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로렌스가 스파이로 돌아왔다. 최고 흥행작 '헝거 게임' 시리즈를 전담하다시피 한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의 신작 <레드 스패로>에서 러시아인 스파이 도미니카를 연기했다. 볼쇼이 최고의 발레리나였던 그녀는 부상으로 무대를 잃어버리고, 병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스파이가 되는 길을 택한다. 로렌스와 더불어 조엘 에저튼,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제레미 아이언스, 샬롯 램플링 등이 스파이 영화 특유의 스산한 공기를 한껏 불어넣었다. 영국 런던에서 제니퍼 로렌스, 조엘 에저튼,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그리고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을 만나 <레드 스패로>에 대해 물었다.
관능과 지능 모두 갖춘 스파이
'도미니카'
제니퍼 로렌스
<레드 스패로>는 전직 CIA 요원 제이슨 매튜스가 쓴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제니퍼 로렌스는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의 추천으로 이 소설을 알게 됐다. 전직 요원이 스파이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인간적인 면모가 제대로 그려졌다는 점에 매료됐다"고 한다. 제니퍼 로렌스는 액션과 스릴러의 색채가 두드러진 '헝거 게임' 시리즈에서도 무엇보다 제니퍼 로렌스가 구현한 주인공 캣니스의 '감정'을 설득시켜 영화를 성공으로 이끈 바 있다.
<레드 스패로>는 '헝거 게임' 시리즈(<캣칭 파이어>, <모킹 제이> 1부-2부)에 이어, 제니퍼 로렌스와 프랜시스 로렌스가 다시 만난 작품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연도 연이지만 "프랜시스 없이는 <레드 스패로> 영화화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감독에 대한 믿음이 앞선 결정이었다. "이런 어두운 이야기를 우아하게 연출할 감독은 그밖에 없을" 거라는 신뢰였다. 인터뷰 내내 그녀는 프랜시스 로렌스를 'director'가 아닌 'artist'라고 칭했다.
"생존자." 도미니카에 대한 제니퍼 로렌스의 첫인상이다. 러시아 최고의 발레리나가 러시아 정부 소속의 스파이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도미니카의 의지는 허용되지 않는다. 동료의 질투로 다리가 망가져 발레를 잃었고 어머니를 빌미로 한 러시아 정보국 요원인 삼촌의 (협박에 가까운) 제안으로 스파이 세계에 발을 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다. "뛰어난 지능을 활용해 자신을 조종하려는 세력들과 맞서 자유를 되찾"기 위해 애쓴다. 로렌스는 "전혀 다른 공간과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인 도미니카를 헤아리는" 방향을 우선에 두고 캐릭터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도미니카의 건조한 얼굴은 제니퍼 로렌스에게서 이제껏 보지 못한 표정들로 가득하다. '스패로 학교'에서 유혹의 기술을 익힌 도미니카의 관능적인 에너지만큼이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CIA요원
'네이트'
조엘 에저튼
<레드 스패로>의 오프닝은 도미니카와 CIA 요원 네이트의 '좌절'이 교차된다. 도미니카가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다가 다리를 다치고, 네이트는 임무를 전달받아 내내 불안한 채로 이를 수행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만다. 대개 스파이물에서의 CIA 요원은 주인공인 스파이를 압도할 정도로의 민첩함과 명민함을 보여주지만, 네이트는 어딘가 서툴어 보인다. 조엘 에저튼 역시 그를 두고 "스파이스럽긴 하지만 어딘가 살짝 루저 같은 데가 있다"고 말한다. "좋은 사람의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에 대해서는 그리 능숙하지 못하다"고 상정한 채 그 역할에 임했다.
네이트의 존재는 임무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보다 그가 왜 절룩거리는가에 초점을 맞춰 봐야 한다. <레드 스패로> 속 조엘 에저튼이 흥미로운 건, 그의 지난 캐릭터들이 에저튼의 철옹성 같은 무표정 아래 감정을 꾹꾹 감췄던 경우가 많았던 데에 반해, 네이트는 좀처럼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는 점이다. 에저튼은 "총이나 마약을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인 양" 생각하면서 네이트를 구현하고자 했다. 원작자 제이슨 매튜스에게 들었던 스파이에 대한 조언 중 하나도 "그들은 더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스파이는 어떻게 자고, 쉬고, 편안해 할까"까지 상상해본 에저튼은, 네이트의 인내와 그럼에도 그걸 기어코 비집고 새어 나오는 불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다만 불안이 곧 진실을 나타낼 거라고 속단해선 안된다. 에저튼은 네이트를 고민하면서 "정직함이야 말로 기만의 가장 훌륭한 전략"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불안은 도미니카와 네이트 사이의 감정을 단정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방식이 스릴러와 로맨스가 결합된 스파이 영화 <레드 스패로>의 별격을 드러난다.
젠틀함과 비열함 사이
'반야'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마티아스 쇼에나에츠는 도미니카를 스파이의 세계에 처넣는 삼촌 반야 역을 맡았다. "지금껏 스파이 영화에 출연해본 적이 없어서 꼭 한번 참여해보고 싶었다"고. 그에게 스파이 영화는 "복잡하고, 모호하고, 불가해한 캐릭터를 만들어 스크린에 투영시킬 수 있는" 창구였기 때문에 <레드 스패로> 출연에 더 큰 관심이 쏠렸다.
네이트를 뒤쫓기 위해서 조카 도미니카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쇼에나에츠의 반야는 <레드 스패로>를 대표하는 악역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여느 악역들처럼 못된 표정이나 행동을 던지는 식의 캐릭터는 아니다. 어떤 역경과 한계를 이겨내고 사랑을 놓지 않는 로맨스의 주인공을 연기하면서도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법이 없었던 쇼에나에츠의 존재는 여전하다. '악역'이라는 에디터의 두루뭉술한 표현에 "젠틀한 야만인"이라고 콕 짚어 말하는 배우답게, 그는 반야의 모호하게 보이는 악함을 러닝타임 내내 선보이며 <레드 스패로>의 또 다른 긴장을 더한다.
아름다운 이미지로 담아낸
냉전의 공기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
이름난 뮤직비디오 감독이었던 프랜시스 로렌스는 <콘스탄틴>으로 영화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나는 전설이다>, '헝거 게임' 2,3,4편 등 주로 '판타지'와 '드라마'가 결합된 세계를 구현하는 영화들을 발표해왔다. "도미나카의 캐릭터를 비롯한 스파이 세계 속 인간적인 면모"에 매료돼 작업을 시작한<레드 스패로>는, 판타지를 쪽 빼고 드라마를 한껏 집중했다. 여느 스파이 영화처럼 긴장을 폭발적으로 응축하진 않지만, 인물들의 감정을 밟아가면서 관객들의 긴장을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움켜쥔다.
긴장보다 감정이 앞서는 스파이 영화를 완성하는 데엔 오랜 파트너 제니퍼 로렌스의 공이 지대했다. 타의에 의해 궁지에 몰린 인물이라는 점에서 '헝거 게임' 속 캣니스와 <레드 스패로>의 도미니카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그들이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완전히 다른데, 그녀는 그 차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걸 카메라 앞에 완벽하게 보여줬다. "사람의 감정을 이해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시하는 제니퍼 로렌스의 캐릭터 접근이 감정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힘든 스파이 영화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한 셈이다. 한편 감독은 도미니카의 강인하고 용감한 모습이 정말 멋지다고 덧붙였다.
촬영 스타일은 <레드 스패로>와 '헝거 게임' 시리즈 사이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다. SF 영화의 '독특함'에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달리, <레드 스패로>는 "컬러, 배치, 구도 등 모두 다른 스타일"을 적용해 을씨년스러운 냉전 시대의 분위기를 구축했다. 특히 '스패로 학교'에서 주로 나타나는, 정확히 계산된 듯 프레임을 구성하는 재능은 그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임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프랜시스 로렌스 스스로도 "60년대 사회주의의 기운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부다페스트의 풍경과 촬영이 조합이 정말 아름답다"고 자부한다. <나는 전설이다> 이후 협업을 이어오고 있는 제임스 하워드 뉴튼이 만든 스코어는 <레드 스패로>의 우아함을 극대화한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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