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어리둥절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은 죽어 사라지는 존재라고 봐요. 물론 영생에 대한 관념들도 있지만, 저는 그런 관념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그것에 관해서는 뭐랄까, 아주 오래전부터 도저한 허무주의를 갖고 있었어요.”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김영하 작가님의 생각(출처 : <글쓰기의 최소 원칙>)이다. 인간은 인간과 삶에 대해 참 다양한 생각을 갖는구나 싶어 옮겨 보았다. 뭐, 종교적인 사후세계를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작가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죽음’의 표현 중 ‘영면’(永眠)이란 단어에 공감하는 편이다.
우리는 모두 매일 밤 어떻게 잠드는지 모르게 잠들고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일어난다. 잠자는 동안엔 나라는 존재와 존재를 둘러싼 시간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다가 그 다음날 일어나는 순간 세상과 시간은 나를 다시 찾아온다. 그래서 깨지 못하는 잠은 곧 영면이고 죽음이다. 생명체는 모두 죽음에의 예행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는 살아있는 동안 유전자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본능적으로 발버둥을 치게 된다. 먹고, 활동하고, 번식하고, 그리고 죽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든 이 활동을 못하게 된 개체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라서 경제적으로 복구하지 못할 피해를 입든, 신체적인 장애가 생기든 어떻게든 삶을 영위할 수는 있다. 문명사회의 힘이다. 하지만 인간도 동물이고 동물은 모두 본능을 충족시켜야 행복해지는 존재인데 이런 본능을 충족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인간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고 동물과 다른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언터처블: 1%의 우정>은 그런 인간의 존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언터처블: 1%의 우정>은 올리비에 나크슈, 에릭 톨레다노 두 감독이 2012년에 만든 프랑스 영화다. 프랑스판 포스터에 ‘Intouchable’이라 쓰여있어서 어라? 하실 분이 있으실 듯한데 프랑스어의 ‘intouchable=영어의 언터처블(untouchable)’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20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대성공했고 유럽 다른 국가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 버전의 리메이크도 제작 중이라고.
사회적 지위로 상위 1%인 장애인 백만장자와 하위 1% 건달의 우정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려냈는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목 아래가 마비된 백만장자 필립(프랑수아 클루제). 돈은 많지만 신체가 부자유하다보니 일상생활 하나하나 모두 전담 도우미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도우미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온 드리스(오마 사이)는 누가 봐도 도우미와는 거리가 먼 스타일. 심지어 본인조차도 도우미로 뽑힐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취직 노력을 증명하기 위한 서명만 해달라고 필립에게 부탁을 한다. 그런데 정작 필립은 그런 드리스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드리스를 도우미로 취직시킨다. 당연히 실수 연발에 온갖 사건들이 다 터지지만 그런 사건들은 생명체로서의 기본적인 힘을 잃어버린 필립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오고 그런 필립이 드리스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도우며 이 두 사람은 멋진 화학 반응을 이뤄낸다.
드리스는 필립을 만나 그림을 그리게 되고 상류사회의 문화를 체험하게 되는데 그런 것들 중의 하나가 필립과 함께 탄 비행기 속에서 마신 샴페인이다. 샴페인은 프랑스어 상파뉴를 영어식으로 읽은 것으로 프랑스 상파뉴 지역에서 전통의 양조 방법으로 생산된 거품 와인을 말한다. 동일한 방법으로 만들었더라도 상파뉴 지방에서 생산되지 않은 와인이라면 샴페인이라고 부를 수 없으며 자연스럽게 탄산이 생기게 하는 전통 방식이 아닌 탄산을 인위적으로 주입한 거품 와인 역시 샴페인이라 부를 수 없다.
샴페인이라는 단어의 이미지에 맞게 LVMH그룹 산하의 모에샹동, 붸브클리코등이 유명한데 개인적으로는 앙드레 클루에를 좋아한다. 로버트 파커가 ‘복합미와 균형을 잘 갖춘 샴페인’이라 표현해 유명해진 샴페인이며 만화 <바텐더>에도 등장한 바 있다. 최근 이마트에서 자주 세일해 판매하니 샴페인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접해보셔도 좋으실 듯.
모든 술이 다 그렇지만 샴페인은 특히나 절정의 시간이 짧다. 마개를 여는 순간 탄산은 새어 나오고 그 탄산이 유지되는 시간은 길지 않다. 빛나는 청춘의 시간이 짧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샴페인이 특히나 기쁜 축하의 자리에서 소비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삶은 기쁜 순간보다 슬프고 어려운 순간이 길고 청춘의 시간보다는 그 시절을 추억하는 시간이 길게 마련이다. 그럼 우리는 이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거창할지도 모르겠지만 드리스에게 샴페인 잔을 건네는 필립을 보며 나는 유전자를 전달하는 늙은 생명의 모습을 보았다. 태어나서 살다가 빛나는 청춘의 바통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것, 우리 본능 속에 새겨진 유전자의 사명을 다하는 모습이 보였다.
필립과 드리스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동물이지만 또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관계였을 것이다. 그렇게 필립은 드리스에게 샴페인을 건넸고 드리스는 또 그 샴페인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할 것이다. 그렇게 각각의 존재는 각각의 역사를 만들고 지우며 소멸하지만 유전자는 남을 것이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드네. 아들이 20살이 되는 그때, 꼭 멋진 샴페인 한 병을 열어야겠다. 사랑한다 내 아들.
- 언터처블: 1%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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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올리비에르 나카체, 에릭 토레다노
출연 프랑수아 클루제, 오마 사이
개봉 2012.03.22.
데렉 / 술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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