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 8년 만의 신작 <버닝>에 캐스팅된 신예” 이 한 줄의 공지로 온라인을 후끈 달군 주인공, 전종서다. 언론은 ‘포스트 김태리’, ‘제2의 문소리’로 그녀를 발 빠르게 점찍으며 후속 보도를 위한 취재 경쟁에 나섰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전종서에 대한 정보는 나이와 학교 정도. 94년생으로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휴학생이라는 게 다다. 아! 첫 영화 상대 배우가 유아인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어쨌든, 알려진 게 별로 없다는 것이 도리어 호기심을 키우는 분위기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이창동 호에 합류한 전종서에 대한 관심은 영화 개봉 시기에 더욱 뜨거워질 전망인데, 강렬한 스크린 데뷔가 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래서 찾아봤다. 전종서만큼이나 인상적으로 스크린에 안착한 배우들을.
<아가씨> 김태리
전종서 기사에 끊임없이 호출되고 있으니 김태리부터 살펴보자. 전종서만큼이나 일찍이 충무로의 눈과 귀가 쏠렸었다. 박찬욱 감독이 <박쥐>(2009) 이후 6년 만에 자국에서 내놓는 <아가씨>(2016)에 탑승할 신예 여배우가 누가 될지. 이러한 관심에 기름을 부은 것은 박찬욱 측이 내건 ‘신인 여배우 공고’ 내용이었다. ‘노출 최고수위이며 이에 대한 협의 불가능’이라는 공지는 영화의 높은 수위는 물론 박찬욱 영화 세계의 타협 없음을 짐작하게 했다. 수위 높은 노출을 감행해야 함에도 전국 팔도 신인 여배우들이 <아가씨> 오디션장으로 달려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유는 아마도 박찬욱이라는 감독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사실, 여배우들이 노출을 선택할 때 필요한 것은 ‘명분’이다. <올드보이>(2003) 강혜정을 발굴하고 <박쥐> 김옥빈에게 배우라는 날개를 달아준 박찬욱 감독이라면 배우들에게 명분 그 이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배우로서 자신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말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박찬욱의 선택을 받은 김태리는 <아가씨>로 칸국제영화제 무대를 밟았고, <아가씨> 이전에 찍은 단편영화 <문영>을 뒤늦게 극장에 상영시키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
<은교> 김고은
“처음 보았을 때의 은교가 잊히지 않는다.” 박범신 작가가 ‘소설 속 노시인 이적요’를 통해 쓴 이 글귀는 정지우 감독을 통해 실물로 살아났다. <은교>(2012) 티저 예고편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곤히 잠들어있는 김고은이라는 신예 배우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김고은을 향한 대중의 호기심은 기이할 정도로 뜨거웠는데, 이는 ‘파격 노출을 감행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그건 그 너머, 김고은이 지니고 있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미묘한 분위기가 더해진 결과였다. 실제로 <은교>에서 김고은은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과 도발적인 매력을 동시에 발화했는데, 동거가 불가능해 보이는 상반된 매력을 오가는 모습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그해 김고은은 각종 영화제를 휩쓸며 신인상 6관왕에 올랐다.
<도둑들> 김수현
인생은 타이밍? 영화 캐스팅이야말로 타이밍이다. 캐스팅 하나에 울고 웃는 영화계. 이 중, 신인 배우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보고 과감하게 베팅하는 감독의 선견지명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잭팟’을 터뜨리기도 한다. <도둑들>(2012)이 그렇다. <도둑들> 캐스팅 당시 최동훈 감독은 신인 김수현을 ‘헐값’(?)에 캐스팅, 촬영까지 마쳤다. 그러나 영화 개봉 즈음의 김수현은 <도둑들> 촬영 때의 김수현이 아니었다. 영화가 개봉을 기다리는 기간,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2012)이 김수현의 품에 별(star)을 안겼기 때문이다. 몸값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고, 많은 충무로 시나리오가 김수현을 향했고, 그가 가는 곳마다 팬들의 비명이 뒤따랐다. 김윤석·이정재·김혜수·전지현 캐스팅만으로도 뜨거웠던 <도둑들>은 김수현이 몰고 온 열기까지 더해져 뜨겁다 못해 펄펄 끓어올랐다. 생각지 못한 복덩이 앞에서 최동훈 감독의 마음은 어땠을까. 출연분량 편집 없이 고스란히 살려낸 것에 힌트는 있을 것이다. 극중 신출내기 도둑 잠파노로 출연한 김수현은 영화 중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지만, 예니콜(전지현)에게 기습 키스하는 박력을 선보이며 여성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으니, 영화가 인기 드라마 덕을 본 경우라 하겠다.
<건축학개론> 수지
아이돌이 스크린에 진출하는 모습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스크린 데뷔작에서 우려를 깨고 좋은 모습을 보이는 건 여전히 희귀한 일이다. 그래서 <건축학개론>(2012)의 수지는 희귀했다. 많은 아이돌이 그랬듯 수지 역시 스크린 진출 소식이 알려졌을 때, 적지 않은 악성 댓글 공격을 받았다. “인기를 등에 업고 스크린에 무임승차했다”는 예상 가능한 악플이 수지를 향했다. 우려를 기회로 만든 건 수지 자신이다. 영화에서 수지는 미래의 첫사랑을 상상하며 한 번쯤 꿈꿔봤을, 지난 첫사랑의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노스텔지어를 부르는 얼굴이었다. ‘국민첫사랑’이 탄생하는 순간, 충무로 여러 시나리오가 수지를 향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건축학개론>의 ‘과거 서연’ 역으로 처음 거론된 이는 SM엔터테인먼트의 서현이었다. 소녀시대 해외일정과 겹친다는 이유로 SM 측에서 고사했다고 전해지는데, 캐스팅의 묘미는 이러한 변수들에 있다.
<건축학개론> 조정석
틈새를 노리는 시간차 연기부터 대사를 내뱉는 기막힌 타이밍까지. 조정석은 어떻게 해야 상황을 더 흥미롭게 빚어낼 수 있는지를 아는 배우다. <건축학개론>은 이를 여실히 증명해낸 작품. <건축학개론>을 통해 인상적인 데뷔를 알린 건 수지뿐이 아니다. 이 영화 최대 수혜자인 조정석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당시 조정석은 뮤지컬계에서는 팬을 몰고 다니는 스타였으나, TV나 영화에서는 발견이 더딘 늦깎이였다.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긴 기다림 끝에 만난 <건축학개론>에서 짜릿한 ‘잭팟’을 터뜨렸다. 영화에서 그는 납뜩이 캐릭터를 납득가게(?) 그려내며 관객을 납득시켰다. 납뜩이의 ‘연애학개론’은 납득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감초 역할 이상의 존재감. 덕분에 <건축학개론>은 더욱 풍부해 보였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류승범
2000년 인터넷 바다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영화, 스물여덟의 류승완 감독이 6500만 원을 가지고 만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다. 이 작품을 통해 류승완 감독은 독립영화계를 뒤흔들었는데, 그와 함께 발견된 배우가 있었으니 그의 동생 류승범이다. 류승완 감독이 양아치 같은 인물을 찾다가 자기 집에 ‘세상 가장 양아치 같은 얼굴’이 있음을 깨닫고 캐스팅했다는 류승범은 영화에서 문제아 상환을 건들건들 연기하며 범상치 않은 데뷔를 알렸다. 이후 류승범은 정우성과는 다른 얼굴로 청춘의 한 모습을 대변했다. 정우성이 반항과 우상의 아이콘으로서 어떤 ‘로망’을 부추겼다면, 류승범은 밉지 않은 ‘양아치스러움’과 자유를 그려나가며 20대에게 동류의식을 선사했달까. 날것 그대로의 청춘, 비릿한 청춘, 팔딱거리는 청춘. 류승범이 품은 청춘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부당거래>(2010)에서 확인할 수 있듯, 류승범은 현존하는 배우 중 양아치스러움을 가장 맛있게 소화하는 배우다.
<접속> 전도연
올해는 영화 <접속>(1997)이 개봉한 지 20주년 되는 해다. 이는 전도연 스크린 데뷔 20주년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1997년 세기말에 찾아온 <접속>은 ‘감정 과잉’이 득세하던 당시 한국 영화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동시에 전도연의 배우 인생도 흔들었다. ‘연예인’과 ‘배우’라는 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 어떤 명확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놀랍게도 대중은 이를 구분한다. 많은 연기자들이 연예인이 아닌 배우로 불리고 싶어하는 이유다. 전도연에겐 그 타이밍이 <접속>이었다. 연예인으로 받아들여지던 그녀는 <접속>을 통해 ‘배우’로 불리기 시작했고, 알다시피 지금은 연기력에 있어 그 누구도 태클을 걸 수 없는 ‘갓도연’이 됐다. 의미심장한 스크린 데뷔였다.
<용서받지 못한 자> 윤종빈
하정우가 아니다. 윤종빈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연출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에서 윤종빈은 연기‘도’ 했다. 그것도 ‘기막히게’ 했다. 윤종빈이 연기한 캐릭터는 고문관 허지훈. 본래 시나리오에 없던 캐릭터 지훈은 영화가 장편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생겼는데, 윤종빈 감독이 직접 연기하겠다고 했을 때 다들 뜯어말렸다고. 하지만 윤종빈 감독의 리딩 한 번에 반대 소리가 쏙 들어갔다고 하니 본래 연기 쪽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 결과 탄생한 명장면이 선임 태정(하정우)이 일병 지훈에게 전화 교육을 시키는 장면이다. 유들유들하게 눙치는 하정우의 액션이야 말이 필요 없고, 그에 반응하는 윤종빈의 리액션도 웃지 않고는 보기 힘들다. 해당 장면은 군필자들을 중심으로 지금도 유튜브에서 적지 않게 사랑받고 있다고. 한편 윤종빈 감독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장률 감독의 <춘몽>(2016)에서도 범상치 않은 연기를 선보였는데, 단순 부업이라 하기엔 재능이 상당하다.
<레옹> 나탈리 포트만
“Like a Virgin~” 마돈나 복장을 한 마틸다(나탈리 포트만)가 깜찍하게 춤을 출 때, 심장박동수가 빠르게 증가한 건 레옹(장 르노)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 팬들도 나탈리 포트만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겼다. 압도적으로 예뻐! 나탈리 포트만이 레옹을 촬영한 나이는 12세다. 어린 나이에도 나탈리 포트만은 기성 배우 못지않은 복잡한 내면을 그려내며 될성부른 떡잎임을 알렸다. 그리고 영화는 프랑스뿐 아니라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심상치 않은 열풍을 일으켰다. <레옹>(1994) 장면 장면은 CF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패러디됐고, 전국 미용실에서 마틸다 헤어스타일을 한 여성들이 쏟아져 나왔다. 멀티플렉스 시대 이전인 당시 <레옹>이 동원한 관객 수는 150만 명. 엄청난 숫자였다. 나탈리 포트만은 이제 ‘잘 자란 아역’의 효시로 불린다.
정시우 /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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