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PICK!' 연니버스를 이끄는 여성 배우들

연상호의 작품에는 꼭 배우를 궁금하게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대중에게 낯선 배우가 강렬한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기도 하고, 이미 업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배우가 의외의 역할로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의 독특한 이면에 대해 주목하는 연상호 감독의 영화세계를 구축하는 든든한 기둥으로 존재한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에서 눈에 띄는 순간을 선사했던 여성 배우 5인을 갈무리했다. 연상호의 망가진 세계에서 빛을 내는 이들은 '연상호의 여자들'이다.


<지옥> 김신록 
 

〈지옥〉 김신록
〈지옥〉 김신록


김신록의 발견이다. <지옥>은 김신록의 세계를 무대에서 브라운관으로 확장시켰다.

2004년 연극 <서바이벌 캘린더>로 데뷔한 김신록은 십여 년간 무대를 지켜왔다. 그러던 그가 tvN 드라마 <방법>(2020)으로 연상호 감독과 연을 맺게 된다. 당시 드라마 <방법>의 극본을 맡은 연상호는 극 중 무당 석희 역을 맡아 ‘미친 연기력’을 선보인 김신록에게 꽂혔다. 이후 차기작 넷플릭스 <지옥>의 박정자 역에 점찍었다. 연상호 감독은 김신록에 대해 “매우 체계적이고 자신만의 원칙하에 연기를 펼치는 배우”라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고 체계적인 방식을 따른다”고 전했다.
 

<지옥>의 박정자는 두 아이를 둔 평범한 엄마이지만 고지를 받은 후 신흥 종교 새진리회에 공개 시연을 당하는 인물이다. 시청자들은 박정자의 시연 과정을 통해 새진리회, 소도, 화살촉 등 <지옥> 내 집단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들의 세력 다툼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박정자는 뜻밖의 부활로 시즌 2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서사의 촉발제로서 박정자를 맡은 배우 김신록은 적은 분량 내에서 확실한 인상을 남겨야 했다. 그는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어머니의 책임감과 죽음을 목전에 둔 한 인간의 불안 등을 다양한 층위로 쌓아 올리며 '배우 김신록'이라는 이름을 선명히 남겼다.


 <지옥2> 문근영
 

〈지옥2〉 문근영
〈지옥2〉 문근영


문근영의 복귀가 이런 모습일지는 상상도 못했다. 원조 국민 여동생이 얼굴에 두껍게 색을 올리고 희번득한 눈빛을 보내는 광신도로 돌아왔다.

문근영은 지난 3년간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2017년 급성구획증후군 진단을 받고 오랜 투병 생활을 했다. 치료 후에도 감독 활동에 더 공을 들이던 그런 그가 연상호 감독의 신작 <지옥2>에서 화살촉의 선동가 햇살반 선생님 오지원 역으로 복귀했다. 누군가는 문근영을 드라마 <가을동화>, 영화 <장화, 홍련>의 귀여운 아역 배우로 기억할 수도, 누군가는 드라마 <바람의 화원>, <신데렐라 언니>의 연기파 배우로 기억할 수 있지만 2024년 <지옥2>로 돌아온 문근영은 그간 없던 얼굴을 드러냈다. 연상호 감독은 배우 문근영에 대해 “연기 거장”이라며 “고요한 모습으로 현장에 있다가 준비가 되면 에너지를 폭발시킨다”고 전했다.

<지옥2> 속 문근영이 빛나는 이유는 독특한 캐릭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평번한 인간이 광신도로 변모하는 과정을 몇 개의 샷 안에서 순간의 극적 표현으로 설명한다. <지옥2>는 구체적으로 햇살반 선생님 오지원에 대한 설명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청자가 지원의 변화를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문근영의 몰입력 있는 연기 덕분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 이정현 
 

〈기생수: 더 그레이〉 이정현
〈기생수: 더 그레이〉 이정현


연상호는 <기생수: 더 그레이>(이하 <기생수>)에 이정현을 모시기 위해 그의 임신 계획을 같이했다고 한다. 그만큼 연상호에게 배우 이정현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영화 <반도>를 통해 한차례 호흡을 맞춘 연상호와 이정현이 넷플릭스 <기생수>로 다시 만났다. <기생수>의 원작은 1988년 인기리에 연재된 이와아키 히토시 작가의 만화 「기생수」로 이미 일본에서 애니메이션과 영화 등으로 제작되어 사랑을 받았다. 연상호 감독은 ‘기생 생물이 한국에 떨어졌다’는 상상을 시작으로 원작의 세계관을 확장했다.

이정현은 기생생물을 전담하여 처치하는 ‘더 그레이’의 팀장 준경 역을 맡았다. 이정현은 기생생물에게 남편을 잃고 그에 복수하기 위해 온몸을 던진다. 연상호 감독은 부러 작은 체구의 이정현에게 준경을 맡겨 개개인보다 조직의 힘이 더 무섭다는 것을 보이고자 했다고 한다.

한편, 이정현은 <기생수>로 인해 의외의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과장된 어투와 행동이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그간 영화 <풀잎>,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등으로 청룡상, 대종 신인상 등에서 연기상을 수상하며 인정받았던 이정현이기에 <기생수>의 연기력 논란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이에 대해 연상호 감독은 준경이라는 인물이 ‘가짜 광기로 가면을 감추고 있는 인물’이라며 ‘이정현 배우가 잘 표현해 줬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정이> 김현주 
 

〈정이〉 김현주
〈정이〉 김현주


배우 김현주는 대표적인 연상호 사단이다. <지옥> 시리즈, <정이>, <선산>까지 연달아 함께하며 그가 연상호의 보석함에 있음을 증명했다.

<정이>는 전설적인 용병 정이(김현주)가 식물인간이 된 후 그의 뇌를 복제해 AI 전투 용병이 만들어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는 공개 직후 글로벌 1위를 차지했고 사흘 만에 1930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김현주는 <정이>의 과감한 액션신을 소화하기 위해 두터운 몸을 만들며 세 달 가까이 액션 스쿨에서 트레이닝을 받았다. 김현주는 ‘액션 영화에 자신을 캐스팅한 연상호 감독에 의아했다’며 겸손을 보였지만 그는 마치 본 투 비 액션스타인 듯 화려한 액션신을 안정적으로 소화해냈다. 연상호 감독은 김현주를 ‘뮤즈가 아닌 영화적 동기’라며 “매번 새롭고 놀랍다”고 평했다. 


<반도> 이레 
 

〈반도〉 이레
〈반도〉 이레


아역 배우 출신 이레가 어엿한 배우로 대중들에게 인식된 것은 연상호 감독의 <반도>에서부터 일 것이다. <반도>는 <부산행>의 시점에서 4년 후 폐허가 된 땅에서 좀비와 사투를 벌이는 생존자들의 이야기이다. 그중 이레는 살기 위해 운전을 하는 아이 준이 역을 맡았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에 마동석이 있었다면 <반도>에는 이레가 있다”며 이레가 맡은 캐릭터가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지 알렸다.

아포칼립스물에서 ‘소녀’는 주로 민폐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반도>는 달랐다. 이레가 맡은 준이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좀비와 맞서 싸우는 인물로 성별, 나이의 선입견을 뛰어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는 이레의 중성적인 매력에 상당 부분 기인한 것으로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해냈다.

배우 이레는 2012년 드라마 <굿바이 마눌>로 데뷔해 벌써 12년 차 배우이다. 영화 <소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등에서 어린 나이에도 당당하게 자신의 연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천재 아역’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최근에는 연상호 감독과의 또 한 번의 합을 맞춘 넷플릭스 <지옥2>에서 그릇된 신앙으로 광기에 사로잡히는 말기 암 환자 진희정 역을 맡아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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