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요순시대, '태평성대'라고 일컫는 그 시절은 왕의 이름을 물어도 전부 모른다고 대답했다 전해진다. 그 시절 노래 '격양가'엔 제력우아하유재(帝力干我何有哉, 제왕의 힘인들 내게 무슨 소용 있으랴)란 구절도 있다. 왕의 이름도 모르고 그의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는 시대야말로 진정 국민들이 살기 좋은 시대란 것이다.
그런데 이 분, 나라의 수장에서 내려간 지 4년이 됐는데 최근 더 자주 보이고 그 이름이 자주 들린다. 이명박 전 대통령. 가수 이승환은 그에게 '돈의 신'이란 헌정곡을 내놨고, '악마기자' 시사iN 주진우 기자는 추적기를 책으로 엮은 것도 모자라 다큐멘터리 <저수지 게임>을 내놨다.
<저수지 게임>은 10년 넘게 MB의 비자금을 추적하는 주진우의 최근 취재 결과를 담는다. 영화는 4년 전 검찰에 출두하는 주진우와 "꿈에 이명박이 나왔다"며 욕설을 내뱉는 현재의 주진우로 시작한다. <저수지 게임>은 주진우의 이 질긴 근성을 기자 정신의 발현으로 포장하기보다 광기, 복수처럼 표현한다. 다소 기괴한 인물 소개는 MB가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부조리와 충돌하면서 '저수지'를 향한 비정상적 취재 의지에 불을 지핀다.
- 저수지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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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최진성
출연 주진우
개봉 2017 대한민국
사실 김어준이나 주진우의 팬이 아닌 에디터는 2012년 대선 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다큐멘터리 <더 플랜>의 최진성 감독의 연출력을 믿고 이 영화에 덤볐다. <더 플랜>의 이야기를 인물의 정면과 측면, 그리고 차가운 영상의 톤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그의 연출에 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진성 감독은 <저수지 게임> 속 '돈의 신화'와 그걸 추적하는 주진우를 애니메이션과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해 가공한다. 내부고발자의 목소리와 촬영할 수 없었던 몇몇 장면, 인터뷰의 한정적인 앵글을 흑백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하고 때로는 하나의 공간으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이 흑백 애니메이션들은 화려하게 보이려 하지도 않고, '검은 돈'과 '범죄'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복잡한 정보를 정리하고 전달한다. 제보자의 목소리는 배우 김의성이 재현한 것과 동시에 사용돼 (고발은 했으나 목숨은 부지하고 싶은) 이중적인 감정을 형상화한다. 캐나다 한인 사회를 뒤흔든 분양 사기 사건인 노스욕 사건을 시작으로 MB정권의 자원외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저수지 게임>은 5년간 MB를 추적한 주진우처럼 집요하게 해당 사건의 전모를 짚어본다.
물론 <저수지 게임>의 내용은 입증되지 않는다. 내부자들의 증언으로 가능성은 더 뚜렷해지나 물증은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람이 묘하게 죽은 사건도 있는데, 관련자들은 책임을 계속 남에게 돌린다. 영화는 결론 직전까지 도달하지만 결국 국가 기관의 개입이 없으면 도리가 없음을 털어놓는다.
원한다면 <저수지 게임>을 이렇게 규정할 수도 있다. 음모론 혹은 선동. 제아무리 권력자라 해도 이 정도로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나 의심될 것이다. 이 영화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투자한 210억 원을 날리고도 미진한 농협의 태도, '주변에 죽은 사람이 있다'면서도 은폐된 사실을 털어놓는 제보자의 증언은 <저수지 게임>이 주장하는 것에 힘을 싣는다.
아쉬운 건 영화 종반에 따라붙는 '변명'들이다. 왜 이 영화를 만들어야 했는지, 그리고 왜 MB를 추적하는지에 대한 김어준과 주진우의 구태의연한 대화는 <저수지 게임>의 기조, 추적 스릴러의 톤에서 사족처럼 보인다. <저수지 게임>을 보려고 극장을 들어선 관객이나, 혹은 얼떨결에 보게 됐어도 이를 목도한 관객이라면 그들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했을 테니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저수지 게임>이 제시하는 큰 그림은 이것에 동조하든 아니든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이들이 벌이는 추격전은 여느 상업영화 스릴러의 단서 맞추기처럼 재밌기도 하다. 끝끝내 완성되는 순간을 맞이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허망함보다 여운이 남는다는 건 영화 내에 꽉 차있는 재미를 입증한다.
"이 영화는 실패담"이란 제작진의 소개처럼 <저수지 게임>은 그들이 꿈꾸는 마무리를 향한 방아쇠에 가깝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 장악을 담은 <공범자들>은 20만 관객을 돌파했고, MBC와 KBS는 파업에 들어갔다.'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는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저수지 게임>이 당긴 방아쇠는 어떤 파장을 만들게 될까. 과연 공범자가 아닌 진범의 얼굴을 보는 순간이 올지 기대를 걸어본다.
<저수지 게임>의 씬스틸러 이명박이 마음에 든다면, 이번 기회에 그의 출연작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7년-그들이 없는 언론>
감독 김진혁 제작연도 2016 상영시간 110분
한줄요약 이명박 정권에 이뤄진 '낙하산' 인사와 해직된 언론인들
<공범자들>
감독 최승호 제작연도 2017 상영시간 106분
한줄요약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을 망친 언론장악
<MB의 추억>
감독 김재환 제작연도 2012 상영시간 65분
한줄요약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과 된 이후, 세상은 과연 나아졌는가
<맥코리아>
감독 김형렬 제작연도 2012 상영시간 77분
한줄요약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는 어떻게 이명박 정권 당시 굵직한 사업권을 가져왔는가
씨네플레이 인턴 에디터 성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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