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소현 기자
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어머님 OO어린이집입니다. 입소 대기 신청 순번이 되어 연락드립니다. 입소 날짜는 9월이지만 미리 와서 둘러보시고 이야기도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며칠 전 도착한 메시지.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어린이집이 있는데, 아기가 많이 없는지 대기 번호도 0번이고 원하는 때에 입소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아휴! 운도 좋아! 기뻐하고 있던 찰나. 친구의 문자를 보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가 걸어놓은 데는 대기가 삼십몇 번인데, 대기 하나도 없으면 뭔가 이상한 거 아니야? 맘카페 이런데 후기 이런 거 다 찾아봤어? 근처 다른 어린이집도 대기 좀 몇 개 걸어놔봐. 좀 멀어도 좋은데 보내는 것도 추천. 시설이나 커리큘럼 이런 것도 좀 꼼꼼히 보고”.
골머리가 아플 때쯤 생각난 영화...
꼼꼼맘 친구의 잔소리에 대충맘은 골병이 든다. 다른 곳도 찾아봐야 하나…? 아니 거기서 거기 아닌가…? 아니야, 후기는 읽어볼까..? 단지 안에 보내는 게 제일 편할 것 같은데…. 그때 생각난 영화. 이런 어린이집이라면 아묻따 보냈을 텐데! 〈대디 데이 케어〉(Daddy day care)는 백수가 된 아빠들이 어린이집을 직접 차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 찰리(에디 머피)는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 일하는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대규모 정리해고에 포함되며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게 된다. 물론 아내도 일을 하기 때문에 당장 먹고 살 걱정은 없다. 하지만 아들이 문제. 비싼 사립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아들의 학비는 백수 아빠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운 액수다. 집에서 노느니 아들을 보자 싶어 집으로 데려온다. 사립 유치원만큼은 아니더라도 잘 볼 수 있다는 근자감을 장착하고선. 동네에도 비싼 유치원 학비에 허덕이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찰스는 이 아이들까지 데려와 아들과 함께 봐주며 육아 스킬을 조금씩 늘여간다. 그러다 찰스는 무모한 생각에 이르게 된다. “애들 돌보는 거 꽤 할만한데?” 결국 찰스는 함께 백수가 된 절친 필과 어린이집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아빠들의 새 사업 아이템으로 어린이집이 급부상한 것이다.

어린이집 그깟 거! 차리면 되지 뭐!
찰스와 필만큼은 아니지만, 나 또한 가정 보육 잠깐(?) 꿈꿨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내 인생도 중요하지! 되도록 어린이집 빨리 보내고 내 시간 가져야지!’라고 소리쳤던 나다. 하지만 막상 아기를 낳고, 아기를 키워보니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현실적 시기에 아기는 너무 어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작은 아기는 아직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한다. 이런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겨도 되는 걸까.
현실적으로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해야 하고, 또 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일은 계속하는 게 맞다. 하지만 아기와 시간을 보내고, 아기와 함께 점심을 먹고, 아기가 낮잠을 자는 그 귀여운 모습을 눈에 담는 모든 것들을 키즈노트(어린이집에서 보내주는)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거기에다 “어린이집 입소 시기는 최소 24개월 이후가 적절하다”라는 전문가의 말들도 괜히 신경이 쓰인다. 어린이집에서 애들도 사회생활 좀 해야지!라고 마음을 다잡다가도 “그 시기 아이들은 엄마를 통해 사회생활을 배웁니다”라는 댓글에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진다. 유튜브 스타 태하도 5살이 다 된 지금 유치원을 간다지 않는가. 국민 아들 태하도 어린이집을 안 보냈다는데… 내 아들은 보내도 될런가….
하지만.. 쉽지 않을걸?
가정 보육이 별거 아니라 생각하며 어린이집을 개소한 두 아빠. 처음에 단 두 명이던 아이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점점 늘어난다. 하지만 전문 자격도 시설도 없는 ‘아빠 어린이집’은 개소와 동시에 대혼란에 빠진다.
아이들은 도무지 통제가 안 된다. 한 아이는 거실 커튼을 망토처럼 둘러쓰고 “나는 스파이더맨!”이라 소리 지른다. 다른 아이는 찰리 노트북에 주스를 쏟고 “우와! 이건 수영장 같아”라고 말한다. 소파 위에는 점프 대회가 열렸다. “얘네는 왜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거지…? 이게 애 키우는 거라고…?”

커리큘럼도이 없으니 더 난장판이다. 그저 놀게 펼쳐두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아빠들 때문에 아이들은 금방 질리고, 싸우고, 울고, 혼자 논다. 점심시간도 무질서의 절정이다. 피넛 버터를 벽에 바르는 아이 옆으로 바나나 껍질로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가 있다.
하루 종일 뛰고, 말리고, 설득하고, 기저귀 갈고, 장난감 치우고. 두 아빠는 녹초가 된다. 열심히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고 소파에 드러눕는데. 학부모의 민원이 쇄도한다. “여기다 우리 애를 맡기라고요? 집에서 TV만 보는 것보다 나을 게 없네요”.
그래 맞아 이게 내 미래지…?
자아가 생긴 우리 아기 또한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닌다. 이리저리 부딪혀 얼굴에는 멍투성이다. 어제는 한눈파는 사이 변기에 손을 담그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가 하면, 그저께는 어디서 매직을 찾아 얼굴에 온통 낙서를 해놨다. 아! 오늘은 똥 싸고 기저귀를 다 뜯고선 온 집안을 기어다닌 탓에 온 바닥이 똥칠이 돼 있었다. 그러다보면 아기에게 소리 지르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 쫌!
하지만 힘이 들다가도 아기가 나를 향해 기어 오는 모습. 아기가 나를 보고 웃어주는 미소. 그 사소한 것들에 피로가 싹 몰려간다. 이러한 힘으로 나는 또 아기가 흥미가 질 만한 것들을 만들고, 아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요리한다. 찰스와 필도 그랬으리. 그러한 진심으로 그들의 어린이집은 전환점을 맞는다.

내 아이의 친구들은 내 아이와도 같다. 찰스와 필은 그랬다. 지루해하는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광고 일을 했던 찰리와 필은 광고하듯 우스꽝스럽게 동화책을 읽는다. 그림을 그릴 때도 아이들이 맘껏 표현하도록 놔두고, 벽에 걸어줌으로써 칭찬을 한다. 공룡 옷을 입고 연기를 하며 아이들을 웃겨준다. 잔디 밭에서 뛰놀며 아이들과 함께 몸을 부빈다.
원생을 내 아이처럼 생각하니 아이들도 변한다. 항상 우주복만 입고 말도 안 하던 벤은 항상 이상한 아이로 손가락질 받아왔다. 하지만 아빠 어린이집에서는 달랐다. 무조건 벗기려 하지 않고 “넌 우주인이구나”라며 존중한다. 우주와 관련된 책과 스티커 장난감을 통해 함께 공유하며 마음을 천천히 열어간다.
아이들에게 머리를 맞아 쓰러지는 일이 있어도 혼내지 않는다. 아이가 넘어지면 같이 앉아서 말을 건다. 말썽 피우는 아이에게는 “기분이 어땠어?”라며 공감하기 시작한다. 마치 부모처럼.
진심이 닿으려는 순간 찾아온 위기
아이들은 진짜를 아는 법.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들자 부모들은 말한다. “요즘 우리 애가 왜 이렇게 밝아졌지!”. 입소문은 학부모 모임까지 영향을 미친다. 명문이라 불리우는 해링턴 어린이집 대신 daddy day care을 보내자고.
하지만 위기가 없으면 영화가 아니다. 해링턴 어린이집은 아빠 어린이집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해링턴 유치원은 고급 유아교육으로 명성이 높은 비싼 어린이집이다. 해당 어린이집의 원장인 해링턴은 엘리트 교육 신봉자다. 라틴어, 조기 수학, 클래식 음악을 강조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듣보잡’ 어린이집이 인기를 끈다는 것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찰리와 필이 만든 어린이집을 비방하기 시작한다.
“대디 데이 케어는 무면허, 미자격, 위험한 곳입니다”. “애들이 공룡 소리나 내면서 뛰놀기나 하죠. 배우는 건 하나도 없어요”.
시청과 보건소, 소방서에도 민원을 넣는다. “허가도 없이 아이들 데리고 돈을 받는답니다”. 그걸로도 모자라 부모를 따로 만나 설득까지 한다. “우리 기관은 대학 진학률이 높은 아이들을 길러요”. “여기 있는 동안 애들이 놀기만 하면, 경쟁력이 없어져요”.
선택은 나의 몫
다시 우리 부부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우리 부부는 어떤 어린이집을 선택해야 할까. 친구의 말대로 시설이 좋으면 좋을수록, 커리큘럼이 빡빡하면 빡빡할수록 아기가 성장하기 좋을 수 있다. 경쟁률이 높다는 것은 많은 학부모들이 이곳을 ‘적합하다’고 여기는 것일 테니. 하지만 그게 우선순위일까. 시설이 조금 좁아도, 커리큘럼이 널널해도. daddy 같은 선생님이 있다면? 그래도 우리는 인기 많은 어린이집을 보내야 할까. 물론 경쟁률이 높은 이유 중에 좋은 후기도 포함될 것이다. 좋은 후기에는 좋은 선생님들의 평가가 담겨 있을 테다.
영화는 daddy day care의 승리(?)로 끝난다. 두 어린이집은 부모 설명회를 갖고 동시에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해링턴은 여전히 고급 커리큘럼과 고급 시설을 내세우고 찰리는 아이들을 향한 진심을 최우선으로 말한다. 그리고 학부모들은 찰리의 손을 잡는다.

이번 주말 남편과 나는 아기가 다녀야 할 어린이집에 가보기로 했다. 어린이집 상담을 잡아놓고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그리고 찰리의 말이 계속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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