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영화 <도둑들>이 진짜 스크린 도둑이다.”
 
2012년 가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던 김기덕 감독의 말입니다. 이미 충격적인 김기덕 감독의 성폭행 의혹들에 편승, 비난 한 술 더 얹고 싶은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보다는 성폭행 논란 속에서 묻혀버릴지 모르는 '돈' 이야기, 그리고 '시간'의 이야기를 짚어보고 싶습니다.
 
점잖게 말하면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늘 돈과 권력이 빚는 갈등을 그리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매춘, 원조교제, 채권추심, 강간 등 돈과 권력으로 인해 희생되는 여성들을 자극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감독과 배우가 동참했던 성폭력의 리얼리티가 작품에 녹아들었기 때문일까요? 대중의 혹평 속에서도 김 감독의 영화는 유독 해외 영화제에서 리얼리티를 인정받으며 많은 상을 휩쓸었습니다.  
 

2012년 <피에타>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 수상 당시.

그의 영화 속에서는 대부분 남녀관계에 '돈'이라는 매개가 등장하는데, 억압과 고통 속에서도 존재하는 일말의 '대가성'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나쁜 남자>에서 주연배우 조재현은 여자친구를 매춘부로 만들어 푼돈을 받는 폭력배이자 포주 역할로 나옵니다. <사마리아>에서는 여고생이 원조교제를 하며 푼돈을 벌고, <파란대문>에서는 가난한 매춘부와 여대생이 등장하며, <섬>에서는 생존을 위해 낚시꾼에게 음식과 몸을 파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김 감독 영화가 대중에게 불편한 건 바로 이같은 추잡한 관계 속에 여성과 돈을 투입한 뒤, 잔혹한 상황을 극화해 예술로 표방하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는 흔히 감독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작가의 헤게모니가 가장 강하다면, 유독 한국 영화는 감독이 권력관계의 최상부에 위치합니다. 감독은 신인배우를 데뷔시키기도 하고, 조연배우를 주연급으로 만들기도 하며, 감독이 연출하는 이미지에 따라 스타의 몸값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감독과 신인 또는 인지도가 낮은 여배우는 영화 생태계의 권력구조로 보면 극과 극이겠죠. 이처럼 배우들이 배우로서 미래와 생계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영화감독은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쁜 남자> 스틸컷.

김기덕 감독과 조재현 배우가 제작 과정에서 성폭행 의혹에 휘말렸던 <나쁜 남자>는 지난 2001년에 개봉했습니다. 이후로 17년간 김 감독은 세계 영화제의 거장 칭송을 받으며 승승장구했고, 신인 여배우는 매춘부 역할을 끝으로 영화계를 떠난 지 17년 후에야 비로소 고통을 털어놓았습니다. <나쁜 남자> 전후로도 김 감독은 수많은 여배우들을 매춘부로 묘사했고, 그들의 열정을 통해 얻은 과실은 대부분 감독에게 돌아갔습니다.  
 
업계에서는 '김기덕 영화에 출연한 배우는 뜬다'는 풍문도 있었지만, 유독 여배우들만큼은 주목을 받지 못하거나 업계 자체를 뜨는 일이 많았습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또 한 명의 거장 이창동 감독의 여배우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걸어야 했죠. 2002년 영화 <오아시스>에서 이 감독이 발굴한 신인 여배우 문소리는 청룡영화제 신인상, 베니스영화제 신인배우상을 수상하며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7년 영화 <밀양>에 참여했던 여배우 전도연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칸의 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참석 당시 김기덕 감독.

많은 사람들이 영화감독을 동경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번 작품으로 성공하면 오랜 기간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김 감독은 이후로 줄곧 세계영화계의 거장 칭송을 받았고, '억'소리 나는 감독 개런티와 상금도 수십 차례 받았습니다. 전세계 많은 영화제들이 비행기 표와 여비를 주고 모셔가는 건 다반사였고,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특히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도둑들> 스틸컷

국내에서 큰돈을 벌지 못하던 그가 2012년에는 보란 듯이 상업영화계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뒤 의기양양하게 귀국한 그는 당시 1000만명 넘게 동원한 영화 <도둑들>이 낮은 점유율에도 스크린을 독과점하면서 자신의 영화가 관객에게 소외당하고 있다며 '진짜 도둑들'이라고 공개 비난했습니다.
 
올 들어 거세진 '미투' 물결 속에서 드러난 과거 이른바 거장들의 만행은 충격과 함께 늦은 안도감도 주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죄를 묻더라도 여배우들의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까요?
 
배우의 몸과 마음뿐 아니라, 미래의 돈과 시간까지 송두리째 훔쳐 간 도둑들. 그들에게 법과 도덕의 단죄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김동하 한성대 상상력교양교육원 교수 / 성북벤처창업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