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이들을 위해 쓴다. ‘씨네플레이’는 ‘씨플 재개봉관’이라는 이름으로 10년 전, 20년 전 이맘때 개봉했던 영화를 소개해왔다. 이번에는 극장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재개봉 영화를 소개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메릴 스트립, 클린트 이스트우드 개봉 1995년 9월 23일 재개봉 2017년 10월 25일 상영시간 135분 등급 15세 관람가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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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메릴 스트립, 클린트 이스트우드
개봉 1995 미국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어른 영화다. 10대, 20대는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눈물의 의미를 100퍼센트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적어도 30대 중반은 돼야 이 영화의 눈물이 어떤 감정으로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 뭔가 앞뒤가 바뀐 비유이긴 하지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30~40대 이상의 <노트북>(라이언 고슬링, 레이첼 맥아담스 주연, 2004) 같은 영화다. 그렇다고 10대, 20대가 보면 재미 없는 영화는 아니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인 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 사진작가인 로버트 킨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65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 실을 사진을 찍기 위해 매디슨 카운티에 도착한다. 길을 잃은 그는 잘 정돈된 한 농가 앞에 트럭을 세우고는 길을 묻는다. 남편과 두 아이가 나흘간 일리노이주의 박람회에 참가하러 떠나고 집에 혼자 있던 프란체스카 존슨(메릴 스트립)은 예의 바른 이방인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남편과 함께 농장을 하며 한적한 삶을 살아가는 중년 여성인 프란체스카는 발길 닿는 대로 떠도는 로버트에게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처음에는 로버트에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안내해주려는 목적이었지만, 프란체스카는 점점 로버트에게 빠져든다. 로버트 또한 순수하고, 소박한 프란체스카에게 애정을 느낀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스토리만 보면 불륜을 다루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다. 젊고 아름다운 연인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너무너무 진부해서 왜 이 영화가 재개봉까지 하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2001년 <씨네21>에 ‘내 인생의 영화’라는 칼럼에 유시민 작가가 쓴 글을 봐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스토리는 진부하다.
클린트 이스트우트가 권총이 아니라 니콘 카메라를 든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기자 로버트로, 여배우는 예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뒤집은 메릴 스트립이 미국 아이오와주 시골마을 농사꾼의 아내 프란체스카로 등장해서 딱 나흘 동안 사랑하고 영원히 헤어진, 그런 좀 고리타분한 영화다.
-2001년 <씨네21> 유시민의 ‘내 인생의 영화’ 칼럼 중
이 진부한 영화는 어째서 유시민 작가의 ‘내 인생의 영화’가 됐을까. 사실 스토리의 진부함이나 고리타분함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중요하지 않다.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한 이 스토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이 일렁인다. 낯설고 매력적인 남자와의 만남, 고백, 가족에 대한 미안함, 사회적인 시선에 대한 두려움, 다시 사랑의 감정까지. 프란체스카는 수만 번 생각하고 고민한다. 흔들리는 마음은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이런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의 묘사는 원작 소설에서 이미 검증된 것이다. 1992년 출간된 원작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무려 37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서만 850만 부가 팔렸고 한국에서도 70만 부 넘게 판매됐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익숙한 스토리 속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복잡한 감정에 충실한 영화다. 메릴 스트립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 이 감정의 안내자다.
탄탄한 원작에 뛰어난 배우들이 힘을 보탰다. 특히 메릴 스트립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무려 스무 차례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에 올랐고 이 가운데 세 번의 오스카 트로피-<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79), <소피의 선택>(1982), <철의 여인>(2011)-를 가져간 이 여인은 연기의 신에 가깝다. 그녀가 연기하는 프란체스카를 보고 있으면 그저 놀랍도록 아름답다는 생각만 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훌륭한 연기를 보였다. 서부의 무법자이거나 냉혈한 형사였던 그가 사랑에 목매는 남자를 이렇게 잘 연기할 줄 몰랐다.
사랑이라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 뛰어난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가 합쳐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명장면을 만들었다. 가족이 돌아오고 일상으로 돌아온 프란체스카는 남편과 함께 식료품 가게에 들렀다. 차창 밖으로는 장대처럼 비가 쏟아진다. 길 건너편에는 빗속에 우두커니 서서 그녀를 바라보는 로버트가 있다. 비를 맞으며 차에 올라탄 프란체스카는 로버트를 발견한다. 그 짧은 순간.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시선이 오가는 그 짧은 순간.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들어낸 애절함은 다시 봐도 눈가를 촉촉하게 만든다. 로버트가 돌아서면 천둥소리가 들린다.
프란체스카의 남편이 트럭으로 돌아온다. 프란체스카는 남편이 모는 트럭에 타고 바로 앞에 있는 로버트의 트럭을 바라본다.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어도 로버트는 바로 출발하지 않는다. 깜빡이는 후미등. 바로 그 순간. 프란체스카는 차에서 내리려고 문고리를 잡는다.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하오. 단 한번도 말해본 적 없는 거요. 이렇게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단 한번만 오는 거요”라고. 프란체스카는 끝내 거절한다. 아니다. 거절한 게 아니라 로버트와 함께 떠날 용기가 없었다. 일부일처제, 결혼이라는 제도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제약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일생의 단 한번 가장 확실한 사랑을 느꼈지만, 그 사랑의 감정에 따르지 못했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금지된 사랑이 이뤄지지 않아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더 슬픈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도에 반하는 행동을 쉽게 하지 못한다. 가족을 저버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흔히 말하는 불륜을 다룬 영화다. 이 불륜은 진부하지만 절절하다. 나이 들어도 인간은 인간이다. 인간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동물이다. 동시에 인간은 제도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다. 이 간극이 만들어낸 복잡미묘함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10대, 20대가 모두 이해하기 힘들다. 프란체스카의 눈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예전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봤던 젊은이들, 지금의 어른들에게 이 영화를 다시 보길 추천한다. 참고로 이 영화는 10월 25일 재개봉한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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