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

샤말란 표 히어로 유니버스가 <언브레이커블>, <23 아이덴티티> 이후, 개봉을 앞둔 <글래스>로 매듭짓는다. <식스 센스>로 반전의 아이콘이 된 M. 나이트 샤말란. 그러나 영화광들 사이에서 감독의 최고작은 <식스 센스>가 아닌 <언브레이커블>이다. 처음부터 3부작의 기획 아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었다. M. 나이트 샤말란은 <23 아이덴티티>를 발표하면서, 극의 후반부에 두 작품의 세계관이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을 넣었다. 3부작을 종결지을 <글래스>를 보기 전에, <언브레이커블>과 <23 아이덴티티> 두 편의 이야기에 담긴 포인트들을 정리해봤다.


언브레이커블

Unbreakable, 2000

1. 현실에 발 디딘 히어로

<언브레이커블>에는 엄청난 CG의 위용도, 화려한 액션도 없다. 바로 그 점이 히어로를 현실 적으로 만드는데, 그렇다고 해서 현실세계에 있을 법한 히어로인가 묻는다면, 그 또한 아니다. <언브레이커블>의 설정을 들여다보자. 선천적으로 뼈가 잘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 탓에 인생의 1/3을 병원에서 보낸 한 남자 엘리야(사무엘 L. 잭슨)가 있다. 그는 신체적 결함 때문에 고통 속에 보내야만 했던 인생을 한탄하며, 한편으로는 어딘가 자신과 정반대의 인간이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물음을 줄곧 품어왔다.


2. 절대 다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팔 다리가 부러진 상태였던 엘리야. 그는 체내에서 단백질을 합성하지 못해 작은 충격에도 수시로 골절상을 입어왔고, 때문에 유년기 그의 별명은 '유리 선생(Mr. Glass, 미스터 글래스)'이었다. (3편의 제목이 <글래스>다.) 그런데 그가 애타게 찾던 정반대의 인간, 강철 몸을 가진 남자가 발견된다. 남자의 이름은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 평범한 경비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가 처음으로 자신이 남다른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되는 사건은 끔찍했던 기차 탈선 사고 때문이었다.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고 말았던 큰 사고에서 살아난 사람은 데이빗이 유일했다. 더구나 그는 털끝 하나 다친 데 없었다.


3. 슈퍼파워를 알게 된 남자

이렇게 데이빗이 자신의 '슈퍼파워'를 받아들이는 과정엔 관객과 동일한 눈높이의 고민이 수반됐다. 슈퍼파워라니.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관객들처럼 데이빗도 그렇게 생각해서 믿지 못한다. 그러나 자꾸 그를 혼란스럽게 하는 단서가 발견된다. 그러고 보니 그는 오랜 세월 일하며 병가 한 번 낸 적이 없었고, 심지어는 태어나 단 한 번 아파본 기억도 없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160kg 짜리 프레스를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도 그는 몰랐다. 유리 몸을 가진 남자와 슈퍼파워를 가진 남자의 대결 구도. 이 같은 <언브레이커블>의 설정은 다분히 만화적이지만 데이빗이 안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과 결부되면서 균형을 맞춘다. 만화적인 매력에 현실적인 몰입감까지. 영화광들의 환심을 뺏기에 충분했다.


4. 유명 감독들이 꼽은 최고의 히어로 무비

<언브레이커블>은 독특한 히어로의 탄생을 알렸다. 평범한 사람이 새로운 능력을 얻는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날 때부터 히어로였던 사람이 그 힘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전개는 새롭다. 그 점에 매료된 많은 감독들이 <언브레이커블>을 최고의 히어로 무비로 치켜세웠다. 특히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의 '올 타임 베스트 20' 리스트에 <언브레이커블>을 꾸준히 언급해 왔고, 조스 웨던, 기예르모 델 토로 등의 감독들도 슈퍼 히어로 영화를 언급할 때 이 작품을 빠뜨리지 않았다. 해외 유명 영화 유튜버 크리스 스턱만, 제레미 잔스도 <언브레이커블>을 샤말란 감독의 최고작으로 꼽았다.


23 아이덴티티

Split, 2016

1. 24개의 인격

샤말란의 히어로 3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에 해당하는 <23 아이덴티티>. 그러나 진입 장벽을 느낄 만한 스토리 상의 연관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관람 순서에 구애를 덜 받는다. <언브레이커블>이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한 남자의 서사가 중심이었다면, <23 아이덴티티>는 23개의 인격을 가진 한 남자의 서사로 채워진다. 다중인격 소재는 관객들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가진 인격의 수는 23개나 된다. 제목은 23개의 자아를 말하고 있지만, 영화 후반부에 하나의 인격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이 남자의 비밀이 밝혀진다.


빌리 밀리건

2. 빌리 밀리건 실화

<23 아이덴티티>는 끔찍한 범죄 실화인 '빌리 밀리건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1978년, 빌리 밀리건이라는 남자의 강도, 강간이 무죄 판결을 받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빌리가 저질렀지만 빌리가 저지른 일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5세 때부터 처음으로 '크리스틴'이라는 다른 인격을 만들어 냈다. 크리스틴은 영국 국적의 3세 여아였고, 난독증을 가졌지만 캔디를 좋아하는 순수한 아이였다.

빌리 밀리건

그가 다른 인격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 어린 시절 겪은 불우한 일화들의 영향이라는 견해가 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은 이혼했고, 새아버지는 빌리가 4살 때 자살했다. 게다가 9살에는 양아버지에게 성적으로 학대를 당했다. 빌리 밀리건은 다른 인격을 하나씩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 수는 24개에 달한다. 폭력성이 강한 인격 '필립'이 저지른 강도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됐고, 그 이후 '아달라나'라는 레즈비언 여성의 인격이 저지른 여대생 강간 사건도 벌어졌다.

빌리 밀리건(우측)

결국 빌리는 3회의 납치 사건, 3회의 무장강도 사건, 4회의 강간 사건으로 기소됐다. 하지만 그를 수사하던 경찰들도 상상을 초월하는 빌리의 능력에 두 손을 들었다. 어떤 인격은 아랍어와 아프리카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하고 수학, 물리학, 의학 분야에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가진 것은 물론, 어떤 인격은 전자제품에 능숙함을 보였다. 하나의 기억이 발현되는 동안 다른 인격들과의 기억 공유가 없다는 점이 입증되면서 빌리 밀리건은 무죄 선고를 받았다.


3. 제임스 맥어보이

<23 아이덴티티>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렸다. 여학생을 밀실에 가둔 납치극을 두고 "전형의 답습"이라는 평가가 나온 반면, <글래스>에도 다시 등장할 예정인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의 탈출기를 높게 사는 평도 있었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지만 다중인격자 역할로 영화를 장악한 배우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엔 이견없는 찬사가 나왔다. 물론 <23 아이덴티티>는 24개의 인격을 모조리 늘어놓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스물네 사람의 자기소개로 그칠 공산이 크고, 적당히 눙친 스토리는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한 수 명의 캐릭터는 성별도 직업도 나이대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맥어보이는 본래 인격인 '케빈'을 비롯해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베리', 상냥한 여성 '패트리샤', 9세 소년 '헤드윅', 강박증을 가진 '데니스', 해박한 역사 지식을 갖춘 '오웰' 등의 캐릭터로 변신에 성공했다. 그는 대사 하나 바꾸지 않고도 표정과 동작의 디테일을 달리 한 온갖 애드리브를 준비한 채 현장에 나타났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그가 9세 소년 '헤드윅'을 연기할 때는 실제로 키가 3인치는 줄어든 것처럼 보였고, 행동대장 '데니스'를 연기할 때는 몸도 더 단단해진 것처럼 보였을 정도"라며 극찬을 표했다.


씨네플레이 심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