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 욕망에 ‘부드러운 멜로디’란 없다” '훈련사' 서은선 감독 ②

살인 전과를 가진 동생 소라(김승화)의 출소로 스타 반려견 훈련사 하영(최승윤)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훈련사〉 서은선 감독과의 인터뷰는 1부에서 이어집니다.


반목하는 둘의 관계가, 영화에 끊임없이 긴장을 유발하고 사건이 일어날 빌미를 제공해 주는데요.

맞아요. 서로가 서로의 목줄을 쥐고 있는 관계인 것 같아요. 하영은 과거 때문에 소라를 두려워하고, 소라는 하영의 약점을 알고 있고요. 동시에 하영은 소라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도 있고요. 서로가 서로를 통제하는 관계죠.

하영의 남편과 소라, 하영과 전 여친의 동성애 암시 등 자매 간의 긴장을 더하는 장치로 ‘성적 긴장감’을 활용하는데요.

저는 이 이야기가 결국 본능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관계 안에서 본능적으로 유혹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관계 안에서 주도권을 가지려는 욕망이기도 하고, 생존 본능과도 연결돼 있다고 느꼈어요. 인간도 자기 매력을 이용해서 관계를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끌고 가려 하잖아요.

〈훈련사〉
〈훈련사〉

원초적인 욕망, 성적인 묘사 등이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 점에서 과감한 설정으로 읽혔어요.

제가 어릴 때 영화관에 매료됐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결국 그런 긴장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극장에서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하는 감각이요. 그런 원초적인 감각을 영화 안에 넣고 싶었어요. 요즘은 그런 영화가 정말 많이 없어졌죠. 거의 멸종 직전 같기도 하고요.

여러모로 복잡다단한 여성 캐릭터의 출현인데요. 두 배우의 대비가 돋보이는 캐스팅이었어요. 먼저 하영 역의 최승 배우는 무표정한 마스크와 절제된 동작으로 캐릭터 설계 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의 톤을 잡아 나가는데요. 사나운 개와 마주하는 첫장면 클로즈업 컷에서 그 능력을 보여주는 배우였어요.

최승윤 배우는 무표정한 얼굴과 오래 단련된 사람의 태가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무용을 전공한 배우라 피지컬 적으로 말랐는데도 단단한 기운이 전해져서 일단 하영과 잘 맞았죠. 원래는 피지컬적으로 강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렸는데, 갈수록 중요한 건 감정 기복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아지와 기싸움을 할 때 감정이 흔들리면 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미스터리한 얼굴, 가까운 듯 멀게 느껴지는 얼굴이 필요했어요. 이자벨 위페르 같은 표정이 승윤 배우에게서 보였어요.

〈훈련사〉
〈훈련사〉

소라는 그에 비해 훨씬 뜨거온 온도, 저돌적 몸짓을 가진 인물인데요. 김승화 배우가 도발적인 표정과 액션으로 문제적 인물을 표현하는데요. 영화 속 인간에게 위험을 주는 들개같은 모습을 구상하셨을 것 같은데요.

하영과 달리 소라는 훨씬 돌발적이고 원초적인 존재여야 했어요. 승화 배우를 만났을 때 엉뚱하고 예측 불가능한 느낌이 너무 재밌었어요. 미세하지만 영화를 보면 발견하실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일부러 코를 훌쩍거려서 먹거나, 뭔가 딱딱 거리고 소리를 낸다거나 이런 사소한 요소들을 본인이 준비를 했어요. 그 부분을 편집할 때 최대한 살렸어요. 완벽하게 통제된 공간 안으로 더러운 것이 들어온 듯한 감각, 뭔가 거슬리게 하는 존재가 승화 배우의 연기와 함께 만들어 질 수 있었어요.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의 구성도 흥미로운데요. 우선 공간 자체가 굉장히 한정적이고, 주거 공간도 상당히 미니멀하게 구성되는데요.

공간 같은 경우는 사실 거의 훈련소와 집, 그리고 마당 정도로 끝나는 구조였어요. 훈련소도 내부 공간과 운동장 정도로 나뉘고요. 찍다 보니까 초반 24회차 중 11회차까지 거의 실내 촬영만 했더라고요. 집 촬영이 절반 가까이 됐던 것 같아요. 영화가 거의 실내극처럼 진행되다 보니까 촬영감독님과 계속 이야기했던 게 결국 ‘연기’였어요. 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 감정을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가 중요했던 거죠. 콘티는 미리 다 짜갔지만, 현장에서는 배우들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에 맞춰 조금 더 유연하게 가려고 했어요.

〈훈련사〉
〈훈련사〉

2층 구조인 하영의 집 구조가 흥미로운데요. 소라라는 명확한 ‘침입자’의 등장 이후, 인물들이 비밀스럽게 위 아래를 오가는데요. 결국 집의 구조가 장르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치로 활용되는데요. 김기영 감독의 〈하녀〉도 연상되고요.

조셉 로지 감독의 〈하인〉(The Servant, 1963) 같은 영화들의 2층 구조를 흥미롭게 봤었어요. 영화 안에서 2층 공간은 원래 하영의 남편인 윤호의 유일한 공간이잖아요. 하영이 오기 전엔 작업실 대신 아기방처럼 사용하려던 공간이었는데, 결국 소라의 방이 되죠. 격리된 공간이지만, 또 2층이라는 위치 때문에 아래를 내려다볼 수도 있는 곳이에요. 손님처럼 머무는 공간인데 동시에 위에서 훔쳐보거나 군림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사실 시각적으로 계단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 같긴 해요.

불편을 가중 시키는 요소로 이 영화의 음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앰비언트 사운드로 극적 긴장감을 극화하는데요. 어떻게 톤을 잡아 갔나요.

음악감독님과 처음부터 “부드러운 멜로디는 없다”는 데 동의했어요. 음악이 감정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처럼 느껴졌으면 했고요. 감정을 동요시키기 위한 음악은 자제했고, 상황 자체를 밀어붙이는 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려 했어요.

〈훈련사〉
〈훈련사〉

결국 이 영화는 유명한 훈련사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훈련사로서는 좌절을 겪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맞아요. 결국 개한테 물리고, 부부 관계도 무너지고, 자기가 만들어온 삶이 허상이라는 걸 깨닫게 되죠. 그런데 저는 그 실패를 통해 하영이 오히려 자유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통제에 실패했기 때문에 비로소 해방감을 느끼는 거죠.

결핍에서 오는 욕망, 탐욕 같은 실은 숨기고 싶은 감정은 감독님이 단편 부터 전개해 온 일관된 재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옆집 여성의 것을 탐하는 〈열대야〉의 도발적인 묘사와 맞닿은 지점도 보이고요.

맞아요. 저는 뭔가를 훔쳐본다는 긴장감을 계속 표현하고 싶은 것 같아요. 사람들은 결핍이나 탐욕 같은 걸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분명 존재해요. 저는 그게 드러나는 순간이 흥미로운 것 같아요.

서은선 감독 (사진제공=(주)마노엔터테인먼트)
서은선 감독 (사진제공=(주)마노엔터테인먼트)

그런 면에서 〈훈련사〉라는 영화 자체가 그런 지점을 맘껏 드러내는 ‘통제되지 않는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제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를 2015년에 졸업했는데, 거의 10년 가까이 장편을 준비하면서 “내 영화는 왜 만들어져야 하지?”라는 질문을 계속했어요. 결국에는 내가 숨기고 싶은 부분을 드러내야 설득력이 생긴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공감하는 이야기보다, 내가 끌리고 궁금해하는 이야기가 관객에게도 더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았거든요. 모두가 공감하고 응원하는 이야기보다는, 좀 더 불편하고 이상한 이야기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수의 영화일 수 있지만, 영화가 더 다채로워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영화들을 앞으로도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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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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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위험하고 문제적인 ‘알 수 없는 여자들’에 끌린다” '훈련사' 서은선 감독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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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5. 13.

[인터뷰] “위험하고 문제적인 ‘알 수 없는 여자들’에 끌린다” '훈련사' 서은선 감독 ①

한국독립영화에 주목할 만한 ‘침입자’가 등장했다. 불편한 것, 숨기고 싶은 것, 거슬리는 것을 전면으로 끌어 내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는 연출자. 심리 스릴러 〈훈련사〉의 개봉을 앞둔 서은선 감독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에서 연출을 전공한 그는 단편 〈창밖의 영화〉(2012), 〈열대야〉(2015) 등을 통해 결핍과 욕망을 가진 여성들을 꾸준히 형상화 해왔다. ​첫 장편 연출작 〈훈련사〉는 살인 전과를 가진 동생 소라 의 출소로 흔들리는 스타 반려견 훈련사 하영 , 두 자매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통제욕과 인간 본성에 관한 디테일한 탐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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