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윅’이 돌아왔다. 죽은 아내가 선물해준 개와 자신의 차 포드 머스탱을 양아치 무리들에게 잃고 분노했던 그의 복수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크고 거대해질 모양새다. 단순한 농담처럼 시작된 이 저예산의 액션 영화는 한물갔다고 여겨졌던 키아누 리브스의 부활을 알리며 55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동안의 얼굴만큼이나 불사신에 가까운 흥행력을 보였다. 1편이 전 세계적으로 제작비의 6배가 넘는 흥행을 기록했고, 2편 역시 4배에 가까운 수익을 올리며 흥행에 가속도를 붙인 이 시리즈는 이번 3편에 이르러선 미국에서만 1억 5천만 달러를 넘기며 16년 만에 1억불을 넘긴 키아누 리브스의 작품이자 자신의 출연작 중 세 번째로 높은 흥행을 기록한 영화가 되었다.
액션 영화의 새로운 진화, 존 윅 시리즈
90년대 <폭풍 속으로>와 <스피드>를 시작으로, 2000년대엔 <매트릭스> 삼부작 그리고 2010년대엔 <존 윅> 시리즈까지 성공시키며 어리버리 얼뜨기 청년으로 풋풋하게 데뷔했던 모습보다 액션스타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지난 30년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그의 무표정하면서 뻣뻣한 자태는 지상 최강(?)의 사나이 척 노리스 개그만큼이나 밈(meme)화 되어 이제는 무시 못 할 수준의 액션히어로로 격상되었다. <존 윅>에선 아예 시치미를 떼고 이를 더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데, 1편에선 77명을, 2편에선 무려 128명을, 그리고 이번 3편에도 94명을 쉴 새 없이 죽여 나간다. 마치 이것이 액션영화의 본질이라는 듯 온갖 방법으로, 또 숙달된 조교의 시범으로 가차 없이 적들을 처치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기가 막히다 못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존 윅> 시리즈를 연출하고 제작한 건 키아누 리브스의 스턴트 대역 출신이자 무술감독을 역임한 채드 스타헬스키와 데이빗 레이치다. 비록 2편부턴 데이빗 레이치가 연출에서 빠지지만 그럼에도 시리즈의 특징과 미덕을 잘 간직한 건 각본가 데릭 콜스타드가 계속해서 시리즈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2편에서 합류한 <매트릭스>의 동료 로렌스 피시번과 피터 스토메어, 커먼에 이어 3편에선 뉴 페이스인 할리 벨리와 안젤리카 휴스턴, 마크 다카스코스 등이 모습을 비추며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데이빗 레이치를 따라 <아토믹 블론드>와 <데드풀2>, <홉스 앤 쇼>로 간 1편의 스탭들 대신 채드 스타헬스키는 2편의 새로운 스탭들을 3편에도 기용했는데, 그 와중에도 전혀 변화가 없는 건 바로 타일러 베이츠와 조엘 J. 리처드가 맡은 음악이다.
감각적이고 롹킹한 타일러 베이츠의 사운드
간지 폭풍에, 후까시 만땅인 이 시리즈에서 그럴듯한 무드를 조성하는 건 바로 락킹하면서 동시에 강한 엠비언트 성향의 사운드 덕분이다. 사실 이는 타일러 베이츠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이기도 한데, 그는 영화음악가로 데뷔하기 전 여러 인디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었고, 2014년부터는 마릴린 맨슨 밴드의 9집과 10집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도 활약한 바 있다. 타일러 베이츠는 90년대 초부터 영화음악을 맡아온 나름 경력이 긴 영화음악가이지만, 활동 초기엔 주로 마이너 저예산 작업물들을 이어오던 터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나마 2000년대에 들어서 실베스터 스탤론이 나온 리메이크작 <겟 카터>와 스티븐 시걸의 액션물 <하프 패스트 데스>, 이색적인 오마주 영화 <바다스> 등을 통해 메이저로 올라설 기회를 잡게 된다.
그가 반등하게 된 건 일련의 신인 감독들과의 작업이 성공하면서부터였다. 가수였지만 영화는 처음이었던 롭 좀비나 뮤직비디오 감독이었던 잭 스나이더, 트로마 출신의 각본가 제임스 건 등과 의기투합하며 자신의 진가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언급한 세 명의 감독 면면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의 음악은 비주얼이 부각된 호러나 액션, 그리고 웃음이 즉각적으로 터지는 코미디 장르에서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처럼 감정을 오래 간직하고 캐릭터의 깊이를 더하는 테마를 선사하는 대신, 순간적인 반응이나 감정과 결합해 영화적 상황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 그의 음악은 감각적이며 휘발성이 강한 편으로, 전면에 등장하기보단 삽입곡들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거나 충실히 언더스코어링을 수행한다.
액션 스코어의 진수, 존 윅 시리즈
<새벽의 저주>나 <300>, <왓치맨>과 <써커 펀치>는 물론, 두 편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슬리더>, <슈퍼>를 비롯해 리부트된 <할로윈> 등의 작품들에서 선보였던 강한 비트감에 디스토션이 잔뜩 걸린 기타의 울부짖음, 반복적인 루프와 중독성 강한 리듬으로 가득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결합해 인간의 육정칠욕 백팔번뇌를 더욱 강렬하게 포장하고 극대화시킨다. 규모를 부여하는 오케스트레이션과 미려하고 이국적인 코러스는 덤이다. 네오 느와르이자 스타일리쉬한 액션물인 <존 윅>시리즈에선 이런 특징들이 더욱 부각돼 도시의 밤거리를 거니는 외로운 늑대의 복수를 위로하듯 낭창거리는 기타 사운드와 일렉 비트감이 어우러져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고 귀를 얼얼하게 만든다. 가히 액션의, 액션에 의한, 액션을 위한 스코어라 말할 수 있다.
1편이 ‘존 윅’이란 캐릭터를 소개하며 분위기만 잡았다면, 2편에 들어선 이 세계관의 확장을 꿈꾸며 다양한 단서들을 배치해놓고 있으며, 3편은 마치 전면전을 알리는 소개장과도 같다. 음악은 이에 따라 점점 더 스피드해지고, 파워풀하게 변해간다. 2편의 하이라이트인 박물관 액션 씬에서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리믹스해 독특한 재미를 안겼다면, 3편의 하이라이트인 컨티넨털 호텔 액션 씬에선 <사계> 중 ‘겨울’ 선율을 리믹스해 연계성을 주었다. 특히나 모잠비크 드릴을 시전하는 존 윅의 총격음과 맞춘 타격감의 비트는 상당히 인상적이고 화려한 인장을 남긴다. 온갖 장르를 섭렵한 최강의 다재다능한 세션/투어링 드러머 길 샤론이 참여해 약동하는 액션에 걸맞는 파워풀한 박자를 내뿜는다.
존 윅은 계속된다. ‘존 윅 유니버스’로의 확장
3편의 눈부신 성공으로 라이온게이트는 재빠르게 4편의 제작과 개봉일(21년 5월 21일)을 알렸다. <헝거 게임> 이후 모처럼만에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이들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존 윅>은 4편과 함께 스핀오프로 TV시리즈 <컨티넨털 호텔>과 <발레리나>도 기획 중에 있다. 타일러 베이츠와 조엘 J. 리처드의 음악이 어디까지 쓰일지 모르겠지만, 다가올 4번째 챕터에도 함께 하리란 건 자명해 보인다. 액션 스코어로서 뿐만 아니라 일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로도 손색없이 들을 법한 이 신명나는 음악은 그간 영화음악가로서 2% 부족했던 타일러 베이츠의 역량을 드러낸 결과물로 인정받을 듯 싶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의 존 윅은 최소 35명을 죽이고 있을 것이다.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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