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놈의 창조자 만화가 토드 맥팔레인에 대한 두 번째 글이다. 지난 글은 위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11월 12일 월요일 정오에 세 번째 글이 공개될 예정이다.

(왼쪽부터) 토드 맥팔레인, 스탠 리.

1991년, 토드 맥팔레인은 미국 만화업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1984년 만화 업계에 입문한 지 10년도 채 안 되어, 그는 마블 코믹스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작가의 자리에 등극했던 것이다.

1990년 8월 발간된 <스파이더맨> 1호부터는 토드 맥팔레인이 글과 그림 전부를 담당하였다. <스파이더맨> 1호는 총 250만~300만부가 판매돼 단일 만화책 판매부수 신기록을 달성했고, 토드 맥팔레인의 이름은 기네스북에 오르게 된다.  마블 코믹스의 필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된 것이다.  당연히 초특급 대우를 받았고 연봉은 한화로 10억 원을 넘었다. 90년대 당시로는 대기업 임원 수준의 연봉이었던 것이다. 그의 나이 29세 때의 일이다.


20억 벌어주고 2억도 못 받는다?
그렇다면 토드 맥팔레인은 고액의 연봉과 정상급 작가에게만 일감을 주는 마블 코믹스에 감사하면서 살았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대형 만화 회사들이 작가들에게 하는 대우가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스파이더맨> 1호로 그가 회사에 벌어다 준 돈은 20억 원 가까이 되는데 그에게 돌아간 돈은 2억 원도 되지 않았다. 당시 마블 코믹스의 인세는 10%가 채 되지 않았다. 자신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거의 온전한 자신의 창작물로 다른 사람들만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억울해졌다.

그런데 업계 정상급 작가들 중에는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 몇몇 있었다. 1991년 발간된 <엑스맨> 1호가 700만 부 이상 팔려 토드 맥팔레인이 전 해에 세운 기록을 박살냈던 작가 짐 리 (한국명 이용철), 케이블과 데드풀을 만든 작가이자 같은 해 400만 부 이상 판매된 <엑스포스> 1호의 롭 라이펠드는 토드 맥팔레인과 동급인 슈퍼스타급 작가들이었다. 이외에 토드 맥팔레인을 초창기에 어시스턴트로 썼던 마크 실베스트리, 필리핀계 미국인인 윌스 포타시오, 역시 <스파이더맨>을 그리던 에릭 라슨 등의 작가들이 90년대 초 업계에서 서로 모셔가려 하는 거물급 작가들이었다. 전부 20대의 청년들이었고 그중 토드 맥팔레인이 가장 나이가 많았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짐 발렌티노, 짐 리, 에릭 라슨, 롭 라이펠드, 토드 맥팔레인, 마크 실베스트리, 윌스 포타시오.

이들은 자주 교류하며 친하게 지냈는데, 혈기왕성한 나이였기에 토드 맥팔레인과 같이 대기업의 만화 창작 시스템에 불만이 많았다.  공통적으로 다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했다. 이들이 처음 생각한 것은 노조를 결성하는 것이었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엘리트 작가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연봉도 올리고 윗 간부들의 간섭도 없을 것이니 창작의 자유가 더  주어질 것이라 판단하였다. 롭 라이펠드도 같은 생각이었다.

미국 만화 역사의 대사건, 젊은 작가들의 반란
그래서 이 만화계의 슈퍼스타 그룹은 1991년 어느 날, 노조 결성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이는데, 이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미국 만화 역사의 대사건으로 남은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 결정이란 노조를 설립하는 대신, 각자 맡고 있는 프로젝트를 일시에 중단하고, 소속해 있는 회사에 동시에 사표를 내고, 회사를 공동 창업하자는 것이었다. 뜻을 같이 하기로 한 이는 토드 맥팔레인, 짐 리, 롭 라이펠드, 마크 실베스트리, 윌스 포타시오, 에릭 라슨, 짐 발렌티노였다. 

이 슈퍼그룹의 시장 지배력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1991년 당시 이들이 창작하는 만화가 미국 총 판매 만화 부수의 80%에 달했다. 어떻게 보면 20대의 자신감 넘치는 나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이들이 한꺼번에 일을 그만두겠다니 당연히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에서는 난리가 났다.

재미있게도 이들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다 함께 DC 코믹스 본사에 우루루 찾아간 것이었다. 당시 이들 중 DC 코믹스에서 정기적인 연재를 하고 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회사 로비에 짐 리, 토드 맥팔레인 등 정상급 작가들이 찾아와 있다는 소식을 들은 DC 코믹스는 깜짝 놀라 긴급 임원 회의를 소집한다. 당연히 이들이 DC 코믹스와도 단체로 계약을 하려 찾아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갑자기 소집된 회의 자리에서 이게 웬 떡인가 희망에 부푼 임원진들에게 이들은 “여기 모인 이들은 당신네 회사에서 앞으로도 일하지 않을 걸 통보하려 왔습니다”라는 황당한 선언을 한다. 그 대신 회사를 차릴 것이니 잘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회의 분위기는 급격히 침울해졌다. 사실 소속되지도 않은 회사에 찾아가서 이런 선언을 한다는 게 우습지만, 당시 이 작가들의 자신감과 혈기왕성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다.

이미지 코믹스 CI

이렇게 이들이 1991년 말 창립한 ‘이미지 코믹스’는 작가들이 창작한 캐릭터들과 파생 상품들의 지적 자산권이 전부 다 작가 자신에게 있다. 토드 맥팔레인 자신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미지 코믹스 소유로 되어 있는 것은 사옥과 이미지 코믹스 로고뿐이다. 각 작가들은 각자 이미지 코믹스 산하 자회사들의 발행인 역할을 하게 되며 각자 독립적인 어시스턴트 팀을 운영해서 꾸릴 수 있다. 작가 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에 따르는 보상과 자유도를 극대화한 구조인 것이다. 미국 만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새로운 작업 환경과 수익 분배 시스템을 갖춘 회사의 탄생이었다.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에서는 한 목소리로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힌다”, “대재앙을 초래할 것이다”라는 성명서도 냈지만, 독자들은 슈퍼스타들의 새로운 회사 창립을 두 팔 벌려 환영하였다. 창립을 앞두고 토드 맥팔레인은 책을 1만 부만 팔아도 마블 코믹스에서 100만 부 팔 때처럼 본인에게 연봉 10억 원 이상의 수입이 돌아갈 것이라는 계산을 내렸었다. 소규모 회사이기 때문에 마블 코믹스나 DC 코믹스처럼 많이 팔 수는 없지만 그래도 수입을 개인이 온전히 다 챙길 수 있으니 더 알짜배기 수입일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왼쪽부터) <스폰>, <영블러드>

사인회 장소에 뜬 헬리콥터
그런데 첫 해 판매 부수는 모든 이들을 놀라게 했다. 1992년 첫 발간된 <스폰> 1권은 170만 부가 팔리며 미국 만화 역대 판매 순위 5위에 안착하였다. 판매 수익이 그대로 다 토드 맥팔레인에게 돌아갔기에 그의 수입은 수십배 이상 증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스폰> 외에도 짐 리의 <와일드캣츠>, 롭 라이펠드의 <영블러드>도 100만 부 가까이 판매고를 올리며, 이미지 코믹스는 창립하자마자 불가능에 가까운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DC 코믹스를 제치고, 마블 코믹스에 이어 미국 내 만화 판매순위 2위 회사에 등극한 것이다! 토드 맥팔레인과 동료들의 과감한 도전은 보란 듯이 성공한 것이었다. 이 당시 이미지 코믹스와 작가들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 하면 이들이 사인회를 하는 만화 전문점 주변 교통량이 10배 이상 증가하고 교통이 마비되어 군중 통제용 헬리콥터가 뜰 정도였다고 한다.

토드 맥팔레인과 동료들은 단기간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사업 규모가 커지다 보면 동업자간 분열이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이렇게 프라이드 강한 슈퍼스타들로 이루어진 이 그룹이 과연 오래 갈 수 있었을까? 그리고 토드 맥팔레인은 여기에 만족했을까? 90년대 만화 시장 버블 붕괴를 버텨 낼 수 있었던 토드 맥팔레인이 놀라운 사업 감각은 이 이후에 보여지게 된다.


최원서 / 그래픽 노블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