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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JIFF]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엔 대체 무엇이 있었던걸까? 〈무색무취〉 이은희 감독, 김신재 프로듀서 인터뷰

영화 〈무색무취〉 스틸컷 (이은희, 김신재 제공)
영화 〈무색무취〉 스틸컷 (이은희, 김신재 제공)

 

이은희 감독의 <무색무취>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선정된 작품 중 유일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단 한 편뿐이라니. 매년 제작되는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의 개수가 적어졌다기보단, <무색무취>가 올해 한국독립영화의 지형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충분히 소개될 필요가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설명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은희 감독은 그간 꾸준하게 기술 환경과 개인에 대한 소재로 작업해 온 비디오 아티스트로 올해 처음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다.

 

 

클린룸과 방진복은 반도체만을 보호했을 뿐 그녀를 보호하지 않았다.

 

영화 <무색무취>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 기술 산업에서 반복되어 온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담겨있지만, 그저 증언과 현상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인터뷰와 교차되는 클린룸 작업 일지, 공장 내부를 포착한 차갑고 섬뜩한 자료 영상, 의도적으로 삽입된 어색한 AI 영상 등은 카메라가 포착할 수 없는 클린룸 내 지독한 화학약품 냄새마저 끌고 오려는 시도다.

발화는 한국의 반올림, 금속노조 엠코지회, 그리고 대만의 산재희생자협회로 확장된다. 이를 통해 첨단 기술 산업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건강 문제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단순한 저임금 노동력 확보의 문제를 넘어, 보건·안전 비용마저 절감시키려는 것이 해외 공장 이전의 숨겨진 목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무색무취>의 카메라는 전자 산업 노동자가 처해 있는 위험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지켜보고 있다. 언제쯤에나 기술이나 비용이 아닌 인간이 우선가치가 될까? 이런 질문은 이젠 너무 닳고 닳았다. 노동절에, 전주에서 이은희 감독과 김신재 프로듀서를 만났다.


김신재 프로듀서, 이은희 감독
김신재 프로듀서, 이은희 감독

올해 한국경쟁 부문에서의 유일한 다큐멘터리 작품입니다. 간단한 소개와 소감 부탁드립니다.

이은희 감독 저는 시각 예술을 기반으로 약 10년 정도 꾸준히 작업을 해왔습니다. 미술 환경에서 영상 작업을 진행해오면서 최근 몇 년 전부터 다큐멘터리적 접근 방식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종종 듣기도 했어요. 이번 작품이 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선정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고, <무색무취>의 상영이 월드 프리미어인 만큼 아직 다양한 관객의 피드백을 받기 전 단계라서요. 여러 반응을 듣고 난 뒤에 이 작업을 저 스스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신재 프로듀서 저는 영화제와 영화 배급 분야에서 경력을 시작했으나 현재는 주로 시각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획자입니다. 2018년부터 미술 작가들의 영상 작품에도 제작자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사진·영상 작가, 퍼포먼스·공연 작가들과 협업해 왔습니다. 이은희 감독과는 <머신 돈 다이>(2022)라는 작품부터 같이 제작자로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무색무취>는 한 네프켄스 재단(Han Nefkens Foundation)의 제작 지원을 받은 작품이고, 해외 5개 기관에서의 전시 계획까지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그래서 전시 공간에서만 선보일 것으로 예상해서 영화제 진출 소식은 감개무량입니다. 영화계에서 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간 이은희 감독의 작업에서는 기술-개인-산업-사회로 이어지는 주제로, 비인간(기계, 물질 등)이 첫번째 피사체인 작품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러나 <무색무취>에서는 기술산업 속 인간(노동자)이 중심이며 구조를 조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은희 감독 최근 몇 년간의 작업인 <머신 돈 다이>(2022)나 <피로의 한계>(2023)에서는 정말로 물리적인 기계와 결함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근데 결국 기계의 결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인간의 결함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기계가 어떤 결함이 생겼을 때, 이걸 다시 회복시키는 건 또 다른 인간 노동자들의 일이잖아요. 그러면서 이전 작업들에서 관계자 인터뷰를 하거나 아픈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쉽지 않았고, 늘 그런 거에 대한 부채감이나 당위성 문제를 겪었기 때문에 나는 이제 좀 그걸 벗어나서 기계의 입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했지만, 결국 다시 돌아간 거죠.

그러면서 결함이 생긴 기계나, 그런 걸 생산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도 결함을 얻게 된다는 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어서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은 일하다가 아픈 사람들의 몸을 단순히 찍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결국 이 사람들의 발화를 통해서 무언가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인터뷰를 하게 되고 그래서 다큐멘터리적 형식이 된 거고요.

영화 〈무색무취〉 스틸컷 (이은희, 김신재 제공)
영화 〈무색무취〉 스틸컷 (이은희, 김신재 제공)

<무색무취>는 다양한 인물과 단체를 따라갑니다. 산업재해 피해자들과의 만남은 어떻게 시작된건가요?

이은희 감독 이전 작업들은 노동자의 신체, 그리고 기계의 손상에 대한 작업들을 늘 해왔었는데, 이 맥락으로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주제나 내용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그렇다면 늘 하고 싶었던 산재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방향성을 잡았어요. 산재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프로듀서님과 같이 작업하기로 결정한 이후에 여러 기관들을 방문하면서 자문을 받았었어요. 몇 군데 연구소와 기관을 만나고 다음으로 만난 단체가 ‘반올림’이였는데, 거기서 굉장히 좋은 에너지를 받았어요. 이분들은 단순히 자문을 해 주겠다는 게 아니라 되게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우리 작업을 해달라”는 식이 아니고 “언제든 우리가 무언가를 할 때 참여하셔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제가 여러분들의 활동을 기록해도 될까요?”로 시작해서 전자 산업의 산업재해에 좀 더 포커싱하게 되었어요. 전자 산업 중에서도 최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 산업체를 집중적으로 다뤄보기 시작했고, 반올림 분들의 소개로 산업재해를 겪으신 피해자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국내, 해외 단체와 개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촬영하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반올림을 만나고 인연이 이어져 금속노조 엠코지회나 대만산재희생자협회 등을 만나게 된거군요.

이은희 감독 <무색무취> 이전 작업들에서는 인터뷰가 쉽지 않았어요. 촬영 허가를 받는 것도 어려웠고, 항상 조심해야 했죠. 합의된 내용을 기반으로만 촬영해야 했고, 기술 보호나 보안이라는 명목으로 기업을 대변하는 촬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편하기도 했어요. 그분들에게 허가를 받으려면 엄청난 설득이 필요했고,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곡해되지 않게 설명해야 했어요.

항상 상대방을 보호해야 하는데, 그게 개인이 아니라 기업을 보호하는 방식이었어요. 공장이나 기계만 나와야 한다거나, 이주 노동자를 보여주면 안 된다는 식으로요. 기업에 누가 되지 않도록 촬영해야 해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크더라고요. 그런데 시민단체 분들은 태도가 완전히 달랐어요. "우리는 리스크를 감수할테니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괜찮고, 우리가 서포트할게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기업과는 정반대의 태도여서 존경스럽고 신기했어요. "우리 제보자를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갈래요?"라고 하시면 "좋아요" 하고 따라가게 되고요. 광주 금속노조 지부에 가서 제보자 분과 밥도 먹고, 어쩌다 보니 라포를 쌓게 됐어요.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분들이 반겨주는 분위기라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고 작업에 반영하고 싶어졌어요. 그러다 국제 컨퍼런스에 따라가며 해외 시민단체 분들을 만났는데, 흔쾌히 촬영에 응해주셔서 대만에도 다녀오게 됐고요.​

영화 〈무색무취〉 스틸컷 (이은희, 김신재 제공)
영화 〈무색무취〉 스틸컷 (이은희, 김신재 제공)

영화에 인터뷰 장면 외에 자료로 사용한 이미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거친 질감으로 자료화면을 효과 처리한 것이 일종의 클린룸의 반도체 제작 공정을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 화학용액을 시각화한 이미지도 매력적이었고요. 브릿지로 사용한 이미지들을 어떻게 구성하게 됐는지도 궁금했어요.

이은희 감독 산업 현장, 특히 전자 산업체에서 유해 물질과 독성 물질로 인한 직업병을 다뤄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은 공장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고, 병을 유발한 요소들을 직접 촬영할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보이지 않는 물질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가 가장 큰 도전이었어요. 단순히 "이게 문제다"라고만 말하는 방식은 시각 예술가로서 저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보이지 않는 위험을 가시화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고, 그 고민에서 이미지들을 구현해내게 된 거 같아요.

김신재 프로듀서 예를 들어 삼성 기흥 공장은 보안이 삼엄해서 외부 건물도 촬영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접근할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어떻게 표현할지가 큰 문제였는데요. 유해 물질을 연기로 재현해 찍을 수도 없고, 신체 내부로 흡수되는 과정을 직접 촬영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저희가 구할 수 있는 자료들 중에서 최대한 시각화 가능한 이미지를 찾아야 했어요. 화학용액 이미지는 사실 유일하게 연출된 장면인데, 실제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했어요. 하지만 그 존재 자체를 감각적으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에, 결국 유일하게 연출한 이미지가 되었고요.

영화 〈무색무취〉 스틸컷 (이은희, 김신재 제공)
영화 〈무색무취〉 스틸컷 (이은희, 김신재 제공)

영화계에서 AI 이미지의 사용은 어떤 지점에서는 아주 논쟁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색무취>에서는 전혀 사실적이지 않은, 어떻게 보면 기괴하기도 한 AI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이은희 감독 AI 영상 생성기는 사진 이미지를 움직이게 하거나 프롬프트를 넣는 ‘텍스트 비디오’로 만들어 주잖아요. 두 가지 방법을 썼는데, 첫 번째는 ‘반도체 공장’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전형적인 이미지들, 뉴스나 셔터스톡에서 흔히 보는 깔끔한 방진복 차림 전문가들이 반도체를 점검하는 장면, 혹은 비판적인 대량생산 현장 노동자 이미지를 활용했어요. 실제로 AI가 생성하는 건 그런 것밖에 없어요. 촬영이 불가능한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그 이미지 소비 방식을 재현했고요.

​두 번째는 “반도체가 만들어진 현장을 보여줘”라고 AI에게 요청하는 거예요. (AI한테는) “네가 어디서 생산됐는지를 보여줘, 너의 근원지가 어딘지를 보여줘”라고 물어보는 거랑 똑같거든요. AI 자체가 고성능 반도체로 만들어진 것인데, 정작 자신의 생산지 이미지를 생성하라 하니까요. 그들이 학습한 데이터에 기반해 만들어내는 영상이자, 일종의 아이러니한 농담이라고 생각해 넣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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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반도체 산재 피해자를 다룬 영화로 <또 하나의 약속> <탐욕의 제국> 등이 있었는데요, <무색무취>는 인물의 개인적 서사에 크게 집중하지는 않습니다. 분노와 슬픔 등 정서적 반응이 많진 않지만, 마지막 정향숙 님의 인터뷰에서는 자부심과 질병을 동시에 준 회사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갖는다는 부분이 인상적이기도 했어요.

이은희 감독 인터뷰이분들은 뭔가를 호소하려고 저를 만난 게 아니었어요. 저는 그분들에게 “어떤 일을 하셨어요?” “공장 상황은 어땠어요?”라고 묻는 사람이었을 뿐인데, 그분들의 감정적 서사가 관객에게 ‘나 아프니까 도와줘’라고 오해받을까 봐 조심했죠. 근데 실제로는 “이런 얘기해도 되나?” “내 이야기를 누가 들을까?”라며 조심스러워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분들이 피해자로 인식되지 않도록 최대한 정서적 표현을 빼려고 했어요.

구조적 문제를 파헤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들이 있잖아요. 개인의 슬픔보다 환경 자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명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전반적으로 감정을 과장하는 방식을 좋아하지도 않았고요.

정향숙 님의 눈물을 마지막 장면에 넣은 이유는 ‘나 억울해’라며 우는 모습이 아니잖아요. “젊음을 다 바친 회사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게 괴롭다”는 그 말은 많은 인터뷰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거라고 느꼈어요. 일이 싫으면 왜 계속했겠어요? 이들은 자신의 일을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대하고 긍지를 가졌어요. 호소하는 방식보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영화 〈무색무취〉 스틸컷 (이은희, 김신재 제공)
영화 〈무색무취〉 스틸컷 (이은희, 김신재 제공)

<무색무취>는 한 네프켄스 재단의 제작지원과 한국여성재단의 후원을 받아 완성한 작품인데요. 영화제 이후로의 상영 계획이 있나요?

이은희 감독 일단 현재까지 미술관 전시로는 계획이 두 건 예정되어 있어요. 8월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전시할 예정이고요. 올해 12월 달에도 대만 타이베이에서 전시를 합니다. 근데 아직 극장 상영으로 정해진 건 없어요.

김신재 프로듀서 많은 시민단체와 피해 노동자 분들의 지원과 협력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지역에서 시민단체나 노동자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영회를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나누고 있는 중이기는 해요. 많은 분들이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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