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의 아홉 번째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한국 극장가에 걸렸다. 영화 곳곳에 과거의 명곡들을 채워 발견의 기회까지 선사했던 타란티노는 1969년의 배경에 맞춰 1960년대에 만들어진 음악들로만 영화 전반을 채웠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속 음악을 하나하나 곱씹어봤다.
Treat Her Right
Roy Head & The Traits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최대 흥행작 <바운티 로>에서의 활약상과 약간의 인터뷰로 시작하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로이 헤드의 노래 'Treat Her Right'로 2시간 40분에 달하는 대장정의 문을 열어젖힌다. 릭과 클리프(브래드 피트)가 릭의 험악한 얼굴 그림이 떡하니 세워진 집을 나서는 차 안에선 라디오 방송국 KHJ의 로고송과 함께 'Treat Her Right'이 울리고,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로만 폴란스키 부부가 LA로 오는 여정이 오프닝 크레딧을 채운다. 1964년 데뷔한 로이 헤드는 이듬해 발표한 'Treat Her Right'로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오를 만큼 커리어 초기에 성공을 거뒀다. 비틀즈의 'Yesterday'가 없었다면 1위까지 차지했겠지만.
Summertime
Billy Stewart
클리프는 제작자 마빈 슈바르츠(알 파치노)가 병 주고 약 준 덕에 멕시코인 앞에서 눈물을 찔찔 짠 릭을 집에 내려준 뒤에야 퇴근한다. 어김없이 차에 타자마자 라디오에선 음악이 나오는데, 첫 곡은 빌리 스튜어트가 조지 거쉰의 클래식 'Summertime'을 리메이크한 트랙이다. "브르르르르르르르~ 춬첰 추쿠췈" 흥겨운 추임새로 시작하는 노래는 릭의 사유지를 빠져나가는 어마어마한 스피드를 돋보이게 한다. 그나저나 '첫 곡'이라고? 타란티노는 클리프가 자기 집으로 가는 1분을 살짝 웃도는 분량의 여정에만 조 카커의 'The Letter' 라이브 실황, 밥 시거 시스템의 'Ramblin' Gamblin' Man', 빌리지 콜러스의 'Hector'까지 총 4개의 노래를 짧게짧게 이어붙였다. 아직 낮의 기운이 더 선명할 때 출발해 온갖 차들을 앞질러 달려 자동차 영화관이 한창 운영되고 있는 밤에야 도착할 정도로, 클리프의 집은 LA 중심가에서 아주 먼 곳에 있다. 게다가 그가 사는 곳은 저 옆 자동차 영화관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공터에 딸린 트레일러. 릭과 클리프의 집, 더 나아가 계급이 그만큼 멀다는 걸 단박에 보여주는 연출이다.
Hush
Deep Purple
타란티노는 곧이어 샤론 테이트와 로만 폴란스키가 집을 나서 플레이보이 맨션에 열리는 파티장으로 가는 신을 붙였다. 클리프의 귀갓길에 노래 4개가 쓰였다면, 샤론 테이트 부부의 여정에는 딱 한 곡이면 족하다는 듯이 딥 퍼플의 'Hush' 하나만 썼다. 빌리 조 로얄이 1967년 발표한 'Hush'를 다음해 커버해 딥 퍼플의 데뷔 싱글로서 발표됐다. 로얄이 탁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원곡이 브라스 세션으로 박력을 더했다면, 딥 퍼플 버전은 (밴드의 황금기 상징과도 같은 이언 길런의 샤우팅에 비하면 한결) 부들부들한 로드 에반스의 보컬과 후반부를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로 장악해버리는 존 로드의 오르간 연주가 특히 인상적이다. 작렬하는 오르간으로 파티장에 향하는 속도감을 강조함과 동시에 매무새를 다듬는 마고 로비의 눈부신 자태를 찬탄하듯이 사용됐다. 'Hush'는 한국 관객들에겐 브릿팝 밴드 쿨라 셰이커가 1996년 리메이크 한 버전으로 더 친숙할 것이다. 샛노란 옷을 입고 파티에 샤론은 부캐넌 브라더스의 'Son of a Lovin' Man'에 맞춰 몸을 흔든다.
Good Thing
Paul Revere & the Raiders
클리프는 릭을 촬영 현장에 데려다주고 다시 릭의 집으로 돌아와 케이블을 수리한다. 샤론 테이트가 집에서 틀어놓은 폴 리비어 앤 더 레이더스의 'Good Thing'이 그 근방에 울려퍼지고, 클리프는 그걸 들으면서 스턴트맨에서 잘렸던 때를 돌이켜본다. 명색이 스턴트맨인데 혼자 고용인 집에 와서 케이블을 고쳐야 하는 클리프의 처지에 'Good Thing'의 흥겨운 리듬은 어쩐지 얄궃게 들린다. 'Good Thing' 활용이 더 흥미로워지는 건 그 다음이다. 이 노래가 실린 앨범 <The Spirit of '67>(샤론이 친히 레코드를 트는 덕분에 앨범 커버가 확연히 보인다)의 프로듀서 테리 멜처는 찰스 맨슨과 작업하려다가 엎었다는 이유로 맨슨의 원한을 샀던 인물이다. 마치 멜처의 솜씨가 거친 'Good Thing'이 불러온 것마냥, 맨슨은 샤론의 집에 찾아와 테리를 찾고 샤론은 테리는 전 주인이고 우리가 새로 이사왔다고 대답한다. 실제로 테리 멜처는 샤론 테이트가 맨슨 패밀리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The Radiogram
Bernard Herrmann
타란티노는 노래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의 스코어를 빌려와 서스펜스를 북돋는 걸로도 정평나 있다. <킬 빌 1>(2003) 속 간호사 복장을 한 엘 드라이버(대릴 한나)가 브라이드(우마 써먼)가 있는 병원에 찾아오는 신에 버나드 허먼의 'Twisted Nerve'를 인용한 바 있는 그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다시 한번 허먼의 스코어를 썼다. 클리프가 맨슨 패밀리의 본거지가 된 스판 농장에서 주인인 조지(브루스 던)를 찾는 대목. 타란티노의 장기 중 하나인 서스펜스 퍼트리기를 배제한 티가 역력한 이번 영화에서 가장 '쫄리는' 순간이라 할 만하다. 맨슨 패밀리 일당들의 서늘한 눈초리와 별별 구실을 갖다붙여 클리프와 조지를 못 만나게 하려는 스퀴키(다코타 패닝)를 뚫고 조지의 방으로 가는 길, 허먼 특유의 서늘한 스트링으로 가득한 'The Radiogram'이 관객들의 숨을 조인다 . 조지가 눈이 멀었다는 말 때문에, 행여나 안구가 뽑힌 조지의 시체가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이 밀려든다. 'The Radiogram'은 허먼이 오랜 파트너 알프레드 히치콕의 <찢어진 커튼>(1966)을 위해 만든 사운드트랙의 일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찢어진 커튼>에서는 허먼의 스코어를 들을 수 없다. 히치콕과 영화사는 허먼에게 주연배우 줄리 앤드류스가 주제가를 부를 수 있을 만한 팝-재즈 풍의 음악을 요청했지만, 허먼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물을 가져오자 그걸 거절하고 다른 음악가를 기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California Dreamin'
José Feliciano
60년대 말 히피 문화를 대표하는 명곡 'California Dreamin'은 왕가위의 <중경삼림>(1994)에 주요하게 쓰이면서 영화 팬들에게 더 널리 알려졌다. 히피족의 활보가 만연했던 1969년을 배경으로 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도 'California Dreamin'을 썼다. 저 유명한 마마스 앤 파파스의 버전이 아닌 푸에르토리코 뮤지션 호세 펠리시아노의 1968년 커버다. 영화에서도 살짝 언급되는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1968) 사운드트랙을 편곡/지휘한 조지 팁튼이 어레인지를 맡았다. 여자 둘 남자 둘의 보컬이 어우러진 원곡은 저 앞으로 나아가는 동적인 기운이 강한 반면, 이 커버 버전은 훨씬 정적이다. 홀로 노래하는 펠리시아노의 보컬은 퍽 쓸쓸하게 들리고, 그로 인해 노랫말이 담고 있는 한여름 캘리포니아를 향한 노스탤지어의 정서가 보다 강조됐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선 릭, 클리프, 샤론 세 사람의 어느 하루가 교차편집 되는 기나긴 대목을 마무리 되는 시점에 흘러, 인물들에게 오늘 하루 수고 많았다는 위로를 건네는 것처럼 들린다.
Out Of Time
The Rolling Stones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영화를 채운 각개 노래들의 물리적 분량이 작은 편이다. 릭이 푸시캣을 처음 만날 때 나오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Mrs. Robinson'을 비롯한 대부분이 30초를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 롤링 스톤즈의 'Out of Time'은 대표적인 예외다. 'Out of Time'은 영화 마지막 파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점에 등장해 어느 평화로운 한나절을 3분 동안 나열하는 내내 흘러나오면서, 마치 롤링 스톤즈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감흥을 안긴다. 롤링 스톤즈가 매머드급 밴드로 올라서는 시점에 발표한 <Aftermath>에 수록된 이 노래는 몇 개월 후 믹 재거가 직접 프로듀스를 맡은 크리스 팔로 커버버전으로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노래하는 믹 재거의 목소리와 롤링 스톤즈의 연주 톤이 꽤나 밝은 반면, 멜로디는 작별의 무드가 역력해, 그 온도차가 만들어내는 매력이 상당하다.
Twelve Thirty
(Young Girls Are Coming To The Canyon)
The Mamas and the Papas
타란티노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 대신 그들의 또 다른 명곡 'Twelve Thirty (Young Girls Are Coming To The Canyon)'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배치했다. 앞서 언급한 스판 농장 신과 더불어 영화에서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노래를 사용하는 방식은 폴 리버러 앤 더 레이더스의 'Good Thing'을 썼을 때와 비슷하다. 샤론의 집에서 평화롭게 듣는 노래가 바깥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긴장을 부풀리는 식이다. 듣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에너지가 쭉쭉 들어오는 듯한 'Twelve Thirty'지만, 후렴부에서 마마스 앤 파파스 네 멤버의 보컬 하모니가 차차 쌓이다보면 어떤 기운이 팽창하다 못해 곧 뻥 터져버릴 것 같은데, 타란티노는 바로 그 지점을 간파해 피날레 직전의 텐션을 발산해냈다.
You Keep Me Hangin' On
Vanilla Fudge
이례적인 느린 호흡으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러닝타임 161분을 채운 타란티노는 드디어 마지막 15분에 본색을 드러낸다. 피칠갑의 시네아스트의 면모를 기대했던 관객들이라면 심드렁하게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다가 여기에 다다르면 곧장 자세를 바로 잡을 수밖에 없을 터. 이 피날레를 장식하는 건 1960년대 대표적인 싸이키델릭 록 밴드 바닐라 퍼지의 'You Keep Me Hangin' On'이다. (영화 <드림걸스>의 전신이 되는) 걸그룹 슈프림즈가 발표한 곡을 1년 뒤 바닐라 퍼지가 불구덩이 같은 싸이키델릭 넘버로 탈바꿈 했다. 바닐라 퍼지가 내놓은 첫 싱글이기도 한 이 트랙은 데뷔 앨범에 7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으로 수록됐는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OST에는 타란티노가 직접 편집한 3분 남짓한 버전이 실렸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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