자매가 단순한 피해자로만 보이지 않았으면 했거든요.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지점, 그 복잡함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관객에게 “여러분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캐릭터 설정을 보면, 관객이 쉽게 동화되기보다는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굉장히 위험한 선택으로 보였어요.
신인 감독이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길이다. 시나리오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일반적인 스릴러 구조에서는 희생자처럼 보이는 인물이 마지막에 승리하면서 카타르시스를 주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공식을 따르지 않은거죠. 그런데 결국 공감 가는 인물보다는 문제적인 인물을 그리는 게 제 길 같았어요.
하영은 직업적으로 동물을 훈련하는 것처럼 인간도 조정하는 인물인데요. 특정 모델이 있는 캐릭터인가요.
특정 인물은 없었어요. 다만 제가 좋아했던 끌로드 샤브롤이나 페도라 알모도바르 영화들 속 인물들이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특히 도덕적으로 위험한 사람들, 사회적으로는 문제적이라고 여겨지는 인물들요. 그런 캐릭터들에게 많이 끌렸어요. 하영에게는 제가 그동안 수없이 봐왔던 ‘알 수 없는 여자들’이 다 섞여 들어간 것 같아요. 하영은 자기 자신을 굉장히 혹독하게 훈련시켜서 성공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자신감이 있는 상태고, 자기 주변의 결핍 있어 보이는 사람들조차 “나처럼 바뀔 수 있다”라고 믿는 독단적인 사람이에요. 통제 욕구도 강하고요. 그런데 본인은 그게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믿는 사람이죠.

소라의 공격성이 길러진 건 언니 하영을 향한 원망에서 비롯되는데요. 자매의 관계는 이미 유년 시절부터 형성되어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처럼 보였어요.
어린 시절 방화를 저지른 후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돼요. 하영은 “강해져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으로 사회 시스템 안에서 성공한 삶을 살고, 소라는 모든 걸 탓하게 되는 삶을 살게 되고요. 그런데 중요한 건 두 사람이 같은 사건을 겪었어도 기억은 다를 수 있다는 거예요. 하영은 직접적인 폭력에 더 노출됐고, 소라는 언니가 보호하려 했던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소라 안에서는 모든 기억이 왜곡돼 굳어져 버린 거죠. “결국 언니 때문이다”라는 식으로요.
▶〈훈련사〉 서은선 감독과의 인터뷰는 2부로 이어집니다.
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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