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16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첫 번째 추천작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아시아 프라이드’ 섹션은 아시아에서 제작된 다채로운 퀴어영화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현시대를 반영하며 날카로운 주제 의식을 담은 작품을 선정해, 아시아 각국 성소수자들의 삶을 가감 없이 소개한다. 올해는 인도, 미얀마, 튀르키예 등 다양한 국가의 단편 열한 편을 선보인다.
올해 아시아 프라이드 섹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비하르 호수의 마녀〉다. 무서운 마녀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인도의 한 마을, 겁 많은 아이 미투와 10대 누나 이시타가 함께 자란다. 부모의 무지와 분노를 견디며 자라나는 두 아이에게 마녀의 위협이 드리우고, 신비와 마법이 그들의 성장을 감싼다. ‘히즈라’ 공동체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작품이 힘을 갖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도와 파키스탄, 네팔에 걸쳐 살아가는 이들은 평화롭고 풍족한 시절에는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갈등과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희생되고 가장 먼저 지워진다. 감독은 설화의 외피를 빌려 이 신분과 계급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애증의 열대우〉는 집에서의 외로움과 일터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소년 카우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출소하면서 카우는 아버지와의 유대를 회복하려는 마음과, 직장에서 짝사랑하는 상대에게서 아버지의 자리를 찾으려는 욕망 사이에 놓인다. 〈알바스〉는 튀르키예 시골에서 자라는 한 아이의 이야기다. 아이는 자신에게 강요되는 남성성의 역할과, 동화 속에서 발견한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늑대’가 되기를 강요받을수록 아이의 내면과 바깥세계 사이의 간극은 더욱 선명해진다. 영문 제목 〈Wolf’s Egg〉가 가리키는 대로, 늑대는 이 영화에서 되어야 할 모습이면서 아직 되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다.

김승환 프로그래머는 올해 아시아 라인업을 두 권역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동북아시아의 영화가 여전히 유교적 가족주의 영향 아래 있고,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영화가 신분과 계급의 문제로 되돌아오는 것은 한계가 아니라 아시아 퀴어영화가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정체성”이라며, “서구가 1980년대에 기독교 사상과 에이즈의 시대를 통과하며 자신의 퀴어영화를 만들어냈듯, 지금 아시아는 자신의 조건 위에서 자신의 영화를 쓰고 있다”라고 짚었다. 이처럼 올해 ‘아시아 프라이드’ 섹션은 다양한 아시아 성소수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동시에, 유능한 아시아 감독들의 개성적인 작품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자리를 선사할 예정이다.

‘스페셜 프라이드’ 섹션은 감독과 배우, 국가와 시대 등 다양한 테마에 따라 퀴어영화를 선정해 특별전 및 회고전으로 소개하는 섹션이다. 올해는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디지털로 복원한 〈찜〉 〈체인지〉, 『한국퀴어영화사 2022-2025』 출간을 기념하는 특별상영 여섯 편, 그리고 ‘커뮤니티 보이스’ 특별전이 한자리에 모였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한국 스크린을 거쳐 간 퀴어영화를 다섯 평론가의 비평과 다섯 감독의 인터뷰로 기록한 『한국퀴어영화사 2022-2025』는,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가 2019년부터 이어온 ‘한국퀴어영화사 시리즈’의 연장선에 놓인 작업이다. 이번 특별상영은 그 기록이 다루는 시간을 대표하는 여섯 편을 극장에서 다시 만나는 자리다.


제12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공작새〉(2022), 제45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과 각본상을 받은 〈너와 나〉(2023), 최은영 작가의 동명 단편을 옮긴 애니메이션 〈그 여름〉(2023), 여성주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강유가람 감독의 첫 극영화 〈럭키, 아파트〉(2024), 제62회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받은 〈3670〉(2025), 그리고 김조광수 감독의 〈꿈을 꾸었다 말해요〉(2025)가 이어진다. 트랜스젠더 왁킹 댄서부터 탈북민 게이, 노년 레즈비언 커플과 열여덟 살 소녀의 첫사랑까지, 이 시기 한국 스크린이 품어온 얼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의미있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커뮤니티 보이스’는 국내에서 독립적, 자생적으로 퀴어 콘텐츠를 만들어온 단체와 개인을 조명하는 특별전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제작과 배급의 길을 열어온 이들의 작업은 한국 퀴어 콘텐츠 생태계의 또 다른 축이다. 올해는 제작사 ‘매치박스(MATCHBOX)’의 작품들과 ‘색동영화판 시즌3’의 단편들이 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우선, 매치박스의 장편 〈비틀린넥타이: 더 무비〉(감독 이해림)가 상영된다. 이어 다양한 결의 퀴어 로맨스를 밀도 있게 담아낸 숏폼 단편 앤솔로지 프로젝트 ‘키스키스X스’가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BL 장르에 머물렀던 전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 시즌은 GL 서사까지 세계관을 확장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기성 문법을 탈피하고 독창적인 시선을 보여준 신진 감독들의 작품을 엄선해 특별 상영한다. 〈렉오프 키스온〉 〈귀신의 첫사랑〉 〈학생회장과 키스마크〉 〈언더 더 스킨〉 〈시선고정〉 다섯 편이다.
이번 시즌의 결은 뚜렷하다. 풋풋한 캠퍼스 로맨스를 넘어 호러와 스릴러까지 끌어안으며 퀴어 로맨스의 장르적 확장을 시도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통제욕과 그것을 역이용하는 권력의 전복을 아슬아슬하게 그려낸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잣대에 갇힌 인물들이 사랑이라는 강력한 동기를 만나 어떻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되찾아가는지, 그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감정의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여기에 ‘색동영화판’ 시즌3 ‘프리즘 오브 컬러’가 더해진다. 색동영화판은 게이 당사자들이 워크숍 형태로 모여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온 자생적 영화 프로젝트로, 전문 영화인이 아닌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손으로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다. 세 번째 시즌의 이름은 ‘프리즘 오브 컬러’. 한 줄기 빛이 프리즘을 지나 여러 색으로 갈라지듯,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는 게이의 삶도 저마다 다른 색을 띤다는 관점이다. 올해 상영되는 네 편은 실제로 서로 다른 삶을 비춘다. 이동민 감독의 〈49의 마음〉은 50대 게이의 새로운 사랑을, 정장혁 감독의 〈드림 스테이지〉는 드랙퀸들의 연대를, 김상백 감독의 〈둘을 위한 상자〉는 오래된 연인의 일상을, 박재현 감독의 〈사라〉는 신앙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을 다룬다. 네 편 모두 이번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다.
이처럼 ‘커뮤니티 보이스’는 온라인에서 시작된 제작사의 작업과 당사자들이 손수 꾸린 워크숍의 결과물이 같은 극장에서 나란히 상영되는 자리다.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는 퀴어 콘텐츠를 만드는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며, 앞으로도 한국 퀴어영화 커뮤니티의 발전에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한편, 개막작 〈블랙 볼〉을 필두로 전 세계 34개국 116편의 퀴어영화를 소개하는 연대의 장 제16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는 오는 11월 5일(목)부터 11월 11일(수)까지 CGV 피카디리1958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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