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태어난 '이세계' 슈퍼히어로 콘텐츠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전성시대를 맞으면서 전 세계를 주름잡던 그 시절, 인피니티 사가가 정점을 찍던 시기에도 히어로영화가 좀처럼 박스오피스 1위를 하지 못하거나, 1위에 오르더라도 빠르게 밀려나는 나라가 있었다. 늘 히어로영화가 다른 국가만큼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 무덤이라고까지 불리던 일본 얘기다.

생각해 보면 일본에는 늘 히어로가 있었다. 화려한 연출이나 사실적인 CG, 현실과 닿아 있는 문제를 다루는 인간적인 캐릭터는 더 확장된 상상력을 기반으로 깊은 역사를 지닌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에 문화로서 존재했기 때문이다. 추측건대 일본 사람들에게 있어서 히어로영화는 새롭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여전히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주름잡는 영화들보다, 애니메이션 극장판과 실사영화가 더 득세하는 일본, 재미있는 소식들이 조금씩 들려오고 있다. 히어로 캐릭터를 기반으로 그들의 논법에 따라 풀어낸 새로운 '애니메이션'들이다.

 

이세계 수어사이드 스쿼드

2023년 하반기 제작 확정에 이어 예고편을 공개한 <이세계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올 7월 방영 예정이다. 이세계 전이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평범한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조커와 할리퀸이 주인공이라는 점. 이들 외에도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멤버인 데드샷과 피스메이커, 킹 샤크, 클레이페이스가 등장을 확정했다. 이 멤버라면, 늘 그래왔듯 전이된 세계에서도 조용히 지내지는 않을 게 확실해 보인다.

소위 '아니메' 풍으로 그려진 새로운 조커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조커의 지난날 이미지와 상당 부분 닮아 있기도 하지만, 어쩐지 일본 애니메이션에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킨을 씌운 듯한 느낌도 든다. 캐릭터 디자인은 「가정교사 히트맨」 작가 아마노 아키라가 맡았고, 워너브러더스 재팬과 현지 스튜디오 WIT(<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의 제작사)가 협업했다.

꾸준히 공개하고 있는 정보들을 보면 위의 수어사이드 스쿼드 주역뿐만 아니라 릭 플래그, 카타나, 아만다 월러 등 원년 멤버들도 출연하는 모양. 이 애니메이션만의 오리지널 캐릭터들의 면면을 보면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전개도 펼쳐질 듯보인다. 히어로물로서는 무척 낯설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으로선 당연하게도 출연진은 일본 성우들로 채워졌다. 7월 방영 예정.

 

닌자 배트맨

생각해 보면 배트맨의 설정이나 세계관은 일본 만화에서 충분히 다뤄질 법한 것들로 가득하다. 조실부모하고(그것도 눈앞에서 살해당한) 외롭지만 부유하게 자라난 남자가 범죄로 얼룩진 도시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는 영웅 서사 말이다. 곁에는 여러 가지 형태로 곁을 지켜주는 동료들이 있고, 필요에 따라 팀으로 싸우기도 한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으로 다시금 쓰인 배트맨은 닌자가 되어 있다. 모종의 사유로 전국시대 일본에 당도한 배트맨은 여전히 그의 숙적 조커와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일본도를 휘두르는 배트맨의 모습은 사뭇 새로우면서도 어쩐지 익숙한데, 다양한 애니메이션과 콘텐츠를 통해 접했던 무사 캐릭터의 모습과 배트맨이 콜라보레이션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배트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조커는 막부의 수장이 되어 열도에 야욕을 퍼뜨리고 있는데, 재밌는 건 배트맨 하면 생각나는 그의 전용 기어들이 전국시대의 일본에서는 쓸모 없어진다는 것이다. 덕분에 피지컬에 치중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데, 전국시대 특유의 무장을 한 배트맨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만화적 상상력 속에서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 어찌 보면 과하게 만화스럽지만, 그래서 더 독특한 맛도 있는 애니메이션. 방영 후 히사 마사토 작가가 만화판을 연재하기도 했는데, 2020년 성운상(일본 장르 문학상) 코믹 부문에서 수상했다.

 

재패니스 스파이더맨…스파이다만?

대부분의 히어로 캐릭터들이 일본 시장에서는 그리 힘을 못 쓰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스파이더맨만큼은 인기 콘텐츠도 하나 갖고 있을 만큼 비교적 잘 알려진 캐릭터다. 1978년에 방영된 토에이사의 특촬물 <스파이더맨> 덕분인데, 마블의 사원이었던 진 펠츠가 당시 일본에 히어로코믹스가 보급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다.

진 펠츠가 처음에 기획했던 건 마블 코믹스의 일본 연재였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우연히 본 특촬물(주: 특수 촬영물의 준말, 실제 코스튬을 착용한 배우들이 연기하는 형태의 일본 특유 슈퍼히어로물. 가면라이더, 파워레인저 등이 대표적)을 보고 착안해낸 작품이 바로 <스파이더맨> 특촬판이다. 1978년의 특촬물인 만큼 2024년의 CG 수준과 비교할 데는 못 되겠지만, 1970년대 당시로서는 스파이더맨 특유의 액션이 호평을 받았다. 다수의 특수촬영 액션으로 다져진 노하우를 한껏 발휘한 덕이었다고.

레오팔돈이라는 거대로봇이 등장하는 게 특징이다. 스파이더맨과 로봇은 영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일본의 완구 제조사인 반다이로서는 맨몸으로 싸우는 스파이더맨만 가지고는 작품 기반 상품을 기획하기 어려워서였다고 한다. 오래된 작품이고, 원작 스파이더맨의 설정과는 꽤 다른데다 대형 로봇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느낌이 상당히 다른 편이지만 매니아층이 나름 있어서 최근 스파이더버스에도 '재패니스 스파이더맨'이 등장한 적이 있다.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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