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섬해적단은 2012년 해체한 2인조 밴드다. 그라인드 코어를 한다고 알려졌지만, 그들 스스로는 “시끄러운 음악”을 한다고 소개한다. 밤섬해적단이 인디 신에서 화제가 됐던 이유는 음악 자체보다 가사와 퍼포먼스에 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일성 등을 끊임없이 소환시키며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한국 사회에 대해 농담조로 일관하는 가사는, 특유의 재치와 첨예함으로 많은 이들의 말초적인 흥미를 사기에 충분했다. 유일한 단독 음반 <서울불바다>의 노래 ‘조국을 수호하자’, ‘6.25 참전용사’, ‘386 Sucks', ‘북괴의 지령’, ‘행정보급관’, ‘이명박 욕하면 나도 무려 좌파’ 등에서 그들의 날선 노랫말은 어딘가를 겨냥하고 낄낄대며 가리킨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제목 그대로 밤섬해적단이 앨범 <서울불바다>를 내놓고 활동을 이어가던 시기를 관찰한 다큐멘터리다. 지존파 연쇄살인,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등을 다시 조명하며 1990년대 중반 한국사회를 되돌아본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를 내놓았던 정윤석의 신작이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전작은 스릴러를 연상하면서 만들었다면,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액션영화의 호흡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이야기의 개연성을 따지지 않아도 따라갈 수 있는 느낌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의도처럼, 영화는 그들의 이름조차 처음 듣고 인디 신에 대해 문외한인 이들조차 쉽게 받아들이도록 밤섬해적단의 범상찮은 2년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정윤석은 밤섬해적단이 선보인 수많은 공연 중에서 발췌한 몇몇 공연을 보여주는 걸 중심으로 그들을 소개한다. 다만 라이브를 멋있게 보여주려는 의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그들의 공연 자체보다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전후 과정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쏟는다는 점이다. 에디터가 라이브 현장에서 본 밤섬해적단은 단 한 순간도 진지해 보이지 않았다. 길어야 3분 정도 되는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하는 사이사이에 그들은 밑도끝도 없는 시덥잖은 만담을 늘어놓으며 관객을 들었다놓았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밴드가 무대에 오르기 전후 어떤 생각으로 라이브에 임하는지 지켜보고 직접 질문을 던지면서, 그들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진지해지는 순간이 담길 수밖에 없는데, 거의 모든 분량을 2010년부터 2012년까지의 시간에 할애하고 있는 영화가 2017년에야 처음 공개된 것도 바로 그 이러한 아이러니 때문이 아니었을지 짐작하게 된다. 농담을 진지하게 설명한다는 건 실로 끔찍한 일이니까.
중간중간 삽입된 뮤직비디오 클립들은 관객들의 말초적인 흥미를 이끌어내는 도구다. 옛 영화와 선전영상 등에서 발췌한 이미지들과 세심하게 '웃기게 보이도록' 꾸며진 노랫말이 정신 사납게 뒤엉켜 있는 진풍경들이 펼쳐진다. <논픽션 다이어리> 이전,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푸티지들과 현란한 비주얼이펙트들이 벼락처럼 쏟아지는 <별들의 고향>이라는 비디오 작업을 여러 미술 전시에 선보인 바 있는 정윤석의 장기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밤섬해적단의 두 멤버 권용만과 장성건, 그리고 박정근, 단편선 등 친구들이 웃음기 없이 나누는 대화가 남겨놓는 진중한 분위기를 간간이 배치된 비디오들이 일거에 날려버린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를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다.
밤섬해적단으로 시작한 영화는 북한 선전용 트위터 계정을 리트윗 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사진가 박정근을 지켜보며 결말로 향한다. 사건 당시, 펑크 레이블 비싼트로피 레코드를 운영하며 오랫동안 밤섬해적단과 연을 맺어온 그를 위해 권용만이 <서울불바다> 커버와 노래 '김정일 만세'를 제출하며 재판 증인으로 출석했기 때문이다. 활동 당시 공공연하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해설한 적이 없는 권용만은 친구의 안위를 위해 건조한 말투로 앨범에 담긴 표현들이 '농담'이라고 애써 설명해야 했다. 그 이후 밤섬해적단은 해체했다.
정윤석은 <에반게리온>과 김정은을 한데 붙여놓은 <서울불바다> 커버 이미지와 재판 당시의 변론을 한데 담아, 밤섬해적단이 근 2년간 퍼트렸던 농담들이 어떻게 퇴색하게 되는지 길게 '들려준다'. 여느 다큐멘터리처럼 국가보안법의 그늘 아래 농담과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내레이션으로 늘어놓진 않지만,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가 보여주는 국가 폭력의 그림자는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지켜본 대상이자 친구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끝내 만져진다. 이미지와 소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잘 아는 유능한 다큐멘터리스트의 모범적인 결과물이다.
-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
감독 정윤석
출연 권용만, 장성건
개봉 2017 대한민국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재밌으셨나요? 아래 배너를 눌러 네이버 영화를 설정하면 영화 이야기, 시사회 이벤트 등이 가득한 손바닥 영화 매거진을 구독하게 됩니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