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현장의 그레타 거윅과 배우들

미국 인디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였던 그레타 거윅은 첫 연출작 <레이디 버드>(2018)에 이어 <작은 아씨들>(2019)까지 훌륭하게 완성하면서 단숨에 당대 가장 중요한 여성 감독 중 하나로 떠올랐다. 거윅을 세계만방에 알린 <프란시스 하>(2012)를 음악을 구심 삼아 되돌아보자.


Thème de Camille

Georges Delerue

<프란시스 하>는 느닷없이 프란시스(그레타 거윅)와 소피(믹키 섬너)가 마주 보고 싸움놀이를 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조르주 들르뤼의 'Thème de Camille'이 깔린 채로, 뉴욕에 사는 두 친구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걸 나열한다. 공원 앞에서 소피의 우쿨렐레 연주에 프란시스는 수줍은 듯 춤을 추고, 지하철역으로 열심히 달려 집으로 돌아가, 요리를 해 먹고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하고 주사위 게임을 하고 빨래를 돌리고 대화를 나눈다. 가벼운 기타 소리가 흥겹게 이어지는 조르주 들르뤼의 음악과 함께 이어지는 두 여자의 일상은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노아 바움백 감독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나처럼 예쁜 여자>(1972) 속 카미유의 테마곡뿐만 아니라, <프란시스 하> 전반에 6~70년대 프랑스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음악감독 조르주 들르뤼, 장 콩스탕탱(Jean Constantin), 앵투앙 두하멜(Antoine Duhamel)의 작품을 여기저기 세심하게 배치했다.


Blue Sway

Paul McCartney

그렇게 서로 죽이 잘 맞던 두 사람은, 소피가 부유한 동네로 이사 가게 되자 서서히 멀어진다. 마음이 상한 프란시스는 꽁돈이 생겨 며칠 전 만났던 레브(아덤 드라이버)를 불러내 밥을 사려다가 현금카드가 먹히지 않아 멀리까지 달려 현금을 뽑아오던 중 넘어진다. 상처를 구실로 레브의 집에 들어오지만 프란시스의 '철벽'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레브의 룸메이트 벤지(마이클 제겐)과 친구가 찾아온다. 집에 돈 깨나 있는 뉴요커의 취향들이 가득한 공간, 폴 매카트니의 'Blue Sway'가 더해져 분위기는 더 근사해진다. 게다가 27살에도 좀처럼 커리어가 풀리지 않는 무용수 지망생인 프란시스의 어설픈 춤사위에도 끝내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여유까지, 프란시스는 이 공간에 홀딱 반해 "소피한테 차인 후로 제일 재미있는 밤이었어"라고 말한다. 느릿느릿 힘차게 유영하는 것 같은 그루브의 'Blue Sway'는 폴 매카트니가 두 번째 솔로 앨범을 작업하던 1979년 여름 즈음에 만들어졌지만 (<프란시스 하>가 공개되기 1년 전인) 2011년에야 처음 공개됐다.


Modern Love

David Bowie

<프란시스 하>는 프란시스가 자취를 옮길 때마다 그 주소가 적힌 간자막을 띄운다.'캐서린 가 22번지, 차이나 타운, 뉴욕'이라는 자막이 뜨고, 여느 때보다 더 힘차게, 춤을 추면서 뉴욕 거리를 달리는 모습에서 프란시스가 레브의 집에 살게 됐다는 걸 직감할 수 있다. BGM은 데이빗 보위의 'Modern Love'. 명 기타리스트 스티브 레이 본(Steve Ray Vaughan)과 나일 로저스(Nile Rodgers)가 참여한 곡답게 똑 부러지는 기타 소리로 시작해 거침 없이 때려대는 드럼과 쨍쨍한 보위의 목소리가 얹어진 노래는 새 집에서 새 출발을 꿈꾸는 프란시스의 흥분을 한껏 부풀린다. 눈썰미 좋은 영화 팬들이라면 이 신을 보면서 곧장 떠올릴 작품이 있다. 레오 카락스의 <나쁜 피>(1986)다. 노아 바움백은 프란시스의 질주를 통해, 알렉스(드니 라방)가 애인에게 상처 받은 안나(줄리엣 비노쉬)를 위로하다가 'Modern Love'와 함께 거리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나쁜 피>의 명장면에 존경을 바쳤다. 남자와 여자, 오른쪽과 왼쪽, 파리와 뉴욕, 컬러와 흑백의 대비까지 곁들여진 섬세한 오마주다. 한편, 'Modern Love'는 <프란시스 하> 엔딩 크레딧도 장식한다.


Les Bicyclettes

Georges Delerue

노아 바움백은 영화 내내 틈만 나면 조르주 들르뤼의 음악을 사용하며 프란시스의 일상을 비춘다. 그가 음악을 맡은 1966년 작 <왕이 된 사나이> 속 스코어들을 특히 애용한다. 일일이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데, 새크라멘토 시퀀스에 들을 수 있는 'Les Bicyclettes'도 그 중 하나다. 레브에 집으로 이사 가서도 프란시스의 생활은 별로 좋아지지 않을 뿐더러 한 달에 900달러나 하는 월세를 감당하는 부담만 키운다. 게다가 당연히 맡게 될 줄 알았던 크리스마스 공연에서도 제외되자 실의에 빠진다. 마음 둘 곳은 고향뿐. 노아 바움백과 시나리오를 함께 쓴 그레타 거윅의 실제 고향이기도 한 새크라멘토(거윅의 감독 데뷔작 <레이디 버드>의 배경이기도 하다)에서 펼쳐지는 시퀀스는 그저 평화롭다. 동네 친척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보내고,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자전거를 타며(프란시스는 새크라멘토에서 뛰지 않는다) 동네를 산책하고, 아빠와 정원을 정리하고, 엄마와 옷 쇼핑을 하고, 치과 치료를 받는다. 그리고 또 다시 공허한 얼굴로 뉴욕으로 향한다.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Every 1's a Winner

Hot Chocolate

뉴욕에 돌아와 마음만 더 뒤숭숭해진 프란시스는 무용단의 정식단원인 레이첼(그레이스 검머)의 집에서 얹혀 지내게 된다. 레이첼의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일행 중 하나가 파리에 오면 우리 집에 머물다 가라는 말을 듣고 충동적으로 이틀간의 파리 여행을 계획한다. 파리 시퀀스의 음악은 핫 초콜릿의 'Every 1's a Winner'다. 그렇게 영화 내내 프랑스 음악가들의 작품을 사용했으면서, 정작 파리 여정을 수식하는 음악은 영국 밴드의 것이다. 도착해서 파리에 산다는 친구에게 음성메시지를 남기고 숙소로 향한다. 그런데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안 와 한참을 뒤척이다가 수면제를 먹고 잤는데 이미 오후 4시 반. 파리 친구는 여전히 연락이 안 되고, 프란시스는 홀로 파리 거리를 돌아다닌다. 즐기기는커녕, 담뱃불조차 제대로 안 붙고, 카페 테이블에 앉아 빵부스러기를 손으로 찍어먹는 신세.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 달 전 싸운 소피가 오늘 송별파티에서 보자는 연락을 해와서 미지근하게 화해를 한다. 그렇게 파리의 여정은 끝. 뉴욕에 돌아와서야 파리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모두가 승리자라는 노래 제목이 무색하게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Miss Butter's Lament

Harry Nilsson

무용단장에게 사무직을 제안 받곤 호기롭게 거절한 프란시스는 뉴욕에서 차로 2시간 넘게 가야 하는 도시 포킵시로 간다. 모교 기숙사 조교로 일하면서 천천히 파리 여행의 빚을 갚는다. 고향도 주지 못하는 안식을 모교라고 줄까. 아담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해리 닐슨의 'Miss Butter's Lament'는 포킵시에서 보내는 프란시스의 일상이 그럭저럭 괜찮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그리 달갑지 않은 일들이 야금야금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다. 결정적인 건 모교 무용과 출신인데도 기숙사 조교라서 무용 수업을 받지 못한다는 점. 그저 건조하게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 들어와 종잇장처럼 침대에 늘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소피가 눈 앞에 나타난다.


Falling Off a Horse

Felix Laband

<프란시스 하>는 결국 우정을 잃어버린 사람의 방황기일지도 모른다. 애인과 다툰 소피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한밤을 지샌 프란시스는 뉴욕으로 다시 돌아오고, 거짓말처럼 모든 게 순탄히 돌아간다. 무용단 사무를 보면서 뉴욕 어디에서고 춤을 연습해 자기가 연출한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뮤지션 펠릭스 라반드가 직조한 따스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Falling Off a Horse'에 맞춰 힘차게 몸을 옮기는 무용수들의 연기 사이사이, 영화 속에서 프란시스가 만난 사람들이 객석에 앉은 모습들이 비춰진다. 지인의 의무로서가 아닌 정말 작품에 흠뻑 빠져 있는 얼굴들. 이 풍경을 거치고 나서야 무대 옆에서 작품을 살피는 프란시스를 마주할 수 있다.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이 기다려왔던, 확신 가득한 표정. 공연을 마친 프란시스는 무용단원에게 극찬 받을 때보다 '베스트 프렌드' 소피가 자기를 보며 해맑게 미소 지을 때 더 행복해 보인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