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색채를 지배한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 영면에 들다
![1994년 왕세자였던 찰스3세 영국 국왕이 호크니와 만나고 있는 모습[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6-06-15/38902c73-56d6-474e-bd8d-8fe5c5277678.jpg)
영국의 영혼이자 현대미술의 절대적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가 11일(현지시간) 영면에 들었다. 1994년, 왕세자 시절의 '찰스 3세'와 조우한 그의 모습은 시대의 아이콘 그 자체다. 영국을 넘어 전 세계가 그의 부재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찰스 3세는 "그는 예술계의 거인이자 진정한 요크셔인"이라며 깊은 상실감을 드러냈다.
권위를 부순 '노란색 크록스', 영원한 자유를 남기다
![2022년 버킹엄궁에서 열린 행사에 노란색 크록스를 신고 참석한 호크니(앞줄 맨 왼쪽)[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6-06-15/ad0aeffe-2a0d-43d4-9524-eeef413ec88a.jpg)
2022년 버킹엄궁, 엄숙한 왕실 행사에 등장한 '노란색 크록스'. 이는 '데이비드 호크니'만의 경쾌한 천재성과 억누를 수 없는 자유로움의 상징이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리사 낸디' 문화장관은 그의 독창적 유산이 후대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기렸다. 찰스 3세 역시 "그의 빛나는 창의성은 전 세계 미술관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가둔 캔버스, 전 세계의 경이로움이 되다
![데이비드 호크니 대표작 '더 큰 첨벙'ⓒ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 Tate, London [서울시립미술관 제공]](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6-06-15/734f1072-1a1f-4ac1-be1d-53001c1fd378.jpg)
쏟아지는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화폭에 가둔 명작 '더 큰 첨벙'. 1978년부터 미국 LA에 정착한 그는 세상의 따스함을 예술로 환원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LACMA' 수석 큐레이터는 그가 창조한 경이로운 시각적 유산을 추모했다. 영국 '테이트 브리튼'과 프랑스 '퐁피두 센터' 역시 "일상의 아름다움을 일깨운 무한한 창의성의 소유자"라며 미술계의 막대한 손실을 애도했다. 내년 예정된 대규모 회고전은 그의 불멸을 증명할 것이다.
작위를 거절한 예술가, 인류의 역사에 색채로 영생하다
![201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서 메릿 훈장 받는 호크니[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6-06-15/c908abcd-c2bd-42e3-b8a9-d31b061aff68.jpg)
201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메릿 훈장'을 수훈받는 순간에도 그는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가였다. 수차례의 기사 작위와 여왕의 초상화 의뢰마저 정중히 거절했던 그의 꼿꼿한 신념. 올해 초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수훈은 그의 세계적 위상을 재증명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혁신을 탐구한 '데이비드 호크니'. 그의 캔버스는 멈췄지만, 그가 남긴 찬란한 색채는 인류의 역사 속에 영원히 박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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