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사화로 제작된 히어로 코믹스 캐릭터들을 전부 후보로 삼아도 아마 이 캐릭터만큼 오랫동안 ‘몰이사냥’을 당해야 했던 히어로는 없을 것이다. 바로 그린 랜턴이다.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

반지닦이? 아니다 이 악마야

지금은 데드풀로 입지를 확고히 한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가 주연한 DC 영화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이하 <그린 랜턴>)은 혹평 받은 영화의 대명사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소 재평가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히어로 코믹스 기반 실사화 프로젝트가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그중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이 독보적으로 실망스럽고 참혹한 수준이었냐 하면, 사실 그렇지도 않다.

그린 랜턴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잘 알고 애정이 있는 팬들 입장에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어 분노까지 치미는 영화임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하나 일반적인 영화 선에서 판단했을 때 이 영화가 그렇게 나쁜 영화냐 하면... 그렇지 않다. 훌륭한 영화라기엔 부족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망작의 표본으로 불리며 (반지닦이 같은)멸칭을 벗어나지 못할 수준이었냐면 그렇지는 않다는 뜻이다.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

그렇다면 왜 <그린 랜턴>은 망작의 표본이 되었을까? 팬들의 기대감은 높았는데, 그에 한참 못 미치는 퀄리티로 개봉했기 때문이었다. 개봉 당시 2011년은 DC 실사화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었고, <그린 랜턴>은 그린 랜턴 시리즈로서 최초의 영화화였다. 워너브러더스는 당시 길게 흥행 성공 가도를 이어온 <해리 포터> 시리즈가 완결되면서 새롭게 프랜차이즈를 유지할 만한 타이틀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여기에 선발주자로서 그린 랜턴을 택하고 향후 저스티스 리그로의 발전을 이어갈 계획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은 2대 그린 랜턴 할 조던으로, 저스티스 리그의 창립 멤버이자 오랫동안 리그의 자리를 지켜 왔던 캐릭터다. 가장 위대한 그린 랜턴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만큼 유명하기도 하고 강력한 의지와 무모하리만치 발빠른 행동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 바로 할 조던.

하지만 이런 성격적인 특성은 영화 내에서 거의 표현되지 않았으며, 메인 빌런인 패럴랙스가 원작과는 상반되게 중요도가 매우 낮은 형태로 그려진 데다 할 조던이 반지의 선택을 받고 나서 히어로로 거듭나는 과정이 안일하고 개연성 없게 그려져 전반적으로 구멍 많은 스토리라인을 자아내고야 만다.

코믹스의 할 조던

당연한 이야기지만, 히어로의 기원을 다루는 최초의 영화에서 우연히 능력을 얻은 평범한 인간 혹은 혈통에 의한 천부적인 재능만 갖고 있던 캐릭터가 '히어로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는 계기와 과정에 대한 개연성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에는 이 과정에 대한 묘사가 지독히도 안일했다. 거기에 중요한 조력자가 되어야 할 주변 인물들의 역할 역시 소모적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결국 히어로 무비로서의 강력한 장점을 어필하는 데 완전히 실패한 영화 <그린 랜턴>은 그린 랜턴을 차기 DC 실사화 프로젝트의 기수로 내세우기는커녕 리부트조차 꺼려지는 분위기를 만들고야 말았다. 주연배우 라이언 레이놀즈 역시 이 때문에 마음고생을 지독하게 했는지 본인이 제작자로 참여해 성공한 영화 <데드풀> 시리즈의 2편에서 그린 랜턴 대본을 받은 본인을 처리(...)하는 장면까지 집어넣고야 만다.

망작 필모그래피로 안쓰러워하기엔 이르다. 레이놀즈는 이 영화에서 현재의 부인이자 11살 연하인 블레이크 라이블리를 만나 재혼했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그린 랜턴 시리즈를 사랑하는 팬 입장에서 라이언 레이놀즈의 행보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레이놀즈 본인에게는 필모그래피 속에서도 유독 아픈 손가락인 것만은 공감이 가기는 한다. 더구나 히어로 코믹스 기반 영화에서 원작이 왜 인기 있었고 캐릭터의 매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충 영화를 만드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는 걸, 당시 제작진으로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사실 원작과 크게 유사점이 없거나 특정 코믹스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더라도, 영화만의 개연성이 있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영화는 실패하지 않는다. 대중은 흥미로운 콘텐츠를 외면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은 팬들에게는 비극적인 기억으로 남았고 관객들에게는 그저 그런 영화일 뿐이었다. 결국 흥행에는 대참패했고 제작비조차 수급하지 못한 채 끝나고 만다.

<그린 랜턴>으로 쓴 맛 본 라이언 레이놀즈는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서 연기한 데드풀 단독 영화를 직접 제작한다.

DC 실사화 프로젝트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이 영화가 시발점일지 모른다. 라이벌로 꼽혔던 마블은 <아이언맨>의 새로운 서사와 원작의 계승 및 차용이라는 저울질에 성공하면서 <어벤져스>로 이어지는 MCU 세계관 확장을 이루어 냈지만 그런 반면 DC 확장 유니버스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시피 잘못된 방향성으로 인해 실패를 맛봐야 했다.

영화에서 드라마로, 과연?

다시 그린 랜턴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린 랜턴은 이후 <저스티스 리그> 등 DC 확장 유니버스를 통해 실사화되면서 리부트에 관한 루머가 수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무려 3년 전인 2017년 1월 드디어 각본가가 결정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할 조던과 (할 조던에 이어 그린 랜턴이 된) 존 스튜어트를 주역으로 하는 영화라는 점이 확정된 것 외에는 제대로 공개된 정보가 없었다. 배우 아미 해머를 비롯해 마크 월버그에 이르기까지 할 조던 역할을 새롭게 맡을 인물이 누가 될지에 대해서도 심심하면 나오는 수준으로 루머가 많았고 감독직 역시 공식 정보 없이 소문만 무성했다. 2019년 말 드디어 제프 존스(그린 랜턴의 작가이자 DC 실사화 프로젝트의 전 부분 각본에 관여하고 있는 만화가)가 워너 측에 완성된 각본을 전달한다는 소식이 나오기는 했지만 역시 추가 정보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던 중 DC의 자체 스트리밍 채널인 DC 유니버스도 아닌 HBO Max(미 방송국 HBO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그린 랜턴 군단을 TV 시리즈로 제작한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첫 실사화의 흥행 참패로 인해 세계적인 인기도가 낮은 비운의 그린 랜턴을 영화화하기에 앞서 추이를 보려는 작업 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봄직 하다.

HBO Max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될 예정인 것 외에는 어떤 공식적인 정보도 없긴 하나, 그린 랜턴을 실사화로 다시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은 나름 기대해 볼 만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CW의 드라마 <플래시>와 <슈퍼걸>, <배트우먼> 등을 제작했던 그렉 버랜티의 참여라고 하니 퀄리티는 어느 정도 보장되지 않을까. 다만 조금 우려되는 점은 HBO에서 선보였던 <왓치맨>의 TV 시리즈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인데... 성급한 변주보다는 원작에 충실한 시나리오를 기대해 본다.

물론 근래 DC의 성과는 꽤 좋은 편이다. 분위기 전환 시도가 대실패로 돌아갔던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안 좋은 쪽으로 만루홈런을 때려맞은 <저스티스 리그> 때와는 아주 극명한 차이가 난다. <조커>는 호아킨 피닉스를 새로 기용해 별도의 솔로 무비를 만든다는 참신하지만 위험한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평가와 흥행 면에서 가히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이전에도 <아쿠아맨>이 10억 달러 흥행을 기록하면서 유니버스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더불어 2월 5일 개봉한 <버즈 오브 프레이> 역시 평가는 다소 갈리는 편이지만 대체로 후한 평을 듣고 있다는 점을 보면, DC의 향후 영화들에 이전과는 달리 우려 대신 기대를 걸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올해 DC가 개봉할 영화에 아쉽게도 <그린 랜턴 군단>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이 기세를 <원더우먼 1984>로 완전히 이어 가면서 DC코믹스의 더 많은 캐릭터 그리고 무엇보다 그린 랜턴을 좋은 작품으로 다시금 선보여 주기를 기대해 본다.


PNN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