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좋은 건 누구든 쉽게 의견을 말할 수 있단 점이다. 국내에도 청원 사이트가 생기자 수만, 수십만의 청원이 올라왔듯 해외 유명 청원사이트 ‘체인지’(change.org) 역시 매일 수많은 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최근 1만 5000명을 돌파한 ‘조니 뎁의 잭 스패로우 복귀’ 청원도 이 사이트 통해 이뤄졌다. 세계 각지의 영화 관객들은 어떤 걸 청원했을까.


왕좌의 게임 작가들, 스타워즈에서 물러나라

Keep Game of Thrones writers away from Star Wars!

<왕좌의 게임>

요즘 가장 핫한 이슈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떡락’이었다. 시즌 8로 막을 내린 <왕좌의 게임>은 그 이전까지 쌓아온 명성이 모두 무너질 만큼 형편없는 전개를 보여줬다. 그렇게 <왕좌의 게임>으로도 욕 먹기 벅찰 텐데, 하필 이 작가진이 <스타워즈> 시리즈의 새로운 삼부작 집필을 맡고 있는 상황. 이 청원은 3주 만에 3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 청원 게시자가 <왕좌의 게임> 원작자 조지 R.R. 마틴의 이름을 빌린 게 포인트.

원작자도 말린다는 그들의 필력


기독교를 모독하는 <데드풀2: 순한 맛>의 포스터를 수정해라

Change the Deadpool poster to not mock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 Day Saints

해리 앤더슨 ‘세컨드 커밍’(왼쪽), <데드풀 2: 순한 맛> 포스터

원래 종교는 건드리면 안 되는데, 데드풀이 그런 걸 신경 쓰겠나. <데드풀 2>에서 잔인한 장면을 덜어내고 코믹한 장면을 추가한 <데드풀 2: 순한 맛>은 데드풀이 하얀 로브를 입은 포스터를 사용했다. 청원자는 이 포스터가 해리 앤더슨의 ‘세컨드 커밍’(재림)을 본뜬 것을 밝히며 “설령 종교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다른 작품을 표절한 것”이라고 반대 청원을 게시했다. 이 청원은 5만 명이 넘게 서명했고, 이 청원 때문인지 몰라도 IMDB엔 해당 포스터가 없다.


<불리> 심의 등급을 R에서 PG-13으로 낮춰달라

MPAA: Don’t let the bullies win! Give ‘Bully’ a PG-13 instead of an R rating!

<어바웃 레이>의 심의 등급을 PG-13으로 바꿔달라

Change the Rating of "3 Generations" to PG-13

<불리>

무작정 근거 없는 주장만 올라온다면, 청원 사이트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이 두 청원은 논리 정연한 주장으로 실제 심의 결과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다큐멘터리 <불리>는 집단 따돌림의 목적이 된 청소년과 그 가족들의 일상을 담았다. 첫 심의 결과는 R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였다. 케이티 버틀러란 청원자는 <불리>의 심의를 PG-13, 청소년 관람가로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7학년 시절, 내가 사물함에서 책을 꺼내고 있을 때, 몇몇 아이들이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그 얼굴로 학교에 왜 오냐’며 손가락을 부러뜨렸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많은 청소년들과 어른들이 이 중요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서명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청원은 무려 51만 명이나 서명했고, 미국 심의 기관 MPAA는 재심의를 통해 <불리>를 PG-13 등급으로 낮췄다.

<어바웃 레이>

<어바웃 레이>도 비슷한 케이스. 이 영화는 엄마 매기(나오미 왓츠), 외할머니 돌리(수잔 서랜든)와 함께 사는 레이(엘르 패닝)가 성전환 수술을 하겠다고 밝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성 정체성을 찾는 십대의 이야기지만, 첫 심의 결과는 R 등급이었다. 청원자 블레어 더키는 자신 또한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며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이런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없어서 스스로를 인정하는 게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 영화에 마약, 폭력 묘사, 선정성이 없으니 PG-13으로 등급을 낮추고,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십대들이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약 3만여 명의 서명을 받은 청원으로 <어바웃 레이>는 PG-13 등급으로 변경됐다.


<번 더 스테이지> 이탈리아 개봉 청원

"Burn The Stage: The Movie" in Italia

<번 더 스테이지> 넷플릭스 입점 청원

Burn The Stage on Netflix

<번 더 스테이지: 더 무비>

아미(ARMY, 방탄소년단의 팬덤명)들이 “주모!”를 외칠 만한 청원도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다큐멘터리 <번 더 스테이지: 더 무비> 관련 청원이다. 사실 내용은 별 거 없다. 하나는 <번 더 스테이지: 더 무비>가 이탈리아에 개봉하게 해달란 거고, 하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못 본 아미들을 위해 넷플릭스에 등록해달란 것이다. 이외에도 비슷한 청원이 자잘하게 올라와있다. 둘 다 2만여 명이 서명했지만, 아쉽게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번 더 스테이지>는 이탈리아에서 아직 개봉하지 못했고, 유튜브 오리지널 콘텐츠라 넷플릭스에도 입점하지 못했다.

<번 더 스테이지: 더 무비> 포스터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에 "위 리브 인 어 소사이어티"라는 대사를 추가해달라

Make Joaquin Phoenix say "We live in a society" in the new Joker film

<조커> 호아킨 피닉스

"위 리브 인 어 소사이어티"(We live in a society)는 미국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인터넷 밈이다. 의역하자면 “우린 이딴 세상에 살고 있어”라는 조소 섞인 대사로, 조커 사진에 주로 쓰이고 있다. 한마디로 이 청원은 인터넷 밈를 영화 대사로 활용해달라는 것. 청원자는 조커와 관련한 ‘게이머 조커’라는 밈도 활용해 책 읽는 할아버지 앞에서 ‘포트나이트’를 하는 손자를 보며 조커가 이 대사를 하는 식이면 된다고 예를 들었다. 우리나라 인터넷 문화에 비교하면 “이거 실화냐?” 같은 대사를 써달라는 건데, 토드 필립스 감독이 이런 걸 받아들일 리가 없다. 그럼에도 이 청원은 8개월 동안 5만 7천여 명의 서명을 받았고 지금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위 리브 인 어 소사이어티" 관련 사진들


스탠 리를 위한 짧은 장례식을 열어달라

a short marvel funeral for stan lee

스탠 리의 고향 뉴욕 맨하탄에 동상을 세워달라

Place a Statue of Marvel Legend Stan Lee in his hometown of Manhattan, New York City, NY.

<캡틴 마블>의 스탠 리 추모 오프닝

마블 코믹스 명예회장 스탠 리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그는 잭 커비와 함께 스파이더맨, 판타스틱 4 등의 캐릭터를 만든 창시자이자 마블의 정신적 지주로 존경을 받아왔다. 특히 카메오 출연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둬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때문에 그에 대해 여러 청원들이 올라왔는데, 이 두 청원이 가장 많은 서명을 받았다. 특히 동상을 세우자는 청원은 무려 13만 2천여 명을 넘었다. 물론 이런 건 마블이나 주 정부의 손에 달린 일이지만, 어쩐지 스탠 리가 영화에서처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 같다.


레아를 디즈니 프린세스로 공식 인정해달라

Make Leia an official Disney princess

레아 역의 캐리 피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왼쪽),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원래 <스타워즈>는 디즈니와 생판 상관없는 시리즈였다. 2012년 디즈니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판권을 사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디즈니는 시퀄 삼부작이 제작하면서 레아 공주 역의 캐리 피셔를 복귀시켰다. 안타깝게도 캐리 피셔는 삼부작 촬영을 모두 끝마치지 못한 2016년, 세상을 떠났다. 이 청원은 그를 그리워하는 팬들의 소망이 담겨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공주 캐릭터들을 일컫는 ‘디즈니 프린세스’에 레아 공주도 올려달란 것인데, 총 14만 5867명이 서명하며 레아 공주를 사랑한 팬들의 저력을 보여줬다. 물론 레아는 디즈니 프린세스에 오르지 못했지만.

합류한다면 이런 그림이 나올 것이다. 위 그림은 팬아트.


윌 스미스를 체포하라

Arrest Will Smith

<알라딘>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윌 스미스를 체포하라니. 윌 모펫이란 청원자는 윌 스미스가 무슬림 테러리스트에게 15만 달러를 지원해줬다고 주장하는 청원을 올렸다. 그는 장황하게 미국 법을 인용해 그가 체포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윌 스미스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모아 어떤 테러 단체에 지원했는지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 말도 안되는 청원은 50명 정도만 서명한 채 마무리됐다. 참고로 윌 스미스는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평론가들의 평가 듣지 마세요!

Don't listen to film criticism

이런 청원 사이트의 진짜 재미는 ’병맛’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청원은 구체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쓰지 않았다. 다만 “평단과 대중들 사이에 단절된 부분이 있다”며 “당신은 평단이 뭐라 하든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다소 계몽적인(?) 문구가 인상적이다. 영화 평점으로 유명한 ‘로튼 토마토’에 X 표시를 해놓은 청원 이미지를 보면 아마도 로튼 토마토의 평점 시스템에 반발하는 관객으로 보인다. 2016년 시작된 청원은 아직 2만 2천여 명에서 머물러 있으며, 아직 로튼 토마토가 쌩쌩한 걸 보면 그의 계몽운동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듯하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