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크리스틴 스튜어트, 데인 드한.

퇴폐미. 그것을 뭐라 정의할 수 있을까? 사전적 정의는 “도덕이나 풍속, 문화 따위를 벗어난 데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다. 이루 설명할 순 없지만 분명 ‘느낌적인 느낌’이 온다. 치명적인 분위기를 뿜어내며 사람을 매혹시키는 그런 것. 퇴폐미로 유명한 배우로는 데인 드한이나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있다. 이제부터 소개할 내용은 퇴폐미를 대표하는 배우가 아니라 영화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매혹적인 퇴폐미를 감상하며 배우에게 느꼈던 퇴폐미 이상의 ‘느낌적 느낌’을 만나보길 바란다.


퇴폐미의 정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기다란 송곳니를 드러낸 채 입을 벌리며 인간에게 다가가는 뱀파이어. 그들의 하얀 이에 붉은 피가 스며들 때는 잔혹하면서도 매혹적이다. 그들은 인간의 피를 마시지만 외양은 인간과 똑같다. 비슷하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묘한 퇴폐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뱀파이어 커플 아담(톰 히들스턴)과 이브(틸다 스윈튼)도 존재 자체가 퇴폐적이다. 영원을 살아가는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즐긴다. 피로 만든 아이스크림 바를 나눠 먹고, 음악을 느끼며 춤을 추는 등.

뱀파이어 영화라고 꼭 퇴폐적인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선 아담과 이브의 세상을 끝없이 부유하는 듯이 힘 빠진 모습 속에 강렬한 피가 섞이니 설명할 수 없는 퇴폐적인 분위기가 생겨났다. 감독 짐 자무쉬도 푸르고 어두운 색을 많이 사용해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감각적인 음악을 덧입혀 퇴폐미를 완성시켰다. 아담과 이브의 사랑, 그리고 감독의 연출로 퇴폐미의 정수라고 해도 아깝지 않을 영화가 탄생했다.


퇴폐적인 눈빛과 혁명의 꿈

<몽상가들>(2003)

<몽상가들>

매혹적인 눈빛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에바 그린의 눈빛을 보면 사람을 홀리는 눈빛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다. 프랑스 68혁명을 배경으로 한 <몽상가들>에서 에바 그린의 퇴폐적인 눈빛은 더욱 도드라졌다. 철창 앞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손을 뒤로 묶은 채 매튜(마이클 피트)를 쳐다보던 이사벨(에바 그린). 그는 고혹적인 눈빛 하나만으로 매튜를 다가오게 했다. 프랑스인 남매 이사벨과 테오(루이 가렐), 그리고 미국인 매튜의 영화광 모임은 그렇게 시작됐다. 세 사람은 프랑스 68혁명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함께했다.

이사벨의 눈빛과 혁명은 닮아 있다. 혁명은 자유를 향한 처절한 사투다. 이사벨의 눈빛도 그를 속박하는 것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듯하다. 혁명과 퇴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단어는 없다. 혁명을 더 혁명답게 하는 것이 퇴폐가 아닐까. <몽상가들>을 보면 퇴폐가 어떻게 혁명과 공존하며 시너지를 내는지 확인할 수 있다.


결핍 속 피어나는 사랑의 퇴폐미

<퐁네프의 연인들>(1991)

<퐁네프의 연인들>

퇴폐적이라고 하면 밝고 화사한 것보다는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가 연상된다. 그리고 부유보다는 결핍이 생각난다. 하루로 따지자면 새벽일 것이다. 새벽은 해가 뜨지 않아 불안하고, 해가 뜨지 않아 낭만적이다. 불안과 낭만이 공존하는 새벽, 그 속에서 퇴폐미가 피어난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새벽의 퇴폐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다. 눈이 멀어가는 화가인 미셸(줄리엣 비노쉬)과 주정뱅이 곡예사 알렉스(드니 라방). 그들은 퐁네프 다리에서 먹고, 자고, 사랑을 나눈다.

새벽은 그들에게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을 주었고, 해 뜨기 직전의 설렘과 두근거림도 주었다. 깊은 밤, 알렉스는 센 강에서 미셸에게 수상스키를 태워준다. 흔들리는 카메라와 빠르게 질주하는 보트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낭만적이다. 해가 뜨면 퇴폐는 사라진다. 하지만 결핍으로 가득한 미셸과 알렉스가 만들어낸 온전한 사랑 속에서 불안과 낭만으로 점철된 새로운 퇴폐가 피어났다.


<토탈 이클립스>

바람구두에서 세어 나오는 퇴폐미

<토탈 이클립스>(1995)

‘속이 터진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나는 떠났다. 나의 외투는 더할 나위 없이 닳아빠져 어쩜 그렇게도 어울리는지!’ 다음은 19세기 활동했던 천재 시인 랭보의 시, <나의 방랑>의 일부분이다. ‘바람구두를 신은 사내’라는 별명을 지니며, 시만큼이나 퇴폐미로 가득 찬 삶을 산 랭보. 그에게 방랑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토탈 이클립스>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16세의 미소년 랭보를 연기했다.

아름다운 미모로 내뱉는 거친 욕, 창문 밖으로 옷을 던지며 나체가 되어 가기 등. 영화 속 그는 천진난만한 눈빛과 개구진 웃음으로 악행을 일삼는다. 또한 그는 아슬하게 외줄 타는 듯한 삶을 살았던 자신과 정반대의 인물인 폴 베를린느(데이빗 듈리스)와 끈적이는 사랑도 나눈다. 이런 불협화음들이 짙은 퇴폐를 자아내고 있다. 19세기라는 시대적 배경과 초록색 술 압생트도 퇴폐미를 일구는 데 한 몫 했다. 거리에 마차가 다니던 시대의 고전미는 영화의 질감에 잘 녹아있다. (고흐가 사랑했던) 초록색 술 압생트가 연한 민트색으로 희석 되어가는 모습에도 매료된다.


퇴폐적인 메타포의 향연

<스토커>(2013)

<스토커>

이 영화는 온갖 메타포(은유)로 가득 차 있다. 내레이션 혹은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행동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메타포는 집요하게 생각하고 해석해야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섹시하고 퇴폐적이다. 주인공의 성장을 담아낸 <스토커>의 퇴폐미는 감독 박찬욱과 미술감독 윙 리의 합작으로 완성되었다. 연출로 의미를 부여했고 미술로 상징을 표현해냈다.

영화 속 가장 인상적인 상징은 ‘알’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데미안>의 구절처럼 성장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알을 깨뜨려야 한다. 알의 이미지는 주인공 인디아(미아 와시코브스카)의 주변에 가득하다. 부엌에 놓인 알 모양의 장식품, 그가 요리를 도우며 깨는 알, 정원에 놓인 구 모양의 돌 등.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알은 결국 깨어지고 인디아는 성장한다. 솔직히 상징은 어렵고, 모호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미지가 부딪히며 발생시키는 힘은 엄청나며 그것에 전율하게 된다. 알 외에도 <스토커>에 나온 무수한 메타포를 음미하며 감상해보자.


씨네플레이 임채은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