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은 히어로 코믹스의 장대한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였다. 1938년 첫 등장 이후 지금까지 가장 대표적인 히어로 캐릭터였으며, 비단 히어로 코믹스 내에서만이 아니라 미국 만화의 역사 속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캐릭터가 바로 슈퍼맨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80주년을 맞은 슈퍼맨은 1938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현대사의 사건들을 겪어 온 캐릭터이기도 하다.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멀티버스를 이용해 오리지널 설정과는 다른 다채로운 형태로 변주되기도 했다.
그중 냉전 체제하의 소비에트 연방에서 활약하는 슈퍼맨을 다룬 작품이 바로 <슈퍼맨: 레드 선>이다. 크립톤 행성에서 보낸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오게 된 칼-엘이 미국이 아니라 소련에서 자랐다면? 이라는 독특한 가정을 전제로 한 이 작품은 2003년에 첫선을 보였으며 2010년에는 국내 정식 출간되기도 했다. 지난해 애니메이션화를 본격 발표해, 드디어 올해 공개될 <슈퍼맨: 레드 선>의 그는 어떤 모습일까.
냉전은 전 세계적으로 전쟁의 피폐함을 남기고 끝난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91년에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기까지 약 50년간 지속되었던 시기를 의미한다. 총구를 직접 들이밀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첩보전과 군비 경쟁 등이 주가 되는 비 전면전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미국과 소련의 대립은 각 국가가 토대로 삼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두 세력으로 나뉘어 세계를 양분하게 된다.
<슈퍼맨: 레드 선>은 바로 이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에 슈퍼맨이라는 초인적인 히어로가 존재했다면 소련 측이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라는 대체 역사를 다루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한 협동농장에 불시착한 칼-엘은 성장하면서 소비에트 연방의 히어로로 활동하지만, 스탈린 사후 그의 뒤를 이어 지도자 자리에 오른다.
모두가 공평하게 분배 받고, 모두가 동일한 행복을 공유하는 사회라는 공산주의의 이념은 이념 자체만으로는 유토피아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런 이념을 욕망과 본능에 시달려야 하는 인간이 아닌, 인간을 초월한 존재 즉 슈퍼맨이 이끈다고 한다면 실질적인 유토피아가 건설될 가능성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셈이다.
실제로 작중 슈퍼맨이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후, 그는 세상을 바꾸는 데 성공했으며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자발적으로 공산화하게 된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전 세계를 통일하기 직전까지 갔던 셈이다. 하지만 <슈퍼맨: 레드 선>의 슈퍼맨이 이런 통일을 이룩한 방식은 그리 평화롭지 않았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국가를 공격해 전쟁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뜻에 동의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인물들을 범죄자로 규정하고 뇌 개조를 통해 자유의지를 없애버리는 방식으로 불순분자들을 제거했던 것. 결론적으로는 공산주의 정권의 독재자나 다름이 없는, 그보다 더 악하고 강력한 존재로 거듭난 셈이었다.
슈퍼맨의 오랜 숙적인 렉스 루터는 여전히 슈퍼맨에 맞서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는 빌런으로 등장하며, 원더우먼은 슈퍼맨을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조력자로 등장한다. 배트맨 역시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는 배경은 동일하나 슈퍼맨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로서 그를 막아내기 위해 활약하는 존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부분은 슈퍼맨이 독재자로 치닫는 과정까지 가면서도 슈퍼맨이라는 캐릭터 본연의 의지와 목표, 선한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슈퍼맨이 그 모든 일을 행동에 옮긴 이유는 평화로운 세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 때문이니까. 배트맨 역시 슈퍼맨에 대항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불살의 의지는 저버리지 않는다.
얼핏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일률적인 비판으로 보일 수 있지만, 슈퍼맨의 행동과 주변 인물들의 움직임 그리고 최후의 반전까지를 총합해 보면 단순히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초인에 의해 수립된, 사람들이 바라 마지않는 행복한 이상향이 과연 인간의 진정한 행복인가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슈퍼맨이 겪는 개인적인 고뇌와 문제들은 좀 더 깊은 의문으로 독자를 끌고 간다. 독재자가 되었지만 사악한 존재는 아니었던 슈퍼맨에게 있어 진정 그가 바라 마지않았던 '평화로운 세계', '모두가 행복한 세계'란 어떤 것이었을까.
DC코믹스는 다양한 이슈와 캐릭터 변주를 통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져 왔으며, <슈퍼맨: 레드 선>은 그 질문들 중 유토피아에 대한 물음표라고 할 수 있다. 코믹스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제한 없는 상상력을 토대로 그려낸 <슈퍼맨: 레드 선>의 질문은 냉전이 종결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할지 모른다.
DC 확장 유니버스가 지난해 좋은 성과를 내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체 프로젝트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그리 호평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각각의 영화가 기대한 만큼의 매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 독자들을 매료시켜 왔던 DC 코믹스 원작만큼의 완성도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선 안된다.
원작을 비트는 캐릭터 변주는 오리지널 캐릭터가 확고한 매력을 그대로 가져갔을 때 더 흥미로운 법이다. <슈퍼맨: 레드 선>뿐만 아니라 여타의 DC 코믹스 작품들이 갖고 있는 매력을 더욱 견고하게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실사화 프로젝트 작업에 더 깊은 고민을 해 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희재 / PNN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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