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에 출연한 릴리 프랭키의 용감한 선택, 그리고 일본의 우경화를 경고해 온 日 영화인들은

〈하얼빈〉이토 히로부미 역 릴리 프랭키​
〈하얼빈〉이토 히로부미 역 릴리 프랭키​

 

영화 <하얼빈> 속 이토 히로부미 역으로 출연한 릴리 프랭키의 선택은 용감하기 그지없다. 일본의 우경화는 날로 심화되어 가고, 숱한 일본 배우들과 영화감독들이 극우 성향을 드러내고, 조금이라도 정부의 행태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 일본의 극우단체에게 ‘반일’ 인물로 찍히기 일쑤다. 실은,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면 현 일본의 상황을 보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하얼빈〉스틸컷
〈하얼빈〉스틸컷

실제로 최근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은 <하얼빈>을 두곤 ‘의도가 있는 영화’라고 비난하고 나섰는데, 제50대 일본 국회 일본보수당 중의원 시마다 요이치는 외신에 “종전 80주년을 맞아 일부 국가들은 영화의 영향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역사 해석’을 홍보할 것”이라며 일본은 현재 ‘역사 전쟁’에 직면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미다 요이치는 한국의 <하얼빈>, 중국의 <731>을 두고 “1950년대, 소련이 할리우드를 통제해 여론을 형성하려던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라며 “(영화를 통한) ‘문화 전쟁’은 파시스트 국가에서 자유국가의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한 도구로 사용돼 왔다”라고 언급했다. 

〈봉오동 전투〉기타무라 가즈키​
〈봉오동 전투〉기타무라 가즈키​

하물며 한국 배우가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작품에 출연을 하더라도 일부 일본 시청자들의 비난이 쏟아지는데(<경성크리처>에 출연한 배우 한소희 등), 릴리 프랭키처럼 ‘명배우’라 불리는 인물이 <하얼빈>에 이토 히로부미로 출연했다는 사실은 곧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와 현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목소리를 표한 것이나 다름없다. 릴리 프랭키 이전에도,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연기한 일본 유명 배우 기타무라 가즈키는 캐스팅 단계부터 일본 내 극우매체로부터 ‘반일 영화에 출연한다’라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스파이의 아내〉스틸컷
〈스파이의 아내〉스틸컷

릴리 프랭키와 기타무라 가즈키가 한국의 항일 영화에 출연한 것처럼, 일본 내 영화인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경고해 왔다. <스파이의 아내>라는 시대극을 통해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대표적이다. <스파이의 아내>는 731부대의 생체실험 등 일본의 전쟁범죄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그 때문에, 영화 <스파이의 아내>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투자에 난항을 겪었다. 한편, 영화 <스파이의 아내>는 하마구치 류스케가 공동 각본 작업에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하마구치 류스케로서는 유일하게 연출에 참여하지 않고 각본만 작업한 작품이 바로 <스파이의 아내>인 셈인데, 당시 하마구치 류스케는 <해피 아워>(2015), <아사코>(2018) 등으로 차세대 일본을 이끌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 관계였던 구로사와 기요시와 하마구치 류스케는 <스파이의 아내>를 통해 함께 협업하는 관계로 발전했고, 그 때문에 <스파이의 아내>는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의 장르적인 전개보다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연극적인 색채가 두드러진다.

〈브로커〉촬영장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브로커〉촬영장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또 다른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지속적으로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인물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1990년대부터 TV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며 일본의 복지, 교육, 오염 문제 등에 대한 목소리를 내왔는데, 당시의 그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이후 극영화 <환상의 빛>(1995) <디스턴스>(2001) <아무도 모른다>(2004) 등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고레에다 감독이 일본의 군국주의 역사와 정부의 우경화에 대해 가장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은 2006년 그가 연출한 TV 다큐멘터리 <시리즈 헌법~제9조·전쟁 포기 "망각">에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의 저서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에서 ‘가해를 망각하기 쉬운 국민성’에 대해 지적하며 독일과 일본이 그들의 전쟁범죄를 기억하는 방식을 비교하기도 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속 릴리 프랭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속 릴리 프랭키

2010년대, 일본 정부가 군국주의 역사를 ‘망각’하는 것도 모자라, 군국주의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니, 고레에다 감독이 아베 전 총리의 안보관련법(자위대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 반대 집회에 참가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덕분에, 고레에다 감독이 <어느 가족>(2018)으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자 아베 전 총리는 축전은커녕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일각에서는 <어느 가족>이 국가의 보조금을 받았음에도 일본 사회의 이면을 파헤쳤다며 ‘반일 영화’라는 반응을 보인 가운데, 고레에다 감독은 자신의 블로그에 “문화청의 보조금은 정부 관계자의 돈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 분배된 것이다. 문화가 국가의 존재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의식이 있다면 문화에 대한 지원이 꼭 국익과 겹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을 텐데, 국익 우선의 발상이 나를 반일로 몰고 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당시 <어느 가족>에 출연한 배우 릴리 프랭키가 시간이 흘러 <하얼빈>에 이토 히로부미로 출연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뜻이 맞는 영화인들은 한자리에 모이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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