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오래 살아남는 방법, 뭐가 있을까. 흥행이 가장 쉬운 답이지만, 오랜 시간 기억되는 영화라면 흥행과는 별개의 매력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캐릭터의 특정한 포즈, 제스처로 오래오래 기억되고 있는 영화들을 모아봤다. 십여 년 전, 한국 사회를 강타한 ‘검증된’ 영화들을 모았으니 독자 여러분들은 과거에 이 동작들을 따라 해본 적이 있는지 천천히 회상해보시면 더 재밌을 것이다.


이소룡 → 코 튕기기

<정무문>

34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소룡,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영화계에 무궁무진한 영향력을 미쳤다. 특히 이소룡은 배우 특유의 시그니처 포즈나 의성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뵤” 같은 독특한 의성어와 엄지로 코를 튕기듯 밀어내는 동작은 이소룡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다. 엄밀히 따지면 이소룡이 이 동작을 창조했다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 동작을 매력적이게 승화한 배우는 이소룡이 전무후무하다. 싸움이 벌어지기 직전 긴장감과 상대를 도발하는 자신감, 거기에 이소룡 특유의 날카로운 표정이 더해지는 것이 압도적. 그가 자신의 피가 묻은 손을 살짝 핥는 것도 (일반 관객들이야 해볼 일 없겠지만) 후대 영화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일상에서 가끔 보여줄 만큼 좋아한 제스처인 듯하다.

피를 핥는 장면도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성룡 → 취권

<취권>

여기서 소개할 제스처 중 가장 쉽고, 또 다양한 베리에이션을 가진 <취권>의 성룡 자세가 되시겠다. 술에 만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보법을 사용하는 ‘취권’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묘사하듯 액션 영화 마니아들을 ‘이소룡 파’와 ‘성룡 파’로 나눌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다소 구부정하게 서서 비틀거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세대 구분 없이 누구든 따라 할 수 있는 게 포인트. 여기에 명치 앞에 위치한 뒤 손을 위아래로 뱅글 뱅글 돌리면 화룡점정. 이후 성룡이 보여주는 수많은 아크로바틱 액션에 비해 쉽기 때문에 성룡 하면 바로 취할 수 있는 포즈이기도 하다.


영웅본색 → 쌍권총

<영웅본색>

<영웅본색> 하면 생각나는 건? 아마 달러를 태우는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돈을 태울 수는 없는 법.

※ 범죄입니다.

그래서 <영웅본색>에 흠뻑 빠진 관객들이 선택한 것. 1. 바버리 코트에 선글라스를 끼기, 2. 손 모양으로 쌍권총 흉내 내기. 쌍권총 자세는 엄지와 검지를 편 양손을 앞으로 쭉 뻗으면 되기 때문에 당시 영화를 본 고등학생 이하 관객들이 한 번쯤 따라 해보는 자세였다. 거기에 자신의 몸을 전후좌우로 던지면서 자세를 취하면 금상첨화. 하지만 다칠 우려가 있으니 착한 어린이와 어른들은 몸 던지기까지 따라 하지 말자.

<영웅본색 2>


매트릭스 → 총알 피하기

<매트릭스>

1999년 개봉한 <매트릭스>는 여러 면에서 영화 연출의 진보를 가져왔는데, 그중에서 찰나의 액션을 길게 보여주는 ‘불렛 타임’은 관객들을 환호하게 했다. 특히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총알을 피하기 위해 뒤로 눕듯이 허리를 꺾는 장면은 <매트릭스>의 상징적인 명장면으로 남았다. 실제로는 할 수 없는 자세인데도, 느릿느릿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도전정신을 불태우게 한다. 아마 이 영화가 지금 나왔더라면, 여러 명이서 해당 장면을 시도해보는 ‘인싸 인증’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혼자 따라한다면 이쪽이 적당한 난이도.


타이타닉 → 백허그

<타이타닉>

<타이타닉>을 안 본 사람도 이 자세는 다 알 것이다. 운행 중인 배에서 두 팔을 벌린 채 바람을 맞는 그 장면. 이렇게 두 팔을 벌린 자세는 먼 과거부터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라 전에도 많은 캐릭터들이 선보인 자세지만, 뒤에서 누군가 백허그 하듯 허리를 잡아주는 로맨틱함이 더해지면서 특별한 포즈로 기억되고 있다. 굳이 배가 아니더라도 높은 곳이나 유명한 관광 명소에선 이 자세를 취하는 관광객 한둘을 만나봤을 것이다.


슈퍼맨 → 한 손만 뻗은 비행 자세

<슈퍼맨>

한 손을 쭉 뻗고 나는 이 자세, 어린 시절 한 번쯤을 취해봤을 것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초강력 외계인 슈퍼맨이 하늘을 유영할 때 쓰는 자세다. 크리스토퍼 리브의 귀티 나는 미소가 더해져 여유롭고 평화로운 슈퍼히어로의 상징으로 통한다. 슈퍼맨의 비행 자세는 여러 가지 있지만, 이 자세가 유독 인기도 많고 유명하다. <슈퍼맨> 이후 대중매체에서 하늘을 나는 캐릭터, 특히 유쾌한 성격의 캐릭터는 ‘나 슈퍼맨이다~’라면서 이 자세를 취하는 필수 코스가 존재한다. 국내에서도 빨간 보자기를 두른 어린아이가 슈퍼맨 자세로 뛰어내렸다가 다쳤다는 이야기가 한때 심심치 않게 들렸다.

영화에서도 나름 다양한 자세를 선보였다.

그래도 코믹스, 영화를 막론하고 대표 이미지는 이 한 손을 뻗은 비행.


스파이더맨 → 스파이더웹 발사 포즈

<스파이더맨 2>

이건 국내 한정 영화로 유명해진 제스처다. 본토 미국에서 스파이더맨은 슈퍼히어로 중에서도 정말 인기가 많은 축에 속하니까 영화 나오기 전에도 유명한 자세였다. 2002년에 개봉한 <스파이더맨>은 그동안 애니메이션으로만 소개됐던 스파이더맨을 전 국민이 다 알 만큼 유명하게 만들었다. 특히 중지와 약지를 주먹 쥐듯 손바닥에 갖다 대는 ‘스파이더웹’ 발사 자세는 당시 10대들이 입으로 “슉 슉” 소리를 내며 따라 하는 포즈로 등극했다. 마블 영화가 전 세계 영화계를 꽉 잡고 있는 지금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슈퍼히어로’ 하면 떠오르는 슈퍼맨 자세를 밀어낼 만큼 파격적인 인기를 모았다.

스파이더웹은 ‘피터가 발명했다‘는 설정도 있지만, <스파이더맨>에선 갑자기 생긴 능력이라 발사 자세를 알아내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터미네이터 → 작별의 따봉

<터미네이터 2>

‘좋아요’ 아니다. 이건 정말 슬픈 작별 인사다. <터미네이터 2>에서 T-1000(로버트 패트릭)을 제거한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이 “마지막 남은 스카이넷 칩”을 제거하기 위해 스스로 용광로에 들어가면서 취하는 제스처다. 자신을 보내면서 눈물을 보이는 존 코너(에드워드 펄롱)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 위로하는, 혹은 격려하는 T-800의 인간미가 느껴진다. 딱 봐도 상남자인 아널드 슈왈제네거가 하는 자세라서 강해보이지만 다시는 못 만날 상대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라서 여러 가지 감정을 자아내는 희대의 제스처 중 하나이다. 이 씁쓸함을 아는 관객이라면 헤어지면 언제 또 볼지 모르는 지인과의 작별에서 취해봤을 것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