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명화] 부부싸움 기술 배워가세요 〈트립〉

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연애 5년. 결혼 3년. 도합 8년의 시간 동안 우리 부부가 싸운 횟수는 손에 꼽는다. 누가 비결을 물어 올 때마다 싸울 일이 뭐 있냐며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곤 했던 우리다. 하지만 아기를 낳고 ‘육아’라는 극한의 상황을 마주하자 우리 부부가 달라졌다. “애 낳으면 많~이 싸울 거야”. 육아 선배들의 말들이 그저 농담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혈투는 안 돼

〈트립〉
〈트립〉

 

남편은 망치를 들고, 부인은 칼을 들고 있다. 포스터가 매우 섬뜩하다. 영화 <트립>이다. 남들은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화해를 하는가. 장난삼아 찾아본 영화다. 하지만 이건 장난이 아니다. 우리 부부 사이를 악화 시킬까 두렵다. 어휴!

 

혈투극이 예상된 포스터와는 달리. 영화 초반부는 꽤 잔잔하다. <트립>이란 영화 제목처럼 남편과 아내는 여행을 떠난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힐링을 하자는 산뜻한 취지다. 거기에 일상에서 반복되는 싸움을 회복해보자는 포부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여행을 가는 도중에도 부부 싸움은 계속된다. 한때 잘 나갔던 시기에 감독과 배우로 만나 결혼까지 골인한 남편 라스와 아내 리사. 하지만 작품이 잘되지 않아 갈수록 빚이 늘어갔고. 이 둘은 작은 것 하나에도 불평불만을 가지며 싸움을 해왔다. 남편은 아내 탓을 하고, 아내는 남편 탓을 한다. 빚더미에 오른 것이 서로 때문이라 비난한다. 하지만 현재의 불행은 한 명의 잘못이 아니다. 부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고 또 쌓은 결과물이다.


거울 치료 들어갑니다

 

영화 속 싸움 장면을 보니 괜히 숙연해지는 우리 부부다. 물론 큰 소리를 내며 싸운 적은 없다. 하지만 육아를 하다 보니 감정이 상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그냥 지나갈 것도 지나칠 수 없는 예민함까지 겸비된다. 이걸 좀 도와줬으면 하는 나의 섭섭함과, 많이 도와주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남편의 섭섭함이 충돌하는 것이 싸움의 시작이다.

 

아기를 키우다 보면 예측불허 일들도 많이 생긴다. 예를 들자면, 우유를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문제랄까. 우리 부부의 아가는 먹보 중에 먹보다. 하루에 먹어야 할 분유 총량이 있는데 (소아과 의사들이 정해놓은 가이드라인 같은 거라고 한다) 그 총량을 매일매일 넘겨 버린다. 밥을 먹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배고프다고 울기도 했다. 이처럼 평균의 아기들과 다른 행동을 할 때 참 난감하다. 육아의 정석대로 정해진 양을 먹일 것인가, 우리 아기에게 맞춰 더 줄 것인가. 이를 두고 남편과 설전이 오간 적이 있다.

 

육아로 인해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나의, 일방적 히스테리도 싸움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퇴근하면 집에 와 아기를 보고, 씻기고, 재우는 남편의 노고를 머리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낮 시간 동안 아기와 함께 있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일하러 가고 싶다! 아니 왜 내가 애를 봐야 해?” 이러한 삐뚤어진 마음이 삐뚤어진 말을 만들어내, 퇴근하고 집에 온 남편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그래도.. 죽이는 건.. 좀..

〈트립〉
〈트립〉

 

부부 일상극에서 스릴러로 바뀌는 것은 찰나였다. 한적한 산장에 도착한 부부. 이번 여행으로 관계를 회복해보겠다는 것은 사실 핑계다. 이 부부는 서로를 죽이기 위해 여행을 왔다.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 일찍부터 라스는 공구점에서 구매한 공구들을 챙긴다. 그리고 고민도 없이 망치를 들고 리사에게 향한다. 성큼성큼. 하지만 이대로 당할 리사가 아니다. 라스가 망치로 머리를 내려치려는 순간 리사가 뒤돌며 전기충격기로 공격한다. 선제공격은 라스가 했으나, 공격 성공은 리사에게 돌아갔다.

 

얼마 뒤. 의자에 묶여 있는 상태로 라스가 깨어난다. 그리고 아내 리사는 남편에게 불만 사항을 늘여 놓는다. 이 짧은 대화 속에 부부가 서로를 죽이게 된 원인이 드러난다.

 

빚더미에 오른 부부는 이러한 사태의 원인이 서로에게 있다 보고, 서로를 통해 빚을 탕감하고자 했다. 너를 죽이면 보험금이 나올 것이고, 그 보험금으로 빚도 청산하고 여생을 행복하게 살겠다는 계획이다. 사망보험금을 노린 첫 번째 혈투의 승기는 리사가 잡았다. 그렇게 라스는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때 라스의 친구 빅토르가 등장한다. 사실 라스는 빅토르와 함께 리사를 죽이고, 사망 보험금을 나눠가질 계획이었던 것. 그렇게 리사가 죽게 될까? 주인공이 쉽게 죽을 리 없다. 라스와 빅토르가 실랑이를 벌이다, 라스가 빅토르를 총으로 쏴 죽이는 사태가 일어난다. 그렇게 부부 싸움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트립〉
〈트립〉

공동 목표가 있다면

 

서로를 죽이려고 하는 부부에게 회복이라는 단어가 어울릴까. 하지만 공동의 목표가 있다면 이는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라스와 리사가 서로 총을 가지려 싸우다 총이 천장에 발사되고, 그로 인해 천장이 무너지며 다락방에 몰래 숨어있던 남자 셋이 한꺼번에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 사내들은 탈옥수다. 숨을 곳을 찾던 탈옥수에게 라스와 리사가 묵은 산장은 꽤나 좋은 장소였던 것이다. 이때부터 부부는 서로를 죽이는 적이 아닌, 살기 위해 탈옥수를 죽여야 하는 원팀이 된다.

 

<트립>에 탈옥수가 있다면, 우리 부부의 집에는 귀여운 아기가 있다. 어떻게든 이 아기를 잘 키워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 육아로 인해 싸우기도 하지만 육아로 인해 원팀이 돼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아기의 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아기의 의식주를 해결해주기 위해, 우리 부부는 끊임없이 아기와 싸워 나간다.

 

〈트립〉
〈트립〉

 

탈옥수에게 끌려가는 리사를 구하기 위해 끝까지 추격하는 라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아내를 죽이려 혈안이 돼 있던 남편이 맞는가. 아기로 인해 다크서클이 짙어지는 나를 구하는 일도 남편의 몫이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 죽이지는 말자..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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