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스 아웃>의 대니얼 크레이그와 크리스 에반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2017)로 격렬한 찬반 논쟁을 일으킨 라이언 존슨이 오랜만에 미스터리 스릴러로 돌아왔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떠오르는 추리극이 떠오르는 이야기만큼이나 '제임스 본드' 대니얼 크레이그와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를 비롯한 친숙한 배우들이 대거 한 자리에 모인다는 점으로 일찌감치 기대치를 끌어올렸다. 크레이그와 에반스 외에 <나이브스 아웃>을 그득 채운 배우들의 캐릭터와 그들의 전작들을 소개한다.


할런

크리스토퍼 플러머

저명한 추리소설 작가 할런 트롬비는 가족들과 85번째 생일 파티를 즐기고, 다음날 죽은 채로 발견된다. 추리소설 작가의 죽음이 추리소설의 사건 같은 형국. 영화는 죽은 할런은 주변 사람들의 플래시백으로 불러오면서 이 이상한 살인사건을 점점 더 미궁으로 몰고 간다.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대기만성형 배우라 할 만하다. 일찌감치 <사운드 오브 뮤직>(1965)라는 히트작을 남겼지만 연기 잘하는 배우로서 두루 인정 받기 시작한 건 마이클 만의 <인사이더>(1999)부터였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2010)으로 처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그는 이듬해, 시한부를 선고 받고 커밍아웃 해 전혀 다른 인생을 사는 노인을 연기한 <비기너스>(2011)로 82세 나이에 드디어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다시 한번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올 더 머니>(2017)에서는 희대의 갑부 J. 폴 게티를 연기했다.

<비기너스>

<올 더 머니>


마르타

아나 디 아르마스

피살자가 죽기 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사람. 사건의 키를 쥐고 있을 확률이 높다. 피붙이들과는 저마다 트러블이 있었던 할런과 가장 친밀했던 외국인 간호사 마르타는 거짓말 하면 구역질 하는 체질 때문에 의도치 않게 트롬비 가족의 비밀을 브누아 탐정에게 고백한다. 물론, 마르타가 품고 있는 비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아 보이지만. 쿠바 출신의 아마 디 아르마스는 2006년 데뷔해 오랫동안 스페인 영화계에서 활동하다가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공포영화 <노크 노크>(2015)로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에서 홀로그래픽 A.I 조이를 연기해 크게 주목 받은 디 아르마스는 올해 <나이브스 아웃>까지 총 네 작품을 선보였다. 디 아르마스의 커리어는 앞으로 더욱 화려해질 전망이다.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 제임스 본드를 돕는 CIA 요원을 맡은 데 이어,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마릴린 먼로의 새로운 전기영화 <블론드>에 먼로 역으로 캐스팅 됐다.

<블레이드 러너 2049>

<007 노 타임 투 다이>


월트

마이클 섀넌

할런의 막내 아들 월트는 아버지의 신간을 1년에 2권씩 내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월트의 무리한 요구에 할런은 생일에 돌연 출판 권리를 회수해버리겠다고 통보한다. 성치 않은 거동 때문에 더더욱 불안해 보이는 월트는 평화와는 거리가 있는 캐릭터만 도맡는 배우 마이클 섀넌이 연기했다. 빌 머레이/앤디 맥도웰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1993)에 단역으로 출연해 영화계에 입성한 섀넌은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와 2010년대를 여는 기대주로 손꼽힌 제프 니콜스 감독의 <테이크 셸터>(2011)로 가파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니콜스와 다시 작업한 <머드>(201)와 <미드나잇 스페셜>(2016)과 더불어 <라스트 홈즈>(2014), <녹터널 애니멀스>(2016),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 <리틀 드러머 걸>(2018)) 같은 수작에 출연하면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다.

<테이크 셸터>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조니

토니 콜렛

<나이브스 아웃>에서 할런의 며느리 조니는 토니 콜레트가 연기한 <유전>(2018)의 애니가 드문드문 겹쳐 보인다. 자유로운 인생을 누리다가 파산해버리는 바람에 딸의 등록금을 죽은 남편의 부친에게 이중 청구 하다가 덜미잡힌 조니는금방이라도 상대를 공격할 듯한 신경질적인 태도를 발산한다. 호주 출신의 콜렛은 <엠마>(1996)로 할리우드 활동을 시작한 이후 <벨벳 골드마인>(1998), <식스 센스>(1999), <디 아워스>(2002), <미스 리틀 선샤인>(2006) 등을 거쳐 왔고, 그 작품들 속 콜레트는 공격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2010년대 즈음부터 작업하는 영화들의 완성도가 점점 낮아지던 와중, 제작자로 참여한 신인감독 아리 애스터의 입봉작 <유전>에서 광기에 휩싸인 엄마 애니를 연기해, 자기를 둘러싸고 있던 배우로서의 한계를 단번에 뛰어넘어버렸다. 올해 최고의 넷플릭스 드라마 중 하나로 손꼽히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선 한껏 건조한 얼굴로 연쇄강간사건을 파헤치는 토니 콜렛을 만날 수 있다.

<유전>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린다

제이미 리 커티스

할런의 가족들이 저마다 살인 동기를 갖고 있지만, 첫째 딸 린다의 경우만큼은 예외다. 린다 자신이 아닌, 그의 남편과 아들(크리스 에반스)이 할런과 갈등을 겪고 있다. 부동산 업계의 거물이라 돈 문제는 걱정이 없기에 가능한 평화랄까. 하지만 결국은 평화를 유지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평온해 보였기에 더욱 폭력적이다. 할리우드 황금기의 명배우 자넷 리와 토니 커티스 사이에서 자란 제이미 리 커티스는 공포영화의 고전 <할로윈>(1978)의 히로인 로리 역을 맡아 영화배우로 데뷔해, 이후 몇 년간 공포영화에 주로 출연했다. 댄 애크로이드와 에디 머피 주연의 코미디 <대역전>(1983)을 통해 '호러 퀸' 이미지를 벗어던진 후에는 코미디물에 자주 출연해왔다. 제임스 카메론/아놀드 슈왈제네거 콤비의 <트루 라이즈>(1994)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동안 간간이 <할로윈> 시리즈에 가담해온 커티스는 데이빗 고든 그린이 연출한 <할로윈>(2018), <할로윈 킬스>(2020), <할로윈 엔즈>(2021)를 연달아 작업하면서 다시금 시리즈에 대한 애정을 불태우고 있다.

<할로윈>

<트루 라이즈>


리차드

돈 존슨

린다의 남편 리차드가 범인으로 의심 받는 이유는 추리소설 대가인 장인에게 불륜을 들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살인까지 저지를 일일까? 생각하게 되는데, 영화 역시 리차드를 범인으로 그리는 뉘앙스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그의 외도 사실을 유머 양념으로 곁들이는 식으로 활용할 뿐이다. 돈 존슨 하면 떠오르는 작품. 두말할 것 없이 <마이애미 바이스>다. 1984년 9월부터 1990년 1월까지 NBC를 통해 방영돼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시리즈에서 존슨은 주인공 소니 크로켓 형사 역을 맡아 연한 컬러의 수트에 라운드 티셔츠와 레이밴 선글래스를 곁들이는 스타일, 페라리의 데이토나 스파이더와 테스타로사 등의 자동차를 아이콘화 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그야말로 '날티' 나는 남자의 상징. 다만 화려한 시기는 거기까지였다. 1996년부터 5년간 방영된 <내쉬 브리지스> 정도를 제외하면 배우로서 뚜렷한 성과를 남기진 못했다. 평소 B급 액션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두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각각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 <마셰티>(2010)를 캐스팅 하기도 했다. 요즘엔 '그레이' 시리즈의 다코타 존슨의 아버지로 더 자주 언급될지도.

<마이애미 바이스>

<장고: 분노의 추적자>


메그

캐서린 랭포드

조니의 딸 메그는 할런의 가족들 가운데 유일하게 마르타와 우정을 나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우정이 박살나는 과정을 위해 기능한다. 부잣집에서 안온하게 자란 메그는 결국 가족의 이익을 위해 마르타를 배신한다. 외국인에 대한 상류층의 차별적인 시선을 원동 삼아 더 멀리 나아가는 <나이브스 아웃>의 변별점을 가능케 하는 결정적인 캐릭터인 셈이다. 캐서린 랭포드는 첫 드라마인 넷플릭스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 시즌 1,2에서 주연으로 활약해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주인공 사이먼의 절친으로 나오는 영화 데뷔작 <러브, 사이먼>(2018)도 호평 받았다. 최근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어른이 된 아이언맨의 딸로 출연했지만 그 대목이 모두 편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를 모았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러브, 사이먼>


제이콥

제이든 마텔

부잣집 자제의 귀티가 철철 넘치는 제이콥은 월트의 아들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의 가족 같아 보이진 않는다. 할아버지의 죽음과 브누아 탐정과 경찰의 등장으로 난리가 났는데도, 제이콥은 한시도 손에서 휴대폰을 내려놓지 않은 채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이야기는 귀담아 듣는 모양인지 또박또박 맹랑한 소리를 하고, 사건의 실마리가 될 만한 단서를 제시하기도 한다. 제이든 마텔은 11살에 대배우 빌 머레이와 함께 한 첫 장편 <세인트 빈센트>(2013)를 발표한 이래 레이첼 맥아담스와 <알로하>(2015)를, 나오미 왓츠와 <북 오브 헨리>(2017)를 작업하면서 좋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 차근차근 성장의 발판을 다졌다. <나이브스 아웃>은 <미드나잇 스페셜>(2016) 이후 3년 만에 마이클 섀넌의 아들 역을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또래 배우들과 함께 힘을 합친 <그것>(2017)은 공포영화 사상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그나저나 이름이 영 낯설게 느껴진다고? 데뷔 이래 아버지의 성 '리버허'를 써오다가 작년 말 어머니의 성 '마텔'로 정식 개명했다.

<세인트 빈센트>

<그것>


엘리엇

러키스 스탠필드

냉철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은근히 여유로운 브누아 탐정 곁에서 사건을 파헤치는 엘리엇 경위. 할런의 가족들과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는데, 정작 이렇다 할 단서를 짚어내지는 못한다. 매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어서 괜히 실소가 터지는 무능함이다. 러키스 스탠필드는 근래 들어 더욱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는 흑인 배우다. 당시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브리 라슨과 라미 말렉과 같이 한 <숏 텀 12>(2012)로 배우로 데뷔 해, <셀마>(2014), <스트레이트 아웃 오므 컴턴>(2015), <마일즈 어헤드>(2015), 도널드 글로버가 이끄는 TV 시리즈 <애틀란타> 등 흑인 문화를 둘러싼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점차 얼굴을 알렸다. 스탠필드의 활약상이 특히 돋보였던 <겟 아웃>(2017)과 <쏘리 투 바더 유>(2018)는 흑인 차별에 관한 서슬퍼런 시선으로 가득한 수작이었다. 2019년 스탠필드는 <나이브스 아웃>과 더불어 미국영화계에 가장 빛나는 재능으로 손꼽히고 있는 사프디 형제의 신작 <언컷 젬스>에도 출연했다.

<겟 아웃>

<쏘리 투 바더 유>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