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짝사랑 세계' 포스터 [판씨네마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6-06-22/34f408af-8cbb-480f-b7cf-5ce99af19a1e.jpg)
일본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꼭 챙겨본다는 작가가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사카모토 유지이다. 일본 드라마계에 꾸준히 명작을 남기는 사카모토 유지는 근래 영화 시나리오로도 좋은 작품을 거듭 탄생시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와는 〈괴물〉을, 츠카하라 아유코와는 〈첫 번째 키스〉를 탄생시킨 사카모토 유지는 드라마 〈콰르텟〉,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도이 노부히로 감독과 한 번 더 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지난 6월 24일 개봉한 〈짝사랑 세계〉이다.

〈짝사랑 세계〉는 한집에서 살고 있는 세 여성 미사키(히로세 스즈), 유카(스기사키 하나), 사쿠라(키요하라 카야)의 일상을 담고 있다. 회사에 출근하는 회사원 미사키, 양자역학 수업을 듣는 대학생 유카, 수족관에서 일하는 사쿠라. 이렇게 서로 다른 하루를 보내는 세 사람이지만, 매일 같은 식탁에서 먹고 밤늦게 영화를 보며 잠에 들곤 한다. 그러다 미사키가 출근길에 자주 마주치는 한 남자(요코하마 류세이)에게 관심을 보이며 세 사람의 일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아마 영화 좀 봤다 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오프닝이 지나자마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할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청춘물처럼 포장지를 해두었지만, 그것보다 훨씬 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때문에 〈짝사랑 세계〉는 아무리 감명 깊게 봤다고 해도 글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영화의 본질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영화의 겉면에 드러나지 않은 핵심 요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 이하 내용은 〈짝사랑 세계〉의 핵심 전개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음을 명시한다.

〈짝사랑 세계〉는 일종의 사후 세계를 그리고 있다. 같은 날 사고를 당한 미사키, 유카, 사쿠라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남겨졌다. 존재하는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은 유카의 추리에 따라 양자 세계에 머무르고 있다고 추측한다. 영화는 그런 그들에게 작은 희망을 남겨두긴 하지만 죽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세계의 정론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변하는 것은 없다고 못 박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세 사람은 그 과정을 통해 본인들의 처지를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일상’을 꾸준히 이어간다.
이런 식으로 〈짝사랑 세계〉는 예측 불가능의 삶 속에서 안타까운 끝을 맞이한 이들,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냥 뻔하게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기에 그들이 존재했다는 식의 위로가 아닌, 우리가 들여다볼 수 없는 미시세계 어딘가에서 영원히 숨 쉬고 있을 모습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방식이다. 그러면서도 피해자들이 영원한 절망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처럼 다시금 한 발자국 나아가는 과정을 비추는 것 또한 상처가 되지 않는 위로로 관객들에게 건네진다.

이 과정을 또 세 인물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것 또한 사카모토 유지 작가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모두의 삶이 다르듯 다른 부분에서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열망하는 미사키, 유카, 사쿠라의 모습은 각 캐릭터의 성격을 또렷하게 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세 인물의 공통된 과거와 개인사 모두를 풀어낸다.
어쩌면 무척 차가운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짝사랑 세계〉를 인간미 넘치는 따스한 이야기로 승화하는 건 프로덕션이다. 아기자기한 감성이 물씬 풍기는 세 사람의 집과 개성이 도드라지는 침실, 세 인물의 성격이 묻어나는 패션까지 미술적인 부분에서 과하지 않게 밸런스를 지키며 영화의 감성을 살린다. 실제 현실과 세 사람이 현실이 교묘하게 교차되는 구간에선 영화의 설정을 직관적으로 시각화해 더욱 인상적이다.
세 배우의 케미스트리와 연기력은 훌륭하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히로세 스즈는 물론이고 〈무한의 주인〉, 〈99.9〉 시리즈의 스기사키 하나, 드라마 〈우주를 누비는 쏙독새〉의 키요하라 카야가 캐릭터의 감정선과 매력을 한층 더 진하게 만들며 관객들에게 여운을 남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이지만, 하나의 명제 앞에서 각자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세 인물의 성격을 체화한 부분이 돋보인다. 또 각 인물의 서사에서 맞이하는 클라이맥스 지점에서 세 배우가 보여주는 감정적 표현력과 집중력은 눈물이 맺히지 않을 수 없다.

역시 소문만큼 훌륭한 각본가다운 사카모토 유지의 이야기, 경력만큼 점점 무르익은 도이 노부히로의 연출력, 그리고 젊은 여성 배우들의 작품을 휘어잡는 존재감까지. 놓치면 아쉬운 작품인데도 특정 멀티플렉스 독점 개봉이어서 그런지 좀처럼 흥행 순풍을 타지 못해 안타깝다. 이 더운 여름날, 높아진 불쾌지수를 풀어줄 섬세한 드라마를 원한다면 시원한 극장에서 〈짝사랑 세계〉를 만나보길 권한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