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워라밸'이다. 이미 지난해 유행처럼 직장인들을 스쳐간 개념이지만 에디터도 뒤늦게서야 일과 삶 사이의 균형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별 대단한 계획은 없다.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스트레스 덜 받(으려고 노력하)는 것 정도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한동안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 모델들을 워너비로 삼아 체지방을 줄이고 근육을 키우는 운동에 온 신경을 쏟았다면 (매사 용두사미, 유두무미인 탓에) 최근엔 수영으로 관심을 살짝 돌렸다. 이런저런 이유로 몹시 물을 두려워하는 에디터는 약점 중 한 가지를 적극 극복해보고자 수영을 시작했다. 재작년, 3개월의 강습을 받는 동안 물에 얼굴도 제대로 담그지 못하는 형편없는 수준에 머물렀으나 이번엔 조금 다르다. 새로운 센터로 옮겨서 강습을 받기를 어언 3주차. 드디어 물에는 뜬다. 팔다리를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
뭐든지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에디터는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언제나 끝은 미약하나 시작은 창대하다. 수영을 시작했으니 응당 수영복을 사야 한다. 일단 강습용 수영복은 지나가다 백화점에서 예뻐 보이는 걸로 아무거나 샀다. 강습 첫날부터 형광 오렌지색 수영복을 입고 가 신입 회원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으나 쫙쫙 몹시도 잘 늘어나는 그 수영복이 '수영인'들이 즐겨 입는 수영복이 아니란 것은 나중에 알았다. 이제 어떤 수영복이 근사한지 열심히 검색을 한다. '멋진 수영인'들은 내구성이 좋게끔 100% 폴리에스테르로 제작된 '탄탄이' 수영복 또는 해외 브랜드의 제품을 직구해 입는다는 걸 또 알게 됐다.
사무실에 굉장한 실력의 수영전도사 선배가 있다. (현재 에디터에겐 구전 설화 속 영물처럼 느껴지는) '접영'까지 마스터했다는 선배를 최근 굉장히 우러러 보게 됐다. 오래 전 어느 날 에디터가 수영에 관심 없던 시절, 그 선배가 '멋진 수영복' 사진을 여럿 보여준 적이 있다. 그때 에디터는 수영을 오래 하면 할수록 수영복은 더 작아지고, 더 화려해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유명 수영복들의 무늬는 어째서 이토록 현란한 것인가 의문이었다. 이제는 확실히 안다. 화려한 패턴의 '멋진 수영복'은 물 속에서 다 똑같이 마네킹처럼 보이는 살굿빛 인체를 개성 있고 아름답게 보이게 만든다는 것을.
서론이 지나치게 길었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이제 막 수영을 시작한 에디터의 마음은 온통 수영으로 가득하다는 거다. 강습 첫날 이후로 4일 연속 수영 마스터가 되는 꿈을 꾸었고, 강습이 없는 날에도 틈틈이 (물에 둥둥 떠 보기 위해) 킥판을 들고 자유수영을 간다. '멋진 수영복'의 개념을 확립한 뒤에는 바로 해외 모 사이트에서 수영복 세 벌과 실리콘 수모 한 개를, 국내 모 사이트에서는 여름 휴가를 위한 요란한 패턴의 비키니를 한 벌 구입했다. 늘지 않는 실력이 아직 부끄러워서 강습 땐 여전히 잘 늘어나는 형광 오렌지색 수영복을 입고 다니지만 언젠가 나의 수영 실력이 쑥쑥 늘게 되면 내 수영복도 시시때때로 바뀔 것이다. 그때를 위해 요즘 일을 하면서조차 수영복을 눈여겨보고 있다. 소개한다. 탐나는 영화 속 '멋진 수영복'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헤일, 시저!>(2016)에서 디애나(스칼렛 요한슨)가 입고 나온 '인어공주룩'이다. 사실 수영복이 아니다. 인어공주를 연상시키는 머메이드 라인 드레스다. 안정감 있는 홀터넥 디자인에 비늘 무늬, 화려하게 맑은 초록색과 금빛 비즈의 조합이 아름다웠다. 스칼렛 요한슨의 금발, 레드립과도 몹시도 우아하게 어울렸다. (물론 에디터는 수영장에 갈 땐 화장을 하지 않고 꼭 수모를 쓴다!) <헤일, 시저!>의 디애나는 <백만달러 인어>(1952)의 아네트(에스더 윌리엄스)를 오마주한 캐릭터다. 아네트의 의상은 불타는 듯 붉은 색이라 수영복이라기보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복 같다.
'할리우드의 인어공주'로 불린 에스더 윌리엄스는 실제 수영선수로 활동한 바도 있다. 1940년 하계올림픽 출전권까지 따낸 선수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올림픽 자체가 열리지 못했다. 출연작 중 <이지 투 웨드>(1946), <넵툰의 딸>(1949), <이지 투 러브>(1953), <데인저러스 웬 웻>(1953) 등 유독 수영복을 입고 등장하거나 수영 장면이 포함된 영화가 많다.
<백만달러 인어>나 <넵툰의 딸>에서의 수영 장면들은 아쿠아쇼를 보는 듯 박진감이 넘치면서 신나고 대단히 아름답다. 물 속에서 눈 뜨고, 연기하고, 춤추는 게 저렇게나 가능하다니 그저 놀랍다. <넵툰의 딸>에서 금빛 수영복을 입고 물 속에서 춤추는 에스더 윌리엄스는 정말 굉장하다. 에디터의 워너비 수영복 중에도 번쩍번쩍 메탈릭한 광택이 도는 수영복이 있다. 수영을 잘하게 되면 꼭 구입할 예정이다. 에스더 윌리엄스의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멋진 물고기처럼은 보일 것이다.
<소울 서퍼>(2011)의 베서니(안나소피아 롭)와 친구들은 하와이 해변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바다와 서핑을 벗삼아 어른이 되어간다.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고난이 거세게 베서니를 압박해와도 서핑에 대한 열정과 애정으로 고난을 극복한다. 베서니의 하와이 바다를 닮은 푸른 비키니는 해변 소녀의 천진하고 건강한 미소와도 잘 어울린다. 감흥이 조금 다르지만 <스프링 브레이커스>(2012)에서 봄방학을 맞아 미친 듯한 일탈을 즐기는 십대 소녀들이 입었던 네온 빛깔 비키니도 떠오른다. 미국 거리에 널린 스파 매장에서 대충 튀고 예쁜 것으로 골라 입은 듯하다. 스니커즈와도 조화가 좋다. 캔디색의 패턴 없는 비키니는 다양한 끈 모양이 재미있다. ‘멋진 수영복’을 검색하다 보니 등판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도 몹시 중요함을 알았다.
예전의 영화들을 보면 복고풍 디자인의 아름다운 수영복을 만날 수 있다. <노트북>(2004)에서 앨리(레이첼 맥아담스)가 입은 와인색 레트로 스타일 수영복과 동일한 색상에 헤어 반다나처럼 생긴 수모 세트가 무척 귀여웠다. 사랑에 빠진 앨리와 ‘인간 레몬’ 레이첼 맥아담스의 사랑스러움이 집약된 디자인이다. <브루클린>(2015)의 에일리스(시얼샤 로넌)와 <해변의 폴린느>(1983)의 폴린느(아만다 랑글렛)가 입고 나오는 빈티지 수영복들도 대단히 귀엽다. 에릭 로메르의 또 다른 영화 <여름 이야기>(1996)에서도 아만다 랑글렛은 몹시 귀여운 수영복을 착용한다.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1971)의 본드걸 티파니(질 세인트 존)는 거의 내내 비키니 차림으로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긴팔 수영복이 독특하다. 요즘 입어도 근사할 것 같다. <어톤먼트>(2007)에서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가 입은 백색 원피스 수영복은 무척 고급스럽다. 세실리아가 겪고 있는 성적 억압을 반영하는 듯한 결벽한 백색과 과감한 컷아웃이 상반된 매력을 뽐낸다.
'올 화이트 원피스 수영복'하면 <상류사회>(1957)의 트레이시(그레이스 켈리)가 빠질 수 없다. 잘록한 허리가 강조되고, 단추 디자인과 옆트임이 중국의 치파오, 베트남의 아오자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트레이시의 수영복과 몹시 흡사한 디자인의 백색 홀터넥 드레스를 3년 뒤 마릴린 먼로가 <7년 만의 외출>(1955)에서 입기도 했다. 두 의상이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 에디터는 잘 모른다. 그저 생각났을 뿐이다. 다만 트레이시가 입고 나온 수영복이 당시 굉장히 화제였으며 이후 출시된 수영복 유행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사실이다.
<지난 여름 갑자기>(1959)에서 캐서린(엘리자베스 테일러)이 입은 흰색 원피스 수영복도 있다. 흑백영화여도 수영복이 흰색이란 건 알아보기 쉽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해변 장면은 섹시하고 미스터리한 영화의 무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에서 카렌(데보라 카)이 입은 수영복도 트레이시와 같은 홀터넥이지만 색상은 올 블랙이다. 컬러 스틸은 없지만 포스터에 검정색으로 채색돼 있으니 검정색이 맞는 것 같다. 역시 검정색이 가장 섹시하다. 카렌이 남편의 후임인 밀튼 워든(버트 랭카스터)과 해변에서 밀회를 즐기며 나누는 키스 장면은 영화사상 손꼽히는 키스신이기도 하다.
<언더 워터>(2016)에서 낸시(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입은 래쉬가드도 인상적이다. 서핑용 스윔수트에서 유래한 래쉬가드는 서핑 중 몸에 모래가 쓸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자외선 차단과 체온 유지를 위해서도 입는다. 낸시가 래쉬가드를 입고 등장하는 게 그저 멋부림용이 아니란 걸 알았다. <베이워치: SOS 해상구조대>(2017)는 수상 안전 요원의 숭고한 희생 정신이 돋보이기는커녕 그냥 낄낄거리며 보기 좋은 섹시 코미디다. 드웨인 존슨, 잭 에프론, 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 켈리 로르바흐는 운동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근육을 뽐내며 치열하게 수영복 자태 겨루기를 한다.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수영복을 입기 위해선 체형 관리를 선행하자는 교훈과 운동 자극을 동시에 주는 영화다.
<라이프가드>(2013)의 리(크리스틴 벨)도 수상 안전 요원이다. 자아를 찾는 삼십대의 성장드라마라는 점에서 남의 얘기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리가 자리를 지키는 조용한 수영장의 풍경을 보노라면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아무도 없는 그 수영장에서 눈치 안 보고 혼자 킥판 들고 수영 연습을 하고 싶어졌다.
오늘은 수영 강습이 있는 날이다. 얼른 멋진 수영인이 되어 멋진 수영복을 입고 싶다.
P.S.
에디터가 몹시 사랑하는 시리즈 <패딩턴 2>가 곧 개봉한다. <패딩턴 2>에서 브라운 부인(샐리 호킨스)은 수영을 시작한다. 브라운 부인이 입은 전신 수영복도 평소 그의 패션만큼이나 근사했지만 아쉽게도 스틸이 공개되지 않아 첨부하지 못했다. 샐리 호킨스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서도 수영(잠수?)을 한다. 두 영화에서 모두 샐리 호킨스의 물 속 장면은 대단히 멋지다. 역시 수영을 배워야 한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윤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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