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이들을 위해 쓴다. ‘씨네플레이’는 ‘씨플 재개봉관’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봉하면 당장 보러 갈 영화, 실제로 재개봉하는 영화들을 소개해왔다. 이번에 만나볼 영화는 10년 전, 2008년 3월에 개봉한 <데어 윌 비 블러드>다.
데어 윌 비 블러드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폴 다노 개봉 2008년 3월 6일 상영시간 158분 등급 15세 관람가
- 데어 윌 비 블러드
-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폴 다노
개봉 2007 미국
- 팬텀 스레드
-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빅키 크리엡스
개봉 2017 미국
10년 간극의 평행이론?
어딘가 비슷하다. 10년 전, 2008년 3월.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개봉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했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주연을 맡았다. 음악은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가 맡았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남우주연상, 각색상, 편집상, 미술상, 음향효과상 후보에 올랐다. 10년이 지난 지금, 2018년 3월. <팬텀 스레드>가 개봉했다. 역시 폴 토마스 앤더슨이 연출했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주연을 맡았다.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이 러닝타임 내내 흐른다. <팬텀 스레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 의상상 후보에 올랐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3월은 오스카 트로피의 후광을 보려는 영화가 각축전을 벌이는 시기다. 다르게 말하자면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후보에 오른 훌륭한 영화들이 미국보다 다소 늦게 국내에 개봉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폴 토마스 앤더슨, 다니엘 데이 루이스, 조니 그린우드의 협업으로 만든 <데어 윌 비 블러드>와 <팬텀 스레드>가 10년 세월의 간극을 두고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것을 계기로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다시 봤다.
검은 황금을 위한 끝없는 욕망
광기. <데어 윌 비 블러드>를 가장 간단하게 정의하는 단어다. 무엇에 대한 광기인가. 석유와 신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연기한 다니엘 플레인뷰는 석유 사업가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황무지에서 그는 석유를 캐낸다. 폴 다노가 연기하는 일라이 선데이는 과격한 종교단체의 수장이다. 플레인뷰에게 석유가 매장된 가족의 농장을 팔고 그 돈으로 교단을 키우려 한다.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석유와 신의 다른 말은 곧 돈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우연히 업튼 싱클레어의 1927년 소설 <오일!>을 보게 된다. 표지에 웅장하게 박힌 빨간 글자의 제목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아메리칸 리얼리즘 작가로 불리는 업튼 싱클레어는 <오일!>에서 석유 재벌 에드워드 도헤니 등의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아 만들어낸 아놀드 로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은 초반 150페이지 가량을 영화의 원작으로 삼았다. 석유 재벌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들이 재벌이 되기 전의 상황이 그를 매혹시켰다. 그 과정은 아비규환이었다. 금광을 캐던 시대, 다른 한쪽에서 검은 황금을 노리던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데어 윌 비 블러드>의 한 장면이다. 일라이의 선데이 목장과 주변 땅을 교묘한 방법으로 싼값에 사들인 플레인뷰는 양아들 H.W.에게 자신의 사업 구상을 말한다. 송유관을 만들고 유니언 석유사와 계약을 맺고…. 그러고는 "무슨 말인지 아냐"고 묻는다. 어린 H.W.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다고 하면서 묻는다. "석유가 나오면 선데이 가족에게 얼마나 줄거냐"고. 플레인뷰는 단호하게 말한다. “선데이 가족에게 석유값은 안 줄 거야.”
미국의 신화 혹은 묵시록
돈을 향한 집요함으로 가득한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아메리칸 드림의 또 다른 본질이다. 어쩌면 미국판 신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 신화는 공간적 배경이 같은, 정의를 심판하는 보안관 혹은 카우보이와 은행강도 악당이 등장하는 서부극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다. 소설가 김애란은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개봉했던 당시 영화주간지 <씨네21>에 기고한 글에서 “재밌는 점은, (<데어 윌 비 블러드>가) 인위적인 아메리카 <일리아드>라 할 수 있는 카우보이 신화를, 신화적 틀 안에서 다시 발가벗기고 있다는 거다”라고 썼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미국 개척시대 신화의 땅, 서부에서 ‘묵시록’을 썼다.
조니 그린우드의 음울한 음악이 묵시록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첫 장면으로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검은 바탕의 화면에 하얀 제목이 뜨고 사라지면 잠시 검은 화면이 가득 찬다. 불길한 사운드가 점점 불륨을 높이고 세 개의 봉우리가 있는 황무지의 풍경이 보인다. 그곳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지하 은광에서 플레인뷰가 곡괭이질을 하고 있다. 약 10여 분간 아무런 대사 없이 플레인뷰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 <데어 윌 비 블러드>의 플레인뷰처럼 비관적이고 종말론적인 인간이라고 말하는 폴 토마스 앤더슨은 아무 것도 없을 것 같던 그 황무지에 검은 황금 석유가 있었고, 결국에는 ‘검은 피’가 있었음을 말한다.
탐욕의 전쟁, 그 출발점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본 몇몇 평론가들은 100여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피의 역사가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이 중동에서 벌인 전쟁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대립했던 자본가과 성직자가 중동 전쟁에서는 손을 맞잡다는 데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공화당이 주축이 된 부시 행정부는 석유로 가득한 이교도의 나라를 침공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이라크 전쟁과 자본주의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는 것에 대해 답했다. “이건 마치 타이타닉 같다. 타이타닉이 가라앉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왜, 어떻게’ 가라앉았는지는 모른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영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중동 사막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언급하지 않지만 그 전쟁이 ‘왜, 어떻게,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보여준 것과 다름 없다. 100여 년이 흘렀어도 미국 자본주의의 근본 속성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쾌하지만 좋은 경험
석유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본질을 보여준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결코 쉬운 영화가 아니다. 평론가들이나 좋아할 만한 영화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어떨 땐 무서울 정도다. 원래 일라이 선데이를 연기했던 켈 오닐이라는 배우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를 보고는 무서워서 도망간 건 유명한 일화다. 그만큼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완벽한 연기를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데어 윌 비 블러드>와 <팬텀 스레드>만 놓고 봐도 도무지 한 사람이 연기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두 영화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배우가 아닌 그냥 20세기 초반 미국의 석유 사업자와 1950년대 영국의 의상 디자이너일 뿐이다.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은 기분이 나쁠 지경이다. 그만큼 영화의 광기 어린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다고 볼 수도 있다. 폴 토마스 앤더슨도 인정했다. “확실히 지금까지 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어둡긴 하다. 하지만 난 그게 좋다. 이번엔 그게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데어 윌 비 블러드>가 일종의 익숙한 영역(comfort zone)을 넘어선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건 명백히 좋은 경험이었다.”
익숙함을 넘어선 영역. 2시간 38분이나 되는 긴 시간을 투자해 이 불쾌한 광기의 영화를 본다는 건 분명 색다른 경험이다. 혹시나 이 포스트를 통해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보기로 마음먹었다면 부디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말처럼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란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